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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리읽는 복음 연중 제26주일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삶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25 조회수518 추천수2 반대(0) 신고

연중 제26주일/마르.9,38-43.45.47-48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삶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우리의 궁극 목표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자,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삶입니다.

분도 성인도 그의 규칙에서 “모든 일에 있어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할 것이다(RB57,9).” 라며 우리 삶의 잣대는 하느님 영광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영광! 얼마나 고무적이며 순수와 열정을 북돋우는 말씀인지요! ‘살아 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이다’ 이레네오 성인의 말씀, 바로 인간에 대한 정의입니다.

얼마나 존귀한 품위의 인간인지요! 하느님의 영광인 사람이기에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찬미하며 사랑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우리의 의무이자 권리인 겁니다.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온 마음으로, 온 정신으로, 온 힘을 다해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는 겁니다.

타성적인 사랑이 아니라 늘 새삼스런 감동으로 사랑하는 겁니다. 하느님을 사랑할 때, 저절로 흘러나오는 하느님 찬미 노래입니다. 하느님 찬미할 때 저절로 마음은 순수해집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바로 이게 관상입니다. 마음 깨끗해져 하느님을 보게 하는 하느님 찬미 기도, 바로 관상기도임을 깨닫습니다.

새삼 하느님을 뵙는 관상의 시발점은 하느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임을 깨닫게 됩니다.

성녀 데레사의 마지막 유언 말씀이 무엇인지 압니까? “하느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하느님 사랑, 하느님 찬미, 마음의 순수, 하느님을 봄, 일련의 연쇄 고리를 이루고 있음을 봅니다.

그대로 이 복된 성체성사를 통해 실현되고 우리의 관상체험입니다.

하느님 향한 열렬한 사랑만이 죄악(罪惡)에 대한 최고의 처방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죄 짓는 대로 손을, 발을 잘라 버리기로 하면, 손 발 아무리 많아도 부족할 것입니다. 죄짓는 족족 눈 뽑아버리기로 하면 아무리 많은 눈 있어도 부족할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죄를 짓게 한 손이나 발을 잘라 버리고, 눈을 뽑아 버리라는 주님의 말씀, 바로 죄의 영향이 얼마나 끔찍한지 일깨우기 위한 충격 요법 표현입니다.

죄로 만연된 세상이 아닙니까? 발본색원 하면 할수록 죄의 세력은 강해질 뿐입니다.

나무의 밑 뿌리를 그대로 놔 둔 채 계속 가지 쳐 봐야 끝이 없듯이 아무리 죄의 뿌리를 놔둔 채 아무리 가지치기 처벌해봐야 역시 끝이 없습니다.

죄의 뿌리인 마음의 정화가 근본 대책인 겁니다.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여 끊임없이 찬미가 흘러나오는 순수한 마음으로의 정화입니다.

순수한 마음에서 절대로 죄가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깨끗한 마음에서 깨끗한 생각, 깨끗한 말, 깨끗한 행동이 나옵니다.

이게 긍정적 근본 예방 대책이요, 비용도 훨씬 적게 듭니다. 죄의 결과로 인한 사회적 손실 비용은 아마 천문학적 숫자일 겁니다.

그러니 하느님 향한 열렬한 사랑을 배우고 익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공부, 더 지혜로운 공부, 비용 저렴하게 먹히는 공부 있을 수 없습니다.

자녀 교육에 깊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악마의 퇴치 방법으로 최고의 처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악마가 가장 싫어하는 게 겸손이요 하느님 찬미입니다. 악마의 손쉬운 밥이 되는 게 교만한 자들이요, 겸손한 자들은 악마도 손을 못 댑니다.

아무리 교활한 악마도 겸손한 자들을 도대체 유혹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두를 하느님 찬미에 합류시키는 성무 일도 시간이요, 미사시간입니다. “악마들이여! 주님을 찬미하라”

악마들까지 하느님 찬미에 합류시킬 때, 악마들은 기겁하여 멀리 달아난다 합니다.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여 하느님을 찬미할수록 순수한 마음에 저절로 겸손은 뒤따르게 되니 죄악에 대한 근본치료에 이보다 더 좋은 처방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 향한 열렬한 사랑이 관상의 핵심입니다. 이런 사랑을 지닐수록 드높은 초월적 거점을 확보합니다.

이런 경지에 이르러야 부귀영화를 초개같이 여깁니다. 야고보가 질타하는 세상 쾌락과 사치에 빠진 재물에 눈 먼 부자들이 되지 않습니다.

재물을 소유하되 재물에 소유되지 않는 깨끗한 부자들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돈의 노예 되어 하느님 비전을 잊어버리고 욕망 덩어리 되어 육적 삶을 사는 영혼의 눈 먼 자들은 얼마나 많은 지요.

하늘 높이에서 지상의 것들을 보면 아무리 커봐야 도토리 키 재기입니다.

하느님 향한 열렬한 사랑 지닐수록 마음은 높고 넓고 깊어져 차별과 편견이 사라집니다.

문제들의 해결이 아니라 저절로 문제들의 해소입니다. 문제들도 아닌 것들을 우리의 무지에 기인한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착각하거나 오해하여 어렵게 꼬인 문제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다음 사도 바오로의 사랑의 찬가 중 일부를 통해 바오로 사도, 얼마나 높은 경지의 사랑을 지니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이런 사랑이 만병통치약으로 일치 안에 다양성을, 다양성 안에 일치를 가능하게 합니다.

복음의 예수님, 민수기의 모세 역시 바오로 이상으로 그 관대한 사랑이 정점에 도달한 분임을 알게 됩니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는 없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제자들의 옹졸하고 편협한 마음과 지극히 대조를 이루는 관대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엘닷과 메닷의 예언을 말려야 한다는 여호수아의 조언에 대한 모세의 답변을 통해 모세의 그 바다 같은 관대한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너는 나를 생각하여 시기하는 것이냐? 차라리 주님의 온 백성이 예언자였으면 좋겠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당신의 영을 내려 주셨으면 좋겠다.”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의 영원한 지도자상 모세입니다. 사실 따지고, 밝히고, 캐내고, 추궁하다 보면 공동체도, 관계도 산산조각 납니다.

분별의 잣대는 진실이 아니라 사랑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느님 사랑하며 찬미생활에 충실하다 보면 분별의 지혜는 별처럼 마음 하늘 안에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결국은 모든 것은 하느님 사랑으로 귀착됩니다. 하느님 향한 열렬한 사랑이,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사람이 되게 하고, 순수한 마음의 관상가가 되게 합니다.

관상가가 되는 것은 세례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 모두의 소명이기도 합니다.

마침내 우리 자신들, 하느님의 영광이 되어 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 우리의 구원이요 행복이자 우리의 진면목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 은총이 우리를 관상가로 만들어 줍니다.

아멘.

이 수철 신부 강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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