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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렬신부님복음묵상(밭에 숨겨진 보물)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8-02 조회수1,443 추천수1 반대(0) 신고

 

김웅렬신부님복음묵상

밭에 숨겨진 보물

찬미 예수님.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 하는 말을 유언,

물려주는 물질을 유산이라고 하지요?

이런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30에 부인과 사별 후 아들 둘에게

상처 될까 재혼도 안하고

열심히 키운 아버지가 있었어요.

하지만 아들들은 아버지의 기대와는

다르게 그야말로 개망나니였어요.

아버지는 워낙 성실한 농부였기에

재산도 조금 모았습니다.

이런 아버지가 병이 들었어요.

아버지가 병이 드니 망나니 아들 둘은

속으로는 유산을 기대했겠죠?

아버지는 아들에게 재산을 주어보았자

1년 안에 탕진할 것을 알았지요.

그래서 미리 고아원등

어려운 곳으로 다 빼돌렸어요.

아버지는 임종 때 야산에 보물을

묻어 놓았으니 찾아 공평하게

둘이 나누어 가지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정확한 장소는 말씀을 못하시어,

장소는 뒤의 돌투성이인

야산이라는 것만 알았어요.

아들들은 장례도 치르는 둥

마는 둥 서둘러 곡괭이를 들고

산으로 갔어요. 보물이 있다니까!

하지만 그 넓은 땅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는지 막막했어요.

맨 돌에 땅이 말라있으니.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어도

아무리 파도 보물은커녕

동전도 안 나오는 거예요.

두 형제는 투덜거리면서도

반년을 땅을 파도 안 나오니

속상해서 산 위에서 술을 한잔 했어요.

그러면서 밑을 내려다보니 6개월 동안

판 땅이 보이는데

개간이 되어있는 거예요.

그 때, 큰 아들은 깨달았어요.

아버지가 우리에게 부지런히

내 손으로 노력해서 생활하는 법을

가르쳐주신 거구나.”

다시 말하면 물고기를 잡아서

입에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주신 거지요.

그때야 두 아들은 끌어안고

불효했던 것을 뉘우치고, 6개월 동안

일군 그 땅을 열심히 가꾸어

재산을 늘려가면서 어질게 살았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가 있어요.

,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값진 유산을 주셨어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맞습니까?

예수님만큼 값진 유산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그리스도라는 보물을

어떻게 찾아야하는지

오늘 복음을 통하여 설명해주십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오늘 예수님이 이야기하시는 예는

그 당시로는 가능했던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대부분

귀중품을 땅에 묻어두었습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이라고하는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싸움이

많았던 지역이었습니다.

땅에 보물을 묻고 피난가고. 그런데

그 주인이 죽고 못 돌아올 수가 있어요.

그러면 보물이 묻힌 곳을 모르는데,

누가 그 땅을 소작 받아

일을 하다 보물이 나오는 거예요.

이런 일은 종종 있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첫 번째,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을 발견한

이 사람은 우연히 보물을

발견했다기보다는 매일매일 성실한 삶

가운데서 발견했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가 남의 땅을 소작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하는 것은 평범한 농부로서

일하는 가운데 귀중한 보물을

발견했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발견하는

장소는 교회만이 아닙니다.

레지오나 빈센시오 활동하는 것만이

하느님 나라를 발견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발견하는

귀중한 장소는 우리가 일하는

바로 그 곳입니다.

전해 내려오는 예수님의 말씀 중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돌을 들어보아라,

돌 밑에 내가 있으리라.

나무를 쪼개 보아라.

그 나무 가운데 내가 있으리라.“

석공이 돌을 쪼고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예수님이 바로

그 자리에 계시다는 말 일겁니다.

참된 행복, 참된 만족,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그날그날 정직하고 양심적으로

하루하루를 마지막으로 알고 살 때

분명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기도의 밭이 있고,

가정의 밭이 있고,

때로는 십자가의 밭이 있고,

그리고 우리가 일하는

일터의 밭이 있습니다.

기도의 밭을 성실히 거르지 않고

매일매일 열심히 가꿀 때

우리는 예수님 만납니다.

기도의 밭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가장 중요한 기도는 십자 성호입니다.

여러분들 하루에 몇 번씩이나

여러분 몸에 축성하십니까?

제대로 된 천주교 신자라면

하루에 적어도 20번 이상은

성호를 그어야만 합니다.

