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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엇을 위한 회개인가?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26 조회수729 추천수5 반대(0) 신고

 

 <복음>
+ 마르코 복음. 1,14-20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16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8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19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예수님은 공적으로 활동하시기 전 30년 동안 아무 것도 하시지 않았다.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전도활동을 시작하셨다.

오늘 복음 첫 마디가 그런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요한이 잡힌뒤에 …복음을…선포…하셨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요한이 잡혔다는 것이다.

요한이 결박당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전쟁에서 포로를 포승줄로 결박하듯이 단단히 결박당해서 옴짝달싹도 못하게 되었다.

요한이 결박당했다는 것은, 그가 했던 모든 활동이 결박당했다는 뜻이다.

요한이 한 일은 오늘 복음 앞 부분에 나온다.

예수님 앞 길을 닦는 일, 회개의 세례를 베푸는 일,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

즉 그분이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고,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시고

자기는 예수님의 신발 끈도 풀어드릴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일 등이다.

 

이 사명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예수님이 공적인 활동을 시작하시게 되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일은 요한의 일을 계속하는 것인 동시에

요한의 일보다 훨씬 더 큰 일, 위대한 일을 시작하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 위대하다는 일이 세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딴 판이다.

 

우선 그 일을 하기 위해 예수님이 택한 장소는 갈릴래아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 주요 인사들이 모여드는 장소,

정치경제적으로 중심지인 예루살렘을 택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 특히 예수님이 일하시는 모습의 가장 특징적인 모습이다.

하느님의 일꾼들은 세상에서 중심적인 인물이 되지 못한다.

이것은 거꾸로 말해서, 세상에서 세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적다는 뜻이다.

그런 사실을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1코린 1,27-28)

예수님이 가장 귀하게 선택한 선구자,

요한이 활동한 무대도 이스라엘 중심지가 아닌 변두리,

그것도 먹을 것 입을 것 마저 부족한 광야였다.

강한 사람, 능력있는 사람, 중요한 사람, VIP가 되는 일이

세상을 움직이는 데에는 용이하지만

하느님의 일을 하는데는 큰 힘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닐까?

 

지금 경제위기가 어쩌면 하느님의 가르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너무 성장 성장만을 향해 달리다가 스스로 쳐놓은 그물에 걸린 것이 아닐까 싶다.

왜 반드시 성장해야 하는지, 또 보다 중요한 성장은 경제가 아닌 영적이고

정신적인 가치가 성장해야 하지 않은가!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이 지금 위기를 맞은 것은 탐욕과 무책임한 행동의 결과이며,

새 시대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어려운 선택을 하는 것에 집단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이며

“지금의 위기가 우리에게 증언하는 것은 시장은 감시의 눈을 벗어나면 통제할 수 없다는 것”과

“부유한 사람들에게만 혜택을 돌리는 시장으로는 미국의 번영은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하면서

“안전과 이상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전을 위해 이상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적인 성장이 안정을 보장하지 못하고 군사적인 우위 역시 평화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이 결국 영적인 것이란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선택은 참으로 옳다.

광야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변두리 지역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이야 말로 영적인 안정을 추구하는 열망이 강하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지금의 위기가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주겠지만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어쩌면 하느님이 마련하신 위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견디고 나면 주실 축복도 반드시 계획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이 마련하신 것이라고 해서

우리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말을 위해 맑고 깨끗한 강물을 준비해 두었어도

말이 제 스스로 목 축이는 즐거움을 누릴 마음이 없다면 그만인 셈이다.

 

간혹 우리가 잊어버리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다.

어떤 시기를 보내고 나면 주어질 어떤 것,

혹은 주어질 어떤 것에 대해 마음과 힘과 정성을 다하여 준비하지 않고,

또 그것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오바마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새 시대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어려운 선택을 하는 것에 집단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에

지금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저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선택”이라고 했다.

정말 그렇다. 우리가 하느님의 일을 하고 그분의 일꾼이 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어쩌면 평화롭고 조용한 생활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고,

많은 사람들의 반대와 모함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르고

심지어는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겪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의 공생활 첫 말씀이,

“때가 찼고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이었다.

 

때가 찼다. 어떤 때? 결정적인 때,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되는 때,

반드시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때가 완전히 무르익었다는 말씀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회개”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정말 회개할 필요가 있다고 누구나 생각하는 사람들,

즉 세상의 권력자들과 그들이 모여살고 있는 예루살렘에서 “회개”를 외친 것이 아니라,

그분 스스로 선택한 가난한 민중들 소외된 사람들을 향해서 “회개하라”고 하셨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앞서 말한 선택을 위한 회개다.

즉, 새 시대를 준비하는데 필요한 어려운 선택을 내리기 위한 회개다.

 

힘 없다고, 가난하다도, 소외되었다고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을 생각을 접고

뇌화부동하게, 복지부동하게, 안일하게 살아가는 그것이

계속해서 소외된 사람을 방치하게 만들고 잘못된 삶을 개선시키지 못하게 하고 있는

그것을 회개하라는 말씀이다.

 

결정적인 때, 결정적인 선택은 우리를 새로운 시대로 인도해 줄 것이다.

정말 어떻게 될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기대하건데,

흑인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미국이 하나의 결정적인 표징이 되어,

전 세계가 그리고 온 세상이 하느님의 질서로 바로 잡히고

새롭게 거듭나는 새로운 시대가 활짝 열리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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