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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2013년11월3일 연중 제 31주일 복음묵상)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03 조회수489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3년11월3일 연중 제 31주일 복음묵상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마태오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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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있었다. 키가 유난히 작았던 사람....
시대와 상관없이 키가 작은 남자는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게 마련인가보다.
힘의 논리가 이 세상에 없어지지 않는 이상, 키 작은 남자들은 유치한 열등감에 사로잡히나 보다.
이스라엘의 예리고 땅 그곳에 그는 부자로 살고 있다.
세금 징수인으로서 민족을 배신한 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동족에게 거두어들인 돈을 로마제국에 바친다.
그로 인해 떨어지는 수익도 적지 않다.
하여 그는 부자로 살고 있다.
최소한 대놓고 침을 뱉거나 욕을 하는 동족들은 없다. 돈이라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자신도 이런 일로 동족에게 욕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서글픈 작은 몸뚱이로는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물려받은 것도 없었고 배경도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키가 작아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치이며 무시 받으면서 살아온 삶이었다.
이러한 모멸과 무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은 돈이라는데 그 생각이 머문다.
하여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무엇인가 늘 부족한 것이 있다.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늘 마음을 편치 못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

이상한 소문이 돈다.
나자렛 출신 예수라는 젊은 예언자에 대한 소문이다.
그 사람은 지금까지의 여느 예언자들이나 선지자들과는 다르다고 사람들은 떠들어 댄다.
마음이 아픈 사람이든 육체가 병든 사람이든 그분을 만나면 치유가 되고 해방이 된다고 하는 황당한 소문이다.
흘려버리려고 해도 자꾸 그 소문의 주인공이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이 동네 앞길을 지나간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웅성웅성 여기저기서 들떠 움직이고들 있다.
"나는 만족하고 살고 있지 않은가?
남들이 갖지 못한 부도, 그에 따른 어느 정도의 권력도 맛보고 있지 않은가?
더 이상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 소문의 날짜가 다가온다. 신경 쓰지 않고 일에나 집중하려 하지만 이상하게도 흩어지는 마음이다.
"그래. 밑져봤자 본전 아닌가?
그 사람의 모습이라도 보아야겠다.
왜 사람들이 그리도 난리를 치는지 말이다."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려 하니 시간이 갑자기 더디게 가는 느낌이다.
내일이면 그 사람이 이곳을 지나친다.
잠이 오지를 않는다.
불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그냥 가볍게 풍물패들이 지나간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생각하려고 해도 잘 되지를 않는다.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새운다.
새벽닭이 아침을 알린다.
방안의 가구들이 모두 눈에 들어온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운 게다.
개운치 못한 몸을 일으킨다.
몸을 닦고 아침 기도를 올린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나갈 차비를 한다.
시간이 다가왔나 보다.
사람들이 시끄럽게 먼지를 일으키며 어디론가 달려간다.
그 사람이 왔나 보다.
"이럴 때가 아니지 나도 그 사람을 봐야지."
대강 걸치고 가죽 샌들을 신고 문을 박차고 나간다.
"이런! 여기서도 나의 자라다 만 키가 혐오스럽구나.
사람들 때문에 도저히 볼 수가 없지 않은가?
젠장! 에라 모르겠다.
체면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저 돌무화과 나무 위에라도 올라가야겠다."
그 사람이 드디어 지나간다. 보인다. 그 사람이 보인다.
"왜 가슴이 뛰는 걸까?
처음 보는 사람이건만 왜 이리도 기다렸던 사람처럼 느껴지는 걸까? 모를 일이다."
" 앗! 그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 눈빛. 그 느낌. 눈을 마주칠 수가 없구나."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아니! 저 사람이 나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나의 이름을 말이다. 어떻게 내 이름을 ...... !?."
급히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키 작은 자캐오, 사람들을 헤치고 그 분 앞에 떨리는 마음으로 다가선다.
"오늘은 내가 너의 집에서 머물러야겠다."
자캐오는 당황한다.
무슨 말로 답변을 해야 할 것 같다.
주변의 사람들의 눈빛이 곱지 않다.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 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은 갚아 주겠습니다."
그분께서는 말씀하신다.
"오늘 이 집은 구원을 얻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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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양한 아픔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본능과 의지는 그러한 아픔을 가능하면 피하려 한다.
아픔을 즐긴다는 것은 정신병자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인 진실이 여기에 또 하나 있다.
아픔이 없으면 그분에게 다가설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 다가설 수 있는 마음이 생기지를 않는다.
이해할 수 없이 다가온 아픔, 피할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도 결국은 나의 몫이 된 아픔.
이러한 아픔을 사랑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단 피할 수 없는 아픔이라면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말이다.
그래야만,
우리가 그 아픔을 통해 하느님을 찾으려는 마음이 열리기 때문이다.
늘 우리 앞에 계셨던 그분을 비로소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대로 된 아픔은 하나의 커다란 은총이라는 것을 신앙 안에서 고백하게 된다.
"저의 재산의 반을 불쌍한 이웃에게 주겠습니다.
혹시 사기쳐 얻은 돈이 있다면 그의 네 배를 쳐서 돌려주겠습니다."
이러한 고백이 쉽게 나올 수 있는 고백이겠는가? 현실의 자신의 모습을 보라.
과연 가능하겠는가?
자캐오는 참으로 많이 아팠던 게다.
그가 원하던 것을 드디어 발견하고 다른 모든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진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이러한 체험이 우리 각자에게 필요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신이 그분께 다가서기 위해 망설이는 그 무엇이 있다면 아직도 당신은 그분을 체험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느님께서는 절대로 우리에게 재물을 원하시지 않는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재물로 빼앗긴 마음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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