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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유인" - 1.2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21 조회수556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1.21 수요일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히브7,1-3.15-17 마르3,1-6

                                                              
 
 
 
"자유인"
 


환경이나 자리에서, 또 지위에서 자유롭기는 참 힘들어 보입니다.

이미 몸과 마음에 배어 익숙해지고 편해지고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매일의 복음말씀은 그대로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복음의 마음이 완고한 바리사이들을 비난하기는 쉽지만
과연 우리가 바리사이의 처지에 있다면
바리사이처럼 처신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바리사이의 처지에 있으면서도
예수님처럼 자유롭게 처신할 수 있을까요?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리에 안주하다보니,
또 생존이 직결된 직장이다 보니
때로 영혼 없이 살아가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진정 환경이나 자리, 지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멋있는 자유인입니다.

복음 묵상 중 퍼뜩 떠오른 생각은
손이 오그라든 불구자도 문제지만
바리사이처럼 안식일 법에 굳어 오그라진 완고해진 마음의 불구도
큰 문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몸은 건장해도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 불평, 불만, 열등감 등
부정적 사고나 의식으로 마음이 오그라든
마음의 불구자들도 참 많을 것입니다.

대자유인이신 예수님은 참 사람의 전형입니다.
예수님은 그 무엇에도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셨습니다.
 
분별의 잣대는 단 하나 하느님의 자비로운 마음이었습니다.
 
법으로 보면 복잡하지만
하느님 자비의 마음으로 현실을 직시하면 답은 참으로 단순합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이미 답은 질문 안에 자명하게 들어납니다.
 
예수님의 단도직입적 지혜로운 질문에
말문이 막힌 바리사이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합니다.
 
어찌 보면 법대로 처리하면 간단할 수 있습니다만 무책임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인간 현실을 제대로 판단하려면
법과 더불어 반드시 살아있는 인간 현실에 대한
하느님 자비의 마음이 있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 법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안식일 법과 인간 현실을 동시에 하느님 자비의 마음으로 읽은 결과
주님의 지혜로운 판단이었습니다.
 
바리사이 같은 법관들보다
예수님 같은 법관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손을 뻗어라.”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합니다.
 
바리사이들의 반응이 점입가경입니다.
오그라져 완고해진 마음이 더욱 오그라져
해로데 당원들과 작당하여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모의하니 말입니다.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마음을 펴라.”

회당에서 손이 오그라든 이들 고쳐주신 주님은
이 성전 미사에서 우리 모두를 향해 대사제로서 명령하십니다.
 
주님과 하나 되어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의 힘으로 살아갈 때
비로소 환경이나 자리, 지위에서 점차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말씀대로
육적인 혈통과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영원한 대사제가 되신 주님은
하느님의 권능으로
이 미사 중 우리의 오그라져 완고해진 마음을 활짝 펴주시어
자유인들 되어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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