아침, 저녁기도 전후, 식사 전후,

묵주기도 전후, 삼종기도 전후

틈틈이 화살기도 등

하루에 20번 이상 성호를 안 긋고

산다면 기도 안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기도의 반의 첫 단추는 성실하게

십자성호를 긋는 것입니다.

주일미사의 성공여부는

성당 문을 열고 들어오며 성수를

찍으면서 얼마나 정성을 다하여

내 이마와 가슴과 양 어깨에

십자표를 긋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정말 정성을 다해서

십자성호를 긋고 오는 분도 있지만,

안타깝게 많은 분들이 안 긋습니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면서도

24시간 가운데 기도로 봉헌하는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어느 통계학자가 조사에 의하면,

사람의 일생 중 제일 많이

차지하는 것은 잠이라 합니다.

70년을 기준으로 하루에

7시간씩 자는 사람은 21년을

자는 것입니다.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대요.

남자는 86개월,

여자는 67개월.

목욕하고 자기 몸 가꾸는 데는

여자는 9년 반,

남자들은 6년 정도랍니다.

아무튼 이 학자는 영원한 세상을

가기 위하여 70 평생 얼마나 기도를

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70년을 기준으로 6개월.

6개월도 하루에 15분씩

매일 기도하는 사람 기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솔직히 매일같이

15분씩 기도 하십니까?

설령 기도한다하도라도 그 15분 동안

온전히 기도합니까?

우리는 세상 것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투자합니다.

하지만 영생을 얻기 위해서 투자하는

시간이 내 일생에 1/140 뿐입니다.

일상의 기도를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만나는 보물을 찾을 수 있을까?

그 사람이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봉사하는 사람이든 그 직책이

사제든 주교든 추기경이든

기도의 밭을 가꾸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절대 보이지 않을 겁니다.

마귀는 이것을 알기에 개인마다

가정마다 교회마다 공동체마다

기도를 끊어버립니다.

그래서 레지오를 가도 묵주기도

빨리 해치우고, 2차 주해를 더 기다려요.

기도를 흘려버리면 안 됩니다.

저녁에 온 식구 둘러앉아 손잡고

하루 받은 은혜에 감사드리며

만과 드리는 집이 얼마나 될까?

1프로도 안돼요.

마귀새끼들이 기도 다 끊어 놓았어요.

기도 안하니 어떻게 됩니까?

기도 안하니 마음은 세속 마인드.

바깥세상의 생각으로 들어와

정화를 시키고 나가야하는데,

아무리 좋은 이야기 들으면 뭐합니까?

요즘 밭에 뿌려진 씨앗이야기 나오지요?

밭이 중요합니까? 씨앗이 중요합니까?

당연히 땅이 더 비싸니 중요합니다.

문제는 우리 마음의 밭이에요.

아무리 좋은 말씀을 열심히 들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다고 한다면,

그 열매를 맺게 해주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 기도의 밭에서 예수님이라고 하는

보물을 찾아내지 못하면

우리는 껍데기만 천주교 신자요,

그냥 좋은 취미 생활하는 것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닐 겁니다.

성실하게 성사생활을 하는데서

그리스도를 찾을 수 있습니다.

또 우리의 가정의 밭이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사랑을 가지고 하다못해

밥 한 끼를 준비하면서 예수님을 찾습니다.

그런데 요즘 주부들 보면

밥을 안 한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서

남편에게 해달라고 한답니다.

여기도 내가 아는 사람 많아!

이렇게 음식하면 우리 아이들이

내 남편이 좋아하겠지?’ 하면서

요리하면 즐거울 것 같은데,,

아이구! 신부님도 한 40년 해보세요.

재미있나?’ 하시겠지만요.

빨래를 하면서도 사랑을 가지고 하면

예수님을 만나요.

깔멜 수녀원에 계셨던

소화 데레사 성녀이야기입니다..

그 안에 빨래터가 있었는데,

성격 급하고 터프한 수녀님 옆에는

다른 수녀님들이 앉지 않았대요.

그런데도 소화 데레사 수녀님만

그 옆에 앉아서 구정물을

뒤집어 쓰셨대요.

그래서 다른 수녀님들이

왜 그 옆에 앉아 구정물을

뒤집어씁니까?”

하고 물으니,

저는 예수님이 받으신 매, 모욕,

고통을 천분의 1일이라도 느끼겠다는

마음으로 옆에 앉습니다.

또 다른 일화는 일찍 세상을 떠난

성녀는 자기가 옷을 입을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해졌어요.

그래서 동료수녀들이 소임 받으러 나가면서

소화데레사 성녀의 옷을 입혔어요.

