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믿음의 승리, 영혼의 승리" - 8.2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31 조회수491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8.29 토요일 성 요한 세례자 요한 수난 기념일
                            
예레1,17-19 마르6,17-29

                                                
 
 
 
 
 
"믿음의 승리, 영혼의 승리"
 
 


‘하느님의 바다’ 같은 예언자들입니다.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승리, 믿음의 승리를 뜻하는,
또 육신에 대한 영혼의 승리, 정신의 승리를 뜻하는 예언자들입니다.
 
얼마 전 공동체 소풍으로 동해에 다녀왔습니다.
 
지금도 눈에 선한 하늘과 바다가 닿은 수평선입니다.
하늘에 늘 닿아 있는 바다 같이 하느님께 늘 닿아 있는 예언자들입니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색깔이
참 깊고 신비로워 마치 예언자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성 요한 세례자가 바로 그런 분입니다.
 
금욕가요 순교자, 은수자들의 원조요 마지막 예언자,
그리고 그리스도의 선구자로서의 그 역할이 참으로 깊고 신비롭습니다.
 
예언자들은 세상에 주신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예언자들이 없는 세상, 참 불행한 세상이요 불 꺼진 어둔 세상과 같습니다.
 
하느님의 등불 되어 세상 어둠을 밝히는 예언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예언자들 대부분 순교로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순교적 삶을 살았던 예언자들임을 깨닫습니다.

‘주님께서는 성부의 뜻에 따라 성령의 힘으로
  죽음을 통하여 세상에 생명을 주셨나이다.’

영성체 전 바치는 사제의 기도문 중 한 대목입니다.
 
잘 살다가 죽은 사람이 산 사람보다 무서울 수 있습니다.
 
살았을 때보다 더 큰 일을 했던 예언자들이었으니
바로 세례자 요한이 그러합니다.
 
세례자 요한을 죽인 헤로데 일당 들,
분명 마음은 두렵고 불안했을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더욱 분발하여 스승의 유지를 펼쳤을 것입니다.
 
한 사람 세례자 요한이 죽으니
숱한 세례자 요한으로 부활하는 그의 제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즉시 예수님이 그 뒤를 잇습니다.
 
금세기 한국의 위대한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예언자처럼 순교적 삶을 사셨습니다.
 
살아계실 때 못지않게 죽으셔서도 남북화해의 큰일을 하시지 않습니까?
 
무수한 이들이 정의와 평화를 염원했던
작은 김대중으로 부활하고 있음을 봅니다.
순교적 예언자의 삶을 살아가는 수도자들입니다.
 
세상을 거슬러,
세상의 빛 되어,
세상의 소금 되어
살아가는 수도자들입니다.
 
어찌 수도자뿐이겠습니까?
 
진정 주님을 믿는 이들 역시 순교적 예언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바로 이게 우리 믿는 이들의 사명이자 존재이유입니다.
 
늘 언제나 그 자리의 중심에 서서 세속에 휘말리지 않고
늘 푸른 솔처럼 살아가는 순교적 예언자들의 삶입니다.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승리, 믿음의 승리, 영혼의 승리, 정신의 승리를 상징합니다.
 
그 누구도 예언자의 영혼을 장악할 수 없습니다.
 
예언자들을 통해 마치 조선 시대 참 선비 상을 보는 듯합니다.
 
인조 시대의 재상 신흠(申欽)은
다음과 같이 선비를 정의하는 데
예언자적 삶을 살아가는 바람직한 수도자 상 같기도 합니다.
‘참 선비는 뜻을 숭상하고(尙志),
  배움을 돈독히 하며(敦學),
  예를 밝히고(明禮),
  의리를 붙들며(秉義),
  청렴함을 긍지로 여기며(矜廉),
  부끄러워 할 줄 안다(善恥), 그러나 세상에는 흔치 않다.’

우리의 배경이신 하느님을 믿을 때,
하느님과 하나 되어 살 때 생사를 초월한 참 선비 같은 자유로운 삶입니다.
 
세상의 유혹이나 위협에 좌절하지 않습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영혼도 육신도 멸망시킬 수 있는 분만을 두려워합니다(마태10,28).
 
예레미야를 백절불굴의 예언자로 만든 것은 이런 하느님 체험이었습니다.
 
이처럼 기도를 통한 살아계신 하느님을 체험해야
순교적 예언자의 삶에 항구할 수 있습니다.

“이제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고,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들에게 맞서게 하겠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일당백의 ‘하느님의 전사’로 예언자적 삶에 항구할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의 말씀과 성체의 은총으로
우리 모두를 작은 예수님으로 부활시켜 주시어
세상의 빛으로 살게 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10).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