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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62) 끝자리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11-27 조회수490 추천수5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leejeano)                     작성일             2004-02-10 오후 4:55:56

 

 

 

 

 (62) 끝자리

              이순의 

 

어제 새벽잠을 깨우던 영화사 제작진이 사라진 골목은 고요하다.

어림잡아 백여 명도 넘는 시커먼 에스키모족들이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었지만 오히려 평상시보다 더 조용했다.

그들에게는 행동만 있을 뿐 말은 절제되고 있었다.

마이크에 잡음이 들어갈까 봐 일사불란한 행동이외의 언어는 철저하게 제약받고 있었다.

 

호기심에 내려가 본 새댁도 입부터 봉함을 당했고,

공과금을 내려고 나서는 나는 더 먼 쪽으로 돌아서 가야했다.

골목의 가로등에 오렌지색 물감이 선명해 질 때는 몇 명만이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구름떼 같은 인파와 장비들은 크고 작은 차들에 업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필요에 의해 실제상황 보다 훨씬 지저분하게 설정했던 골목 안은 너무나 깨끗하다.

오히려 평소의 자자 분한 오물들까지 싹 쓸려져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담긴 채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마치 상여 떠난 자리에 남겨져 태워지기를 기다리는 유품 같다고나 할까?!

 

하루의 분주함이 금시 그리워 골목에 내려서서 오락가락 해 보았다.

내가 세상을 살다간 자리가 이렇게 정돈이 될 수 있을지 생각에 잠겼다.

벽에 붙은 그 많은 광고지뿐만 아니라 원래 있었던 스티커 광고물들까지 말쑥하게 긁혀 나가고 없다.

 

내가 필요해서 마련했던 물품들을 나는 얼마만큼 정리 할 수 있을 것인가?

도시생활의 기본수준도 안 되는 잡동사니 살림들과 가슴이라는 깊은 샘은 넘실대다 못해 넘쳐난다.

버리지 못 하고, 정돈하지 못하고, 아까워하고, 야속해 하고, 무관심 하느라고 이탈하지 못하고........

 

엄청난 업보다.

산다는 게 무언지?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사연의 뭉치들이 너덜너덜 여기저기 쑤셔져 있고,

모두가 나라는 배우에게만 소용 있고 소중하며 알토란같은 가치들!

떠나갈 끝자리에서 정돈하지 않으면 지탄의 대상이 될 쓰레기들!

그런데도 사는 동안에 나는 많은 것을 마련하고, 소유하게 될 것이다.

 

내가 떠난 자리에도 달랑 쓰레기봉투 두개만 남으면 좋겠다.

내가 스쳐간 인생이라는 골목에도 말쑥한 허전함으로 채워지면 좋겠다.

구름떼 같은 인파의 감쪽같은 흔적처럼 나의 흔적도 깔끔한 뒷모습이면 좋겠다.

 

꼬박 하루의 불편을 이렇게 말끔히 정돈하고 떠난 그들의 자리가 부럽다.

나는 40여년을 불편하게 했고 앞으로도 더 불편하게 해야 할 삶이라는 줄거리가 남아있다.

아직 내 자리는 말끔하지 못 하다.

 

지금은 촬영 중이라서 일까?!

 

ㅡ소인이 이곳을 바라보며 올리는 기도를 부디 들어 주십시오. 열왕기상8,28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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