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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82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05 조회수435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성녀 아가다 동정 순교자 기념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7-1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7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며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떠나라 하시며 다만 지팡이는 가지고 떠나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마태오와 루카복음서에서는 지팡이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가고, 안 가지고 가고 하는 이런 문제는 별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만 성경도 동일한 사실에 대하여 이렇게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던 복음이어서 늘 기억하고 있는 복음입니다.

성경의 무오설을 주장하는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할 기회가 있으면 저는 그 반박의 논거로 오늘 복음의 지팡이를 예를 들고 있습니다. 마르코복음서에선 지팡이는 지참하라고 하였고, 마태오와 루카복음서에서는 지팡이도 지참하지 말라고 하였으므로 이렇게 서로 상반된 기록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물음에 ‘성경도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수긍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므로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것도 지참하지 말고 떠나라는 오늘 말씀은 무소유를 말씀하신 것으로 묵상하고 있지만 무소유는 우리 삶의 전체 과정에서 더 의미가 있는 말씀이므로 파견되어 길 떠나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오늘 복음의 의미는 산상설교에서 '세상 걱정과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주시면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마태 6, 31-34)고 하신 말씀을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다시 알려주고 계신 것으로 묵상하였습니다.

무소유를 실천한 사람은 알렉산더 대왕에게 '나의 햇빛을 가리지 마라'는 일화를 남겼던 디오게네스이며, 디오게네스를 추종하는 학파를 견유학파(犬儒學派)라 부르고 있습니다. 견유학파는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신의 특징이며, 필요한 것이 적을수록 신에 가까운 자유로운 인간’으로 생각하였습니다. 1980년대 역사적 예수 탐구 운동을 벌였던 크로상(John Dominic Crossan)이 ‘역사적 예수는 갈릴리의 견유’로 규정한 것은 오늘 복음 등에서 연유된 듯합니다.

파견 떠나는 제자들에게 오늘 특별히 당부하신 것은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하였습니다. 개신교는 거주하는 지역에 관계없이 교회를 선택하고 있지만 저희들은 그 지역을 떠날 때까지는 본당을 옮길 수 없습니다. 저희 가톨릭은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하신 오늘 이 말씀을 충실히 지키고 있습니다.

저희들도 개신교처럼 거주지에 관계없이 본당선택권이 있다면 아마 예수님의 가르침보다는 다른 요소를 더 중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성당도 소위 출세하였다는 사람들이 다니는 성당이 생겨나게 될 것이므로 생각만 하여도 아찔합니다.

 오늘의 관점에서, 우리 평신도의 관점에서 이 말씀은 우리 모두가 각자 처한 입장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라는 말씀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데는 때와 장소가 따로 없고 경중이 있을 수 없으므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라는 그런 의미로 새겨두려고 합니다.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하셨으나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으로는 믿기지 않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더 자세히 설명한 마태오복음서에 의하면 이 말씀에 부연하여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마태 10, 14-15) 하셨습니다. 심판의 날에는 그 땅의 먼지마저도 구원받지 못하도록 발밑의 먼지까지도 모두 그 땅에 버려두고 오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의미이지만 구약의 정서가 그대로 남아있는 표현으로 초기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각의 일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 구절로 생각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이런 사고를 가진 교인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우려를 느끼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내일은 걱정하지 말고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내일을 모르기 때문에 오늘이 불안하고,
자나깨나 자식들 걱정이어서 저희들의 삶은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합니다.
이런 불안과 걱정을 극복하고 주님의 평화 속에서 살아 갈 수 있도록
언제나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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