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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삶의 방향" - 1.25,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25 조회수670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1.25 연중 제3주일(해외 원조 주일) 
                                                                      
요나3,1-5.10 1코린7,29-31 마르1,14-20

                                                              
 
 
 
"삶의 방향"
 


방향을 놓쳐 버리면, 방향을 잃어버리면
안주와 타락이요, 혹은 끝없는 방황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삶의 방향은 또렷합니까?
방향을 잡고 끊임없이 흐르는 역동적 삶입니까?
 
하느님 향해 삶의 방향을 잡아야 구원입니다.
 
삶의 방향은 바로 삶의 의미이자 희망이요 목표를 뜻합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언제나 하느님을 향한 역동적 삶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새벽마다 우렁차고 힘차게 계속 울어대는 수도원 수탉 한 마리,
마치 하루의 방향을 열어주는 예언자의 외치는 소리를 연상케 합니다.

흘러야 삽니다.
 
끊임없이 흘러야 맑은 시냇물이듯
끊임없이 하느님 향해 흘러야
매일 새 하늘, 새 땅, 새 생명, 새 마음입니다.
 
웅덩이에 물 고이면 썩듯이
우리 삶도, 공동체도 정주가 안주로 변해 고이면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죽을 때까지 평생 하느님 향해 흐르는 맑은 시냇물로 사는 것이
영성생활의 목표입니다.
 
웅덩이에 갇혀
출구를 잃고
부패해가는 사람들의 물꼬를 터주는 예언자요 주님이십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주님의 이 말씀은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진리입니다.
 
이천년 전이나 오늘이나 똑같은 인간현실입니다.
 
이 천둥 같은 주님의 말씀,
안주의 웅덩이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향해 맑게 흐르는 강으로 살라는 말씀이요,
마음 활짝 열고 지금 여기 도래한 하느님의 나라를 맞이하라는 말씀입니다.
 
지상의 삶이 전부인양 올인(all-in)하지 말고
거리를 두고 세상의 것들을 초연한 눈으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시간은
연대기적 무의미한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라
지금 여기 순간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유일회적 카이로스의 은총의 시간입니다.
 
죽어있는 시간이 아니라 살아있는 거룩한 지금 여기의 시간입니다.
 
복음의 때가 찼다는 말마디
바로 이런 카이로스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했음을
우리의 삶을 재정비할 것을 권고합니다.
 
세상을 떠나라는 게 아니라
세상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라는 말씀이요,
세상에 거리를 두라는 말씀입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태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보이는 것들에 올인 했다가 좌절하여
몸과 마음 망가지는 경우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 것들에 집착하다 보면 눈이 가려져
삶의 방향을, 하느님을, 참 나를 잃어버리니
이보다 큰 재앙도 없습니다.
 
있어도 없는 것처럼 집착 없이 살아가는
초연과 겸손의 자세가 난세를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막연한 회개가 아니라
막힌 물꼬를 터 하느님 향해 흐르게 하는 게 회개요,
이런 회개를 지속시켜 주는 게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거대한 죄악의 웅덩이에 갇힌 니네베 사람들에게
회개의 물꼬를 터주는 하느님의 예언자 요나입니다.
“이제 사십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죄악의 웅덩이에 갇혀있는 삶이라면 결코 건강한 삶이 아닙니다.
 
회개의 물꼬를, 방향을 터주지 않으면
안팎으로 서서히 썩어 무너져 내리는 삶입니다.
 
그러나 니네베 사람들,
아주 신속하게 요나의 회개의 선포에 응답했습니다.
 
즉시 하느님을 믿고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시작하여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 옷을 입고 거족적인 회개를 통해
하느님을 향해 막힌 물꼬를 활짝 열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도 마음도 지니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거족적으로 회개하는 니네베 사람들을 보시고
마음을 돌리시어 내리겠다던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회개의 길뿐임을 깨닫습니다.

만병의 근원은 불통에 있습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막혀있을 때 파생되는 온갖 문제들입니다.
안주로 사방에 막혀 있을 때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르심을 받기 전 제자들이 그러합니다.
주님과의 결정적 만남으로 그 운명이 바뀐 제자들입니다.
 
웅덩이 안의 정적인 인생에서
흐르는 강 같은 역동적 인생으로 바뀐 제자들의 삶입니다.
 
갈릴래아 호수가 상징하는바 커다란 웅덩이 인생입니다.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던 예수님에게 포착된 제자들입니다.
방향을 잃고
단조로운 고기잡이 반복의 웅덩이 인생을 살던
제자들의 막힌 물꼬를 활짝 열어주는 주님이십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주님의 말씀에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는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섰고,
야고보와 요한 형제 역시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오매불망 그리던 주님을 만나 방향을 찾았습니다.
 
이제 웅덩이에 고인 물에서
주님을 따라 흐르는 강 같은 인생의 구원의 여정에 오른 네 제자들입니다.
 
모으고 쌓는 안주의 웅덩이에 고인 물 같은 인생에서
끊임없이 버리고 비우며 주님을 따라
물처럼,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로운 여정 길에 오른 제자들입니다.

복음의 제자들처럼
말 그대로 모두를 버리고 내 삶의 자리를 떠나라는 게 아닙니다.
 
복음 장면이 상징하는바 내적여정입니다.
 
내 정주의 삶의 자리가 안주의 웅덩이가 되지 않도록
주님을 따라 끊임없는 내적 탈출(엑서더스)의
내적여정에 오르라는 것입니다.
 
밖으로는 산처럼 언제나 그 자리의 정주의 삶이지만
안으로는 끊임없이 비우고 버리면서
주님을 따라 흐르는 강 같은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래야 늘 하늘과 새 땅의 삶이요 공동체입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주님께서는 삶의 막힌 물꼬를 활짝 터주어
우리 모두 하느님 향해 흐르는 강 같은 인생을 살게 해 주십니다.
 
하느님을 향해 끊임없이 흐르는 매일미사의 강입니다.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주님은
끊임없이 우리 모두를 주님을 따라 흐르는
강 같은 내적여정의 삶으로 불러내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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