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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유와 상징으로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8-20 조회수871 추천수1 반대(0) 신고

 

 

비유와 상징으로

하느님의 존재는
그분의 걸음걸이를 느끼는
사람에게는 분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단순한 사람,
진실됭 사람에게도 분명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행히도
좀더 단순하지 못하고,
좀더 선하지 못하고,
좀더 진실되지 못합니다.

 단순하지 못하고

선하지 못하고

진실되지 못하다는 것은
죄인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의 존재는 죄인에게는
분명하지가 못합니다.
적어도 상황에 따라
분명하기도 하고
분명하지 않기도 합니다.
이같이 본성상으로 분명하기도
분명하지 않기도 한
하느님을 나는 비유 속의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심에서
그 본성적인 방법을
계속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비유로

말씀하시며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마태 13,13)

비유 속의 하느님은 상징들의
베일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분은 멀리서 당신에게
카드, 약도, 그림,

초대권을 보내십니다.
당신은 그분을 '찬란히

화사하게 차려 입으신 분'

(시편 103,1 참조)
또는 '바람의 날개를 타고

다니시는 분'
(시편 103,3 참조)

으로 생각하십니다.

그분은 걸어가시기도 하고
당신의 삶 속으로

들어오시기도 하고
나타나시기도 하고

사라지시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분은 당신이 결코
한 곳에다 붙잡아 둘 수 없는

그런 분입니다.

또 그분은 예고되지 않은

역사 속에 열리지 않은

배아(胚芽) 속에 감추어 계십니다.
나중에 중대한 시간 곧 무한한
질적 도약과 참으로 새로운 것에로
옮아가게 되는 구원의 '때'가 옵니다.

그때가 바로 '때가 충만하게'
되는 하느님의 때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하느님께

옮아가는 여정입니다.

 그분은 더 이상 그림, 추리,
아름다움, 미학, 숫자, 공간,
감정과 같은 어떤 표상으로서
나타나시지 않고

위격체로서 나타나십니다.

-까를르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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