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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스도로 충만한 교회공동체에 뿌리내린 우리들" - 5.2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26 조회수491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5.24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사도1,1-11 에페1,17-23 마르16,15-20

    
 
                              
 
 
"그리스도로 충만한 교회공동체에 뿌리내린 우리들"
 


우리는 방금 주님 승천을 기뻐하며
화답송 후렴을 흥겹게 노래했습니다.

“환호소리 높은 중에 하느님 오르시도다.
  하느님 오르시도다.”

주님의 승천은 우리 믿는 이들의 희망입니다.
 
문득 승천에 이어 떠오른 말이
죽음을 빗댄 귀천(歸天)과 소천(召天)이었습니다.
 
‘하늘에 올라가셨다.’는 승천이나,
‘하늘로 돌아가셨다.’는 귀천이나,
‘하늘에서 부르셨다.’ 소천,
모두 복된 죽음의 현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누구나 답답할 때마다 바라보는 하늘입니다.
희망을 찾는 인간의 본능적 반응입니다.
 
하늘에서 왔다가 하늘로,
하느님에게서 왔다가 하느님께로 승천하심으로
우리의 인간 품위를 들어 높이시고
우리에게 하늘 길을, 희망 길을 활짝 열어 주신 주님이십니다.
 
모든 불행의 발단은
하늘을, 하느님을 잊음에서 기인합니다.

“왜 하늘만 쳐다보며 서 있느냐?”

말씀을 듣더라도
하늘을 자주 바라보면 우리의 희망을 환기해야 합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살아야 우리 역시 승천의 삶입니다.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너희 희망을 영원히 하느님께 두어라.’

시편 말씀처럼 영원토록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삶일 때
영육으로 건강한 삶입니다.
 
하여 우리 수도가훈도 ‘기도하고 일하라,’입니다.
먼저 기도로 하늘의 희망으로 마음을 가득채운 후
땅에서 일하라는 말씀입니다.
 
배는 밥으로 채워야 하듯 가슴은 희망으로 채워야 합니다.
과연 여러분의 가슴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덧없이 사라질 세상의 희망이 아니라 하늘 희망입니다.
희망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하느님을 잊어, 하느님께 희망을 두지 않아
날로 천박해지고 거칠어지고 왜소해지는 인간입니다.
 
말 그대로 살기위해서 하느님께 희망을 두어야 합니다.
세상의 보이는 것들에 희망을 두었을 때
십중팔구 절망과 환멸로 끝납니다.
이래서 끊임없는 기도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 희망으로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무한히 넓은 가슴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무한한 하느님 희망, 사랑뿐이 없습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끊임없이 기도할 때
하느님은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주님을 알게 하시고,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우리가 지니게 된 희망이 얼마나 보배로운지 깨닫게 하십니다.
 
또 우리가 주님께 받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우리 안에 활동하시는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도
깨닫게 하십니다.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끝까지 희망을 두셨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어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땅에서의 공동체 건설에 힘써야 합니다.
 
제4대 수원교구장에 착좌하신 이 용훈 주교님도
‘친교, 섬김, 나눔의 공동체 건설’에 진력하겠다고
언급하셨습니다.
 
보이는 건물보다
더 중요한 게 보이지 않는 공동체 건설입니다.
 
하늘 향해 신록의 희망으로 빛나는 오월 성모성월의 초목들, 바로 땅에 뿌리내렸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아무리 좋은 씨나 나무나 꽃도 뿌리내릴 밭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요즘 산책 중 많이 묵상하는
온갖 채소를 키워내는 밭의 흙입니다.  
 
모든 채소를 품에 받아 안고
말없이 묵묵히 한없이 기다리며 키워내는
흙보다 위대한 스승은 없습니다.
 
바로 우리가 뿌리내리고 있는 공동체
바로 온갖 채소들이 뿌리내리고 있는 밭의 흙과 같습니다.
 
너무 평범하여 잘 잊고 지내는 흙의 고마움이요,
공동체의 고마움입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만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하늘은 이제 그만 보고,
주님 재림을 기다리며
묵묵히 제 삶의 자리에 충실 하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삶의 자리 모두가 갈릴래아 교회공동체입니다.
주님은 믿는 이들 둘 셋만 있어도 함께 계신다 하셨으니,
크든 작든 우리 믿는 이들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 모두가
교회입니다.
 
우리 모두가 뿌리내린 밭의 흙과 같은 교회공동체입니다.

하느님은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우리 교회공동체의 머리로 주셨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는
교회공동체의 밭에 뿌리내린 우리들입니다.


세상의 빛인 세상의 교회입니다.

세상을 떠난 빛이 무의미하듯
세상을 떠난 교회 역시 무의미합니다.

세상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교회요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교회입니다.
 
세상의 부패를 막아주는 소금과 같은 교회입니다.
 
폐쇄적 자족의 이기적 집단으로 머무는 교회는
절대로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닙니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세상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듯이, 어둠에서 빛을 찾듯이 여기 수도공동체 교회를 찾아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주님께서 승천하시며 제자들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주신 평생과제입니다.
 
선교는 우리 교회의 존재이유이기에
‘선교하는 교회’라 명명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합니다.
 
우리 베네딕도 수도승을
밖으로는 선교사, 안으로는 수도승이라 하지만
궁색한 구분입니다.
 
꼭 밖으로 다녀서가 아니라
여기 수도원에서 정주의 삶을 사는 수도승들의 삶 자체가
바로 선교라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공동생활 자체보다 더 좋은 선교도 없을 것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하신 똑같은 주님은
오늘 지금 여기 우리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우리가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십니다.
 
승천하신 주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하느님 오른쪽에 앉아 계시면서
동시에 우리와 함께 일하십니다.


주님은 당신의 승천으로 우리의 인간 품위를 드높이셨고
우리 가슴을 하늘 희망으로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한 교회 공동체의 기름진 땅에
깊이 뿌리내리고 복음 선포의 삶에
항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우리 모두 그리스도로 충만한 교회에
깊이 믿음의 뿌리를 내리게 하시고,
우리의 빈 가슴을 당신 사랑과 희망으로 가득 채워 주시어
우리 삶의 자리로 파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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