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시험의 두려움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06 조회수669 추천수8 반대(0) 신고

 

 

 

연중 4주간 금요일 - 시험의 두려움

 

오늘 인생에서의 마지막 시험을 치렀습니다. 유학 와서도 칠년 만에 시험이 끝난 것입니다. 한마디로 지긋지긋한 시험들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보는 시험 방법은 한국에서 보는 방법과 조금 다릅니다. 한국은 대부분 필기로 보지만 이 곳에선 대부분 교수와 일대일 오랄, 즉 말로 시험을 봅니다.

처음에 저를 가르친 교수 앞에서 배운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두려웠었습니다. 특히 잘되지 않는 남의 나라말로 시험을 보려면 며칠 전부터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여기저기서는 재시(시험을 통과하지 못하여 다시 보아야 하는 것)가 걸려 곡소리가 나오기도 하는 등 유학에서 가장 스트레스 받는 시기가 바로 시험기간입니다.

처음엔 첫 해가 가장 힘들고 가면 갈수록 시험이 쉬워질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첫 해엔 말을 잘 못하니 몽땅 외워서 시험을 보아야 하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하였지만 말을 조금씩 더 잘하게 되면서는 요령이 생겨서 첫 해만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시험 성적이 떨어져서 급기야는 유학 육 년차 때 첫 재시를 받아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시험의 부담감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말 잘하는 이태리 학생들도 힘들어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험은 누구에게나 시험인가 봅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시험을 치르다보니 매번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내 자신이 싫어졌습니다.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방법은 없는가?’

해답은 ‘없다.’였습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완벽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교수님이 어떤 일로 화가 나 있거나 한 반을 본보기로 다 재시를 줄 때는 피해나갈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준비를 완벽하게 하더라도 100% 통과에 대한 확신을 갖고 여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일반적으로 ‘이 정도’만 하면 마음이 안심이 되는 수준은 있습니다. 그 수준은 남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다보면 ‘이 정도면 됐어!’하며 스스로 위안이 되는 정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 정도만 하면 이변이 없는 한 통과는 할 수 있다.’는 수준이 있고 그 수준은 내가 내 스스로 내리게 됩니다.

만약 시간이 없어 공부가 스스로 만족할 ‘그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면 시험 보러 들어갈 때까지 기도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 불안감은 다른 누구보다도 스스로 공부하지 못한 것을 잘 알고 있는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스스로는 공부를 하지 않은 자신이 재시나 과락을 맞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을 스스로에게 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00%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안심하고 있을 수준까지는 미리미리 공부해 놓는 것이 스트레스를 안 받는 지름길입니다.

 

삶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삶도 시험과 같습니다. 시험관은 당연히 하느님입니다. 내가 통과할 수준만큼 살고 있는지 살고 있지 못한지는 내 스스로 잘 압니다. 내 스스로 안다기보다는 양심이 압니다. 양심은 하느님 이전의 내 자신의 심판관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수준으로 살고 있다면 양심이 ‘넌 통과 했어.’라고 말해주고 그러면 하느님께서 벌을 주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느끼게 해 주어 안심시켜줍니다. 그러나 스스로 아무리 잘 살고 있다고 머리로 되뇌어도 양심이 ‘넌 지금 위험수위야!’라고 한다면 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불안한 맘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고 다닌다는 말을 듣자 헤로데는 얼마 전에 자신이 죽인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며 몹시 두려워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아니면 그런 기적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살아있을 때도 기적을 행한 적이 없었습니다.

잘못을 하면 이성적으로는 그것을 아무리 정당화하려고 해도 양심은 속일 수 없습니다. 그 양심은 죄를 지은 사람을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끝없이 괴롭힙니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당연하다는 것까지 양심은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언제 자신에게 벌이 떨어질지 몰라 항상 불안해하며 살아가게 되고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에서까지 두려운 이유를 찾아내어 두려워합니다.

 

그렇다면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적어도 양심이 ‘그 정도면 됐어.’하는 소리를 할 때까지 주님의 가르침에 충실히 사는 방법 외엔 없습니다. 마지막 날 자신을 심판하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신의 양심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작은 시험과 같은 하루하루, 시험 준비가 안 되어 불안함에 떠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스스로 구원받았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자유로움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우리 삶을 그리스도의 말씀에 일치하며 살아가도록 합시다.

 

 

로마에 유학 중이신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복음 묵상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