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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여러분에게 구원이 내렸습니다." - 2007.11.4 연중 제31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04 조회수489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11.4 연중 제31주일                                        
지혜11,22-12,2. 2데살1,11-2,2 루카19,1-10

                                              
 
 
"오늘 여러분에게 구원이 내렸습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입니다 .
무엇을 찾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인간입니다.
 
무엇을 찾느냐가 그 삶의 꼴을 형성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하느님을 찾아야 합니다.
역시 살기위하여 하느님을 찾습니다.
 
살아있다 하여 다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찾는 갈망으로 깨어 있을 때 비로소 살아있다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열정, 갈망, 그리움, 동경은 영성생활의 시발점입니다.

저희 수도자들도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라 정의하며
평생 하느님을 찾는 일에 전념합니다.
 
하느님을 찾는 다는 것, 삶의 중심을, 삶의 의미를 찾는 다는 것을 뜻합니다.
삶의 중심이, 삶의 의미가 사라지면
삶은 무기력해지고 방황과 더불어 안팎으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오늘 복음의 세관장 자캐오의 구원 여정은 우리 모두에게 귀한 가르침을 줍니다.


첫째, 주님을 열렬히 찾아야 합니다.

세관장 자캐오는 부자였다 합니다.
그러나 많은 재물도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던 듯합니다.
돈은 많아도 왜소한 체구에 세리라는 직업 때문에
사람들에게 멸시의 대상이 됐을 것입니다.
하여 내면에서는 주님을 찾는 갈망이 불타올랐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키가 작아 군중에 가려 예수님을 볼 수 없자
쏜살같이 달려가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 합니다.
 
얼마나 눈물겨운 주님 찾는 갈망의 표현인지요.
보잘 것 없는 돌 무화과나무도 섭리의 도구 역할을 하고 있음을 봅니다.

주님을 찾는 마음,
바로 참 나를 찾는 마음이요 참 나가 되고 싶은 갈망입니다.

이런 갈망 역시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은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에
당신께서는 모두 소중히 여기십니다.
 
사람은 물론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나름대로 하느님의 사랑의 대상이며 존재이유를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캐오를 사랑하신 주님이시고,
보잘 것 없는 돌 무화과나무도 섭리의 도구로 쓰시는 자상하신 주님이심을 봅니다.

주님을 찾는 여정 역시 좁은 문, 좁은 길임을 깨닫습니다.

재물의 걸림돌,
세관장이라는 멸시 받는 직업,
왜소한 체구라는 불리한 여건에 좌절하지 않고
자캐오가 주님을 찾아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주님을 찾는 열렬한 갈망 덕분이었음을 봅니다.
 


둘째, 간절히 주님을 찾을 때 만납니다.

갈망으로 깨어 주님을 찾을 때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많은 군중들 중 주님을 만난 이는 열렬히 주님을 찾았던 자캐오 한사람뿐이었습니다.
 
주님을 찾는 열정이 없으면 주님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합니다.
주님을 찾는 열정 식어 찾아오신 주님을 얼마나 많이 만나 뵙지 못했겠는 지요?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주님의 말씀에 자캐오는 얼른 나무에서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합니다.

감격적인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주님과의 만남, 이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 것입니다.
 
무수한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우리의 삶입니다.
만남의 욕구는
궁극에는 주님을 만나고 싶은 욕구이자 참 나를 알고 싶은 욕구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만남의 신비라 할 만합니다.

비상한 만남이 아니라 일상의 평범한 삶 중에 만나는 하느님입니다.
사람과의 만남,
자연과의 만남,
사건과의 만남,
전례와의 만남 등,
일상의 이런저런 만남들 모두를
주님을 만나는 계기로 삼을 때 풍요로운 영적 삶입니다.

성경의 신앙인들이 한결같이 갈망한 것도
하느님과의 만남이자 하느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우면 보고 싶은 게 얼굴이요,
계속 봐도 보고 싶은 게 얼굴이 아닙니까?
 
사실 그리운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주님을 만나는 우리들이요,
이래서 만남의 신비입니다.
 


셋째, 주님을 만날 때 저절로 따르는 회개요 변화와 치유입니다.

회개가 없는 것은,
변화와 치유가 없는 것은 주님을 진정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만난 자캐오의 변화가 감동스럽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자비하시고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그들의 죄를 보아 넘겨주신 하느님의 모습을 봅니다.
 
회개하라는 말씀 한마디 없이도
주님께서 자캐오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시자
저절로 주님의 자비에 감동하여 회개하는 자캐오입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실천으로 입증되는 회개보다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주님을 만나자 마자 안팎으로 비우는 자캐오입니다.
 
완전히 내외적으로 변화, 치유된 자캐오입니다.
 
마침내 주님의 장쾌한 구원 선언입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이런 주님과의 살아있는 만남이 없어 그리도 메마르고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유별난 기적이 아니라 살아계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한 회개가 기적입니다.
회개에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변화와 치유입니다.
하여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이 우리 가운데서 영광을 받게 되고,
우리도 그분에게서 영광을 받습니다.

주님을 갈망해 찾았던 자캐오는 마침내 주님을 만났고
완전히 변화되어 새사람이,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하느님 창조하신 본연의 참 나를 발견했습니다.
 
갈망과 만남, 그리고 변화가 연쇄 고리를 이루며
우리의 영적 삶의 진리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한 번으로 끝나는 하느님 찾는 갈망도, 만남도, 변화도 아닙니다.
죽을 때 까지, 평생, 끊임없이, 깨어
열렬히 하느님을 찾아 만나야 하고 변화해야 합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자캐오와 함께 기쁘게 주님의 말씀과 성체를 통해
주님을 우리 안에 모셔 들이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주님과의 살아있는 만남을 통해 정화, 성화되고 치유되는 우리들입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구원선언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구원이 내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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