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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 제가 이렇게 삽니다"(2)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6-23 조회수489 추천수4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강길웅 신부의 소록에서 온 편지

2 가객여운(佳客如雲)

"예수님, 제가 이렇게 삽니다"(2)
내 방에는 빗이 제법 여러 개 있다. 그렇다고 내가 빗 수집가냐 하면 그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여행할 때마다 빗을 챙길 줄 모르 는 건망증 때문에 그때마다 현지에서 구입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이다. 언제부터인지 건망증이 참으로 심하게 되었다. 서울의 모 수녀원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새벽에 미사를 드리 기 위해 세수를 하는데 빗이 없었다. 춥다고 가뜩이나 이불을 뒤 집어쓰고 잔 탓에 머리가 엉망이었는데 빗이 없으니 아주 낭패였 다. 갑자기 어디 빌릴 짬도 없어 방금 양치질을 한 칫솔로 머리를 여러 번 문대고 보니 그런 대로 가닥이 좀 잡히는 듯했다. 미사 시간이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고 인사를 할 때마다 수녀님들이 킬킬대며 웃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불안하기가 그지없었 다. 그때마다 손을 살짝 올려 몰래 머리를 매만지곤 했으나 마음 이 온통 불안하여 이게 미사를 드리는 건지 헤어쇼를 하는 건지 거룩한 전례가 아주 엉망이었다. 어떻게 미사를 끝냈는지 모른다. 미사 후의 일이었다. 미사 중에 있었던 사건(?)을 모른 체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건 더 창피한 일이었다. 그래서 칫솔로 머리 빗은 사실을 실토 했더니 수녀님들이 배꼽이 빠지라고 웃는데 정말 '쪼다(?)' 가 따 로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수녀님들이 미사 때 웃은 것 은 그냥 호감의 표시였지 다른 뜻은 없었다. 그런데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공연히 '칫솔' 사건을 입 벌려 망신만 당했다. 그리고 더욱 어이가 없었던 것은 나중에 짐을 챙기다 보니 가방 의 작은 포켓에 빗이 두 개나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집에서 가끔 그랬듯이, 마치 신발 닦는 칫솔로 이를 닦은 심정이었다. 어디 그 런 일들이 한두 번일까마는, 늙지도 않아서 건망증이 심하니 부끄 러울 때가 가끔 있다. 전에 시골본당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그때가 한참 모내기철이었는데 마침 그 시기에 산 넘어 '밤골' 이라는 마을에 회갑을 맞는 할머니가 계셨다. 그래서 본당의 몇 자매들과 함께 오후 5시에 그 집에 가서 미사를 드리기로 했는데, 천상 걸어서 가야 하는 그 거리는 시간만도 1시간은 족히 걸리는 곳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들에 나가 신자들 논에 모를 심으며 술을 몽땅 마셨다. 하루 종일 일하고 지친 몸에 술까지 과하게 마셨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사제관에 돌아와서는 저녁밥도 거르고 낮잠인지 밤잠인 지 분간을 못하고 잠을 자는데 왠지 사제관 앞마당에서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그렇지만 나는 너무 취했기 때문에 그냥 덮어 버리고 잠을 잤는데 나중에 눈을 뜨고 보니 밤 9시였다. 그리고 그때 퍼뜩 생각이 났다! 맞다! 회갑미사를 가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지나 버려 이제 막 서둘러 간다 해도 밤 10시가 돼야 미사를해야 하니 참으로 갑갑한 일이었다. 그래도 허둥지둥 성당에 들어가 준비하고 나오니 함께 가기로 약속했던 할머니들이 비로소 얼굴을 내밀면서 당신들은 오후 4시부터 오셔서 내가 잠이 깨기를 기다리셨노라고 하셨다. 보통 사건이 아니었다. 미안하다는 인사를 할머니들께 열 번, 백 번하면서 달도 없는 산길을 넘어가니 회갑 집에서는 좋아서 난리가 났다. 이 밤중에 신부님이 잊지 않고 오셨다고 그 마을의 신자들이 다 나와서 얼마 나 기뻐하는지 밤에 벌어진 잔치가 더 풍성했다. 좌우간 그 날 10 시에 축하미사를 하고는 또 술을 몽땅 마시고 밤 자정이 넘어서야 그 집을 떠났다. 사람의 정이라는 것이 그랬다. 비록 약속이 늦긴 했어도 잊지 않고 찾아 주었다는 그 사실 때문에 그 마을 신자들이 모두 산꼭 대기까지 따라 나와서 나를 전송을 했다. 그때 내가 비록 실수를 했지만 그 실수한 밤이 얼마나 따뜻하고 은혜로웠는지 지금 생각 해도 가슴이 따뜻하기만 하다. 그래도 건망증은 유쾌한 것이 아니다. 바로 엊저녁이었다. 제의방에서 미사 전에 옷을 입다가 문득, 미사 후에 레지오 교 육이 있다는 것이 생각나서 헐레벌떡 사제관으로 뛰어갔으나 막상 사제관에 도착해서는 내가 뭐 때문에 거기까지 뛰어왔는지 를 몰라 멍하니 섰다가 그냥 돌아와 미사를 드리는데 뭔가 이상하 게 불안했다. 아무리 생가해도 내가 왜 사제관까지 갔는지를 몰랐 다. 영성체 후 묵상에 일러서야 퍼뜩 레지오 교육 생각이 나서는 끝 나기가 무섭게 다시 사제관에 달려가 교본과 출석부를 가져왔으 나 사람들이 왠지 교육받을 생각을 안 하고 미사가 끝나자 그냥 나가는 것이었다. 이건 데모도 뭣도 아니오 본당신부에 대한 대단 한 도전이요 반발이었다.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언성을 높이면서 나무라듯이 말했다. "왜 교육을 안 받고 나갑니까?" 그러자 자매들이 '별놈 다 봤다' 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더니만 웃으면서 대답했다. "레지오 야외 행사 때문에 교육이 없다고 신부님이 지난주에 말 씀하셨잖아요!" 이쯤 되면 할 말이 없게 된다. "예수님, 제가 이렇게 삽니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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