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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물은 깨어 기다리는 사람만 맛볼 수 있다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26 조회수505 추천수8 반대(0) 신고
 
 

주인이 가져오는 선물은 깨어 기다리는 사람만 맛볼 수 있다 - 윤경재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루카 12,35-37)

 

  기축년 설날에 교형자매님들 가정에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제가 어릴 적에 아버님께서 약주를 들고 오시는 날엔 밤늦게 조그만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저녁밥 때가 지나도 안 들어오시는 날에는 여지없이 술 한 잔 드시고 오셨습니다. 그런 날이면 으레 무엇인가 주전부리를 사 들고 오셨습니다. 거리에서 파는 밀전병(일명 센베) 과자나 땅콩, 구운 오징어, 군밤, 풀빵 등이 담긴 종이봉투를 식구들 앞에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면 모두 좋아라하고 덤벼들어 맛있게 먹던 기억이 납니다. 먹을거리가 귀했던 터라 오늘은 아버님께서 술 안 들고 오시나 하고 기다리기까지 했습니다. 졸음이 쏟아지지만 잠들면 먹을 게 없어지기 때문에 연방 눈을 비비고 하품을 해가며 기다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겨우 몇 개씩만 돌아갔지만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어린 저희가 잠들지 않고 기다린다는 것을 아시는 아버님께서는 대취하지 않으시고 통금 전에 꼭 들어오셨습니다. 그래도 주전부리를 잊지 않고 사 들고 오시는 덕분에 어머님께서도 크게 바가지를 긁지는 않으셨나 봅니다.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은 아마도 잔치 음식을 몇 가지 싸들고 왔을 겁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그랬습니다. 예식장 문화가 생기고 나서도 얼마 동안은 답례품으로 카스텔라 빵이나 찹쌀떡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카스텔라를 싼 밑바닥 종이까지 혀로 핥으며 아주 맛나게 먹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주인은 잠들지 않고 깨어 기다리는 집안사람들에게 얻어온 음식을 내어 놓으면서 함께 먹자고 불렀을 것입니다. 종까지도 불렀을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상황을 떠올리면서 비유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청중도 금세 알아들었습니다. 지금 제가 옛날을 생각하면서 미소를 떠올리듯 그 당시 청중들도 기분 좋은 상념에 빠졌을 겁니다. 이 대목을 묵상하는 지금의 저처럼 입맛까지 다셨을지도 모릅니다.

  주님은 기쁨을 가져다주시는 분이십니다. 불시에 들이닥치는 도둑의 비유 탓에 조금 뉘앙스가 사그라졌지만, 예수님의 첫 비유는 깨어 기다리면 행복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런 것이 후대에 인자 선언과 결합하면서 기쁨이 경고처럼 들리게 되었습니다. 새겨들어야 합니다.

  깨어 기다리는 자는 기쁨을 기다리는 자입니다. 기다리면 얻는 것이 있고, 행복하다는 것을 알기에 잠들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안소니 드 멜로 신부님은 깨어있음의 영성을 강조하십니다. 그 영성은 한마디로 ‘아하! 체험’입니다. 깨어있음이 더 좋고 행복하며 사랑으로 이끈다는 것을 아하! 하고 자각하는 것입니다. 여태껏 혼몽한 상태에 빠져 공연히 화내고, 열등감을 일으켰으며, 아무 도움을 못 주는 남에게 매달렸다는 것을 지켜보자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본래의 자아는 아무 얽매임 없이 자유스런 상태인데 쓸데없이 솟구치는 감정에 휘둘려 자아를 망각했다는 것입니다.

  참 ‘나’가 화를 내고, 외롭고, 우울하고, 실망하고, 무슨 무슨 중독에 매달리고, 원망하고, 걱정하고, 투사하고, 퇴행하고,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반응하는 마음이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참 ‘나’와 ‘반응하는 마음’을 동일시할 때 우리는 괴로움에 빠지게 됩니다. 멜로 신부님은 그것을 ‘잠든 상태’라고 불렀습니다. 이와 반대로 ‘깨어있음’은 하느님께서 주신 참 나를 언제나 인식하기 때문에 기쁨과 행복을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사랑을 베푸는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선물이라는 겁니다. 참 ‘나’는 성령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깨어있음’을 자각하는 방법을 드 멜로 신부님은 첫째, 동일시하지 말 것. 둘째, 이런 상황을 바라보고 시인할 것. 그래서 아하! 하고 행복체험을 하라고 하십니다.

  주인이 가져오는 선물은 깨어 기다리는 사람만 맛볼 수 있습니다. 입에 군침이 돌도록 행복한 상상을 하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만이 눈을 비비며 기다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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