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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80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03 조회수423 추천수5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4주간 화요일]

<소녀야, 일어나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1-43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22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23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24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25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26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27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9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30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1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3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33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3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35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37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38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39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0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42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43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두 가지 표징을 보여 주시고 계십니다. 첫 번째 표징은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예수님의 옷을 몰래 붙잡아 고질병이 치유된 표징과 회당장의 열 두 살 된 딸아이가 죽었으나 이 아이를 살려준 표징입니다.

이런 사실을 통하여 복음서 기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려고 했을까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 두 표징에서 공통된 점은 열 두해 동안이나 고생한 여자와 열두 살 난 여자 아이를 살려낸 사실을 통하여 열둘이라는 숫자의 상징성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이는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를 상징한다고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는 이스라엘의 전체 민중이므로 예수님이 하혈하는 여자를 치유해 주신 것처럼 이스라엘의 전체 민중들을 삶의 질곡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죽은 어린 아이를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온 민중을 죽음의 절망에서 광명의 삶으로 이끌어 주신다는 메시지를 알려주려는 뜻으로 묵상해 봅니다.

오늘 군중들 중에는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댄 사람은 무수히 많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들이 많아서 예수님을 밀쳐 대고 있으므로 예수님과 신체적으로 접촉한 사람은 한 두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딱 한사람의 보이지 않는 힘을 느끼고 있었으며 그 보이지 않은 힘은 바로 믿음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느님을 찬미하고 많은 예물을 봉헌하여도 貧者一燈의 마음이 없으면 오늘 복음에서처럼 군중 속에 섞여서 예수님과 신체적인 접촉을 가진 사람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은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하혈로 고생하는 여인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하셨으며 회당장 야이로에게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하시며 믿음을 두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하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믿고 교리를 믿어야 한다고 대답하면 아마 칭찬받는 교우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대답은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교회로 부터 칭찬받자고 입교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믿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로우심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야 우리 인류 모두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을 믿고 있습니다. 감나무 아래서 입을 벌리고 감이 제 입으로 떨어지기를 하느님께 기도하는 그런 믿음은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하느님이 저희를 구원해 준다는 그런 믿음도 제게는 없습니다. 다만 제가 믿는 믿음이 변함이 없도록, 이를 실천하는 삶이 되도록 기도를 통하여 제 자신을 늘 새롭게 하려고 할 뿐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딸아이가 죽었다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들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죽은 사람은 깨어나지 못하지만 잠들은 사람은 반드시 깨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에 대하여 침묵하는 지금 우리는 모두 잠들어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잠에서 깨어나서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자고 소리쳐 외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모든 양심이 잠들어 있는 사회입니다. 잠들어 있는 양심을 깨우는 것이 바로 교회의 역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외침으로 잠들어 있는 모든 양심을 깨워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저희에게 “탈리타 쿰!”하시며 명령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이 '민중들아! 깨어나라, 그만 잠에서 빨리 깨어나 잃어버린 양심을 회복하여라.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로 들려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저희들은 지금 모두 잠들고 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 사회는 잠들어 있는 사회임을 일깨어 주셨습니다.
저희 모두가 잠에서 깨어나서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며 양심의 소리를 외칠 수 있도록
'탈리타 쿰'을 외치는 성령님의 음성으로 저희를 깨워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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