지금 수도복은 간단하지만

예전엔 복잡했고, 아파서 누워있어도

기본적인 수도복은 입어야했어요.

그런데 하루는 한 수녀님이

옷을 입혀주다 옷핀이 살을 뚫었대요.

줄만 잡아당기면 도움을 청할 수 있었는데,

저녁에 그 수녀님이 오실 때까지

가만히 있었대요.

수녀님, 왜 종을 치지 않으셨습니까?”

예수님의 못박히심을 1/1000이라도

느껴보려고요. 등에 이런 작은 빈

하나도 이렇게 힘든데,

20cm가 되는 쇠못이 주님의 손목을

끊을 때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우리는 내가 머무는 위치,

그 상황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하면 주님을 만나지만,

짜쯩으로 하면 우리 마음에는

어둠밖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두 다리를 못 쓰는

두 살 터울 동생을 형이

등에 업고 등하교를 합니다.

덩치도 비슷한데 십리 길을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갑니다.

동네사람들이 힘들지 않냐 물으니,

안 힘들어요. 내가 사랑하는 동생인데요.”

회사에서 일을 할 때 가족을 생각하면서

일을 하면 예수님이라는 보물을 발견합니다.

하찮게 생각되는 일이라도

성심성의껏 하다보면 우리들은

보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밟히고 더러워지고 이런 고통 속에

산다하더라도, 모욕을 당하고

자존심이 상한다 하더라도

이 순간이 예수님을 만나고 하늘나라를

발견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하면,

그 밭은 보물이 묻혀있는 밭 일겁니다.

한평생을 수도원에서 접시 닦는

일만하신 위대한 영성학자며

신비가였던 로렌스 수사는

나는 거룩한 미사때도 예수님을 만나지만,

매일같이 반복되는 부엌에서

접시를 닦으면서도 어느 때 보다도

예수님이 내 가까이 계심을

나는 느낍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매일 매일 다람쥐 챗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입니다.

직장가고, 장사 나가고,

저 같으면 같은 일상들,,,

이럴 때 찾아오는 것이 무관심,

불감증이라는 병에 결리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늘 깨어 기도 하라는 것은

하루하루를 마지막으로 알고 살 때,

오늘 드리는 기도가

내 생애의 마지막 기도요,

오늘 내가 하는 이 일이 내 생애의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디 짜증이 나고 어디 딴청을

피우겠습니까?

가족을 위해 마지막 밥을 하는 마음으로

만들면 얼마나 지극정성을 다하겠습니까?

또 용서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늘 우리의 유한성을 못 깨닫습니다.

내년에 하면 되!

그런데 문제는 내년이 올지 안올지

모른다는 겁니다. 내일이 올지

안 올지 모른다는 겁니다.

글쎄요. 내년 이 시간에 여기 계신 분들

살아계실 자신 있습니까?

저는 자신 없습니다. 그냥 살아보는 겁니다.

교도소에만 사형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넓은 의미로 모두 사형수입니다.

두 번째 비유의 의미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지불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귀중하게 여겼던 이제까지의

야망이나 목표를 포기해야만

그 보물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버리려했던 악습이나 생활태도도

과감히 버리려고 애써야합니다.

다른 헛된 보물들을 미련 없이

버리고 살아야합니다.

오늘 1독서에 나오는 대로 왕위에 올랐던

솔로몬이 기브온에 가서

하느님께 지혜를 청했듯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하느님께

지혜를 청해야합니다.

세상사는 방법의 기교가 아닌

하느님과 인간의 길을 깨닫고 자신을

깨닫는 지혜를 청해야합니다.

오늘 본기도에 풍성한 자비로

저희를 보살피고 이끄시어,

저희가 지금 현세의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며,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하게 하소서.”

라고 나옵니다.

보물 같은 예수님, 진주 같은 예수님을

먼 곳에서 찾지 맙시다.

피정 때만 찾지 맙시다.

성지에 와서만 찾지 맙시다.

여러분 집에서 은총을 발견하지 못하면

세상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은총은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와 있는 은총을 겸손하게

발견하고, 고백하고, 감사하고,

봉헌의 삶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껏 내 가장 가까운 곳에

보물이 있었다고 하는,

내 아내가 보물이요, 내 자식이 보물이요,

내게 상처를 주었던 그 사람 덕에

하느님께 매달릴 수 있었다는

마음으로 이 미사 봉헌합시다.

2017년 연중 제17주일(7/30)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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