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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75) 호강시켜 줍니다.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29 조회수527 추천수5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leejeano                      작성일     2004-02-23 오후 10:28:29

 

2004년2월23일월요일 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 기념일 ㅡ야고보3,13-18;마르코9,14-29ㅡ

 

  (75) 호강시켜 줍니다.

                        이순의

                

ㅡ공소ㅡ

공소에 이사를 가서 처음으로 격은 일이다.

서울에서 삼복더위에 이사를 갔으니 공소라고 삼복더위를 면제 받는 것은 아니었다. 남도의 섬마을은 자동차 매연이 수북한 서울 하늘과는 달리 직광으로 살갗을 태우고 있었다. 이삿짐도 정리가 다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공소에서 기별이 왔다. 교우가 돌아 가셨으니 장례예절에 와서 교우들과 상견례도 할 겸 얼굴을 보이라는, 일명 신고식을 하라는 것이다. 잠깐 다녀와서 이삿짐을 정리하기로 하고 급히 공소로 갔다.

 

모두들 흰옷을 입고 계셨다.

흰 한복을 입으신 분도 계시고 하얀 바지에 하얀 면 티셔츠를 입으신 분도 계시고 연세가 아주 높으신 할머니들 중에는 마땅히 더위에 갖춰 입기가 귀찮으셨는지 가신분에 대한 예의로 하얀색을 맞추느라고 한복 속치마만 걸치고 오신분도 계셨다. 그렇다고 아무도 그걸 흠잡아서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흰 옷을 입지 않은 사람이 더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나는 하얀 모시옷을 풀해서 정갈하게 입던 때였으므로 예의를 지키는 데는 무례함이 없었다.

 

객지에서 온 신자에 대한 예의로 상여 뒤의 한 중앙에 서게 했다. 장례예절이 끝났다. 마음이 콩 밭에 있었으므로 이제 어서 집에 가서 짐 정리를 하려고 빠져 나오려는데 벌써 간다고 나무라셨다. 상여가 산으로 뜨는 거라도 보고 가라고 누군가 귓속말을 해 주었다. 공연히 좁은 섬마을에서 첫 인상이 밉보일까 조바심이 나서 시키는 대로 하고 섰다. 그런데 그건 시작에 불과 했다.

 

상여를 바퀴달린 틀 위에 올리더니 형제님들이 밀기 시작 했다. 그리고 서 있던 자매님들이 일제히 일어나 상여 뒤에 묶여진 하얀 끈을 잡고 두 줄로 섰다. 눈치껏 행동했다. 그런데 산으로 가실 줄 알았던 상여는 산으로 가시지 않았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원점으로 와서 섰다. 동네도 그냥 한 바퀴가 아니라 골목골목의 볼 거 다 보고 들릴 거 다 들리고 안간데 없이 구석구석 들리고 보고 원점인 것이다.

 

그게 뭔지를 몰랐고 본 적도 없었고 상상도 해 보지 않았으니 여쭐만한 구실도 없었다. 이제나 저제나 집에 갈 수 있을까 궁리만 하는데 그놈의 동네를 돌고 돌고 또 돌고 또 돌고....... 난장에서 점심을 선채로 먹고 또 돌고 또 돌고 또 돌고....... 결국 청정 하늘의 땡볕에서 그러고 다녔으니 공해로 찌든 그늘 밑 서울 생활을 했던 나는 그 태양을 이기지 못 했다. 다리 아프고! 허리 아프고! 머리 아프고! 무릎 아프고! 발바닥 아프고! 눈 아프고! 어지럽고! 토하고! 온 군데가 온전치를 못 했다. 일사병에 혓바닥이 멍멍개 되어서 턱 밑으로 축 처지느라고 흐믈흐믈 거린다는 걸 내 자신이 느껴지고 있었다.

 

"옴마야, 이 사람 못 쓰것씨야. 얼렁 그늘 밑에로 엥게라. 잉"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뛰어가서 그늘진 땅 바닥에 발라당 누웠다.

상여는 또 돌려고 갔다. 그때서야 시골 아저씨 아짐씨들의 둔탁한 성가 소리가 들려 왔다. 오후가 되어서 긴긴 진짜로 길고 길었던 여름 해가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나서야 상여는 산으로 갔고 나는 그 그늘에서 해방 되었다. 그건 죽은 자에게 산자가 마지막으로 해 주는 호강이었다.

 

살아생전에 가신 분께서 거닐던 마을을 하루 종일 돌고 또 돌아 드림으로 마지막 호강을 시켜드리는 것이란다. 이제 가시고 나면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그 동네 길을 보여주고 또 보여드리는 호강이다. 성가를 하루 종일 부르면서 각양의 흰 물결이 파도를 이루는 하루를 지낸다. 그런데 시골 마을에 미묘한 갈등이 있다. 젊은 인구가 감소하고 이농 현상으로 마을에 빈 집이 늘어나면서 일손이 딸린다. 그 결과 이해집단이 형성된 것이다. 그것은 천주교와 개신교다.


천주교 신자끼리 상부상조를 하고, 개신교 신자끼리 상부상조를 하고, 농사  일을 하려면 어디든지 속해야 한다. 면 소재지가 아닌 작은 마을에서는 완전히 천주교가 밀린다. 마을마다 개신교가 서고, 그 마을은 전체가 개신교 신자가 되기 위해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도 개종을 해야만 한다. 순전히 혼자서는 농사일을 할 수 없다는 이유이며 현실적인 생존의 법칙이다. 개신교에는 목사 안수를 받은 정식목사님께서 상주하시지만 천주교는 신부님은커녕 공소회장님도 모시기 어려운 현실이고 보면 밀릴 수밖에 없다. 목사님하고 봉사자 공소회장님 하고는 말발도 딸리지만 종교적인 기본이론에서부터 확실히 현격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초상을 치루는 날이면 천주교 신자는 한 사람이라도 더 나와서 줄을 서야하고 둔탁한 목청도 더 크게 소리를 질러서 성가를 불러야 한다. 분명히 천주교 신자들이지만 샤머니즘적 민속신앙의 행위를 접목하고 있으며 거기에다 억센 개신교 신자들까지 경쟁이 되고 있다. 자식을 한 해에 한명씩 낳아서 한 20년간 스무 명만 맹글어서 몽땅 신학교 보내고, 신부님 되시고 나면 또 몽땅 셑트로다가 공소로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뭉실뭉실 솟구쳤다. 그러다보니 모든 것이 경쟁이다. 어느 동네에 누가 아파서 개신교 목사님이 마귀를 쫓아부렀다고 소문이라도 나게 되면,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묵주기도뿐인 우리 불쌍한 공소교우님들은 떼거지로 몰려가셔서 기운이로다가 밀어 붙이고 오신다. 참으로 가관이다. 천주교신자인지 무당인지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 나고 처량해서 못 본다.

 

어떤 군종신부님은 초코파이땜시 자존심 다 날아가고 눈물 난다더니, 공소는 초코파이는 있는데 그 자존심 상해주고 눈물 흘려줄 신부님이 없다. 없어. 없어분당께. 염병헐....... 워째 그런지 알어? 군대는 젊고 미래 신앙의 산실인디, 공소는 늙고 죽을 인간만 남어 있은께 군대보다 차선이랑께! (워쩔것이여. 신부님이 부족허고, 예산도 부족허고, 또 요새 젊은 신부님들은 고생을 모르니께 그것도 문제고, 뭐 이유 많제요. 속상해서 해 본 소리고 이걸로 꼬투리 잡으시면 이런 묵상 못 올리제요.)


그래도 아직 공소는 비어있지 않고 주님께서 채우고 계신다. 10년 되었으니 그 때 그 할배 할매는 호강 받고 산으로 가셨을 것이고, 아재 아짐이 이제는 할배 할매 되었것제. 공소 살이 하면서, 마귀를 쫓으러 다니지 말라고 기도를 해줘야 한다고, 교우들의 의식을 바꾸는데 참으로 힘이 드셨다. 학사님이 오시고 공소회장님이 오셔서 무척 노력을 하셨지만 그 반감도 상당히 컸었다. 공소는 지금도 그 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 없이 그런 모습으로 주님의 공동체를 이루며 신앙한다.

 

그런데 호강시키러 다니는 것 때문에 나만 혼 구멍이 난 것이 아니고, 학사님도 혼이 났고, 새로 오시는 공소회장님마다 치루는 혼 구멍이다. 하하하하하하! 혹시 다음에 본당으로 승격되어서 오실 신부님도 혓바닥이 턱 밑으로 처지실랑가? 그 생각허면 상상만 해도 고소한 재미가 돈다. 히히히히히히히히!

 

 

ㅡ그 뒤 예수께서 집으로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왜 저희는 악령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하고 넌지시 물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기도하지 않고서는 그런 것을 쫓아낼 수 없다. 마르코9,28-29ㅡ

 

 

 

 

 

 
그토록 염원이었던 섬마을에 신부님이 오셨습니다. 그냥 한 달에 한 번 오시는 것이 아니라 살러 오셔서 살았습니다. 공소가 본당이 되고 1대 주임신부님께서 벌써 이임하시고 후임으로 2대 신부님께서 오셨습니다. 이 사진은 1대 안 호석신부님시절 2007년5월 성모님의 밤 거양성체입니다.  안 신부님께서 처음 오셔서....... 바보 같은 저처럼 혀가 턱밑까지 내려 오셨다는 소식은 접하지 못했습니다. 히힛! 신부님께는 그리스도의 권위가 있으시거등요. 어험! 세월이 가고 보니 이토록 간절한 염원이 이루어지시고.........
† 주님께서는 영광과 찬미를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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