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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세상의 등불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21 조회수530 추천수3 반대(0) 신고
그리고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코 1:7-11)
 
한 무신론자가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등불이라면
틀림없이 누군가가 스위치를 올려 불을 켜는 것을 잊어버렸을 것이다.”
“1960년 이후로 폭력죄는 560% 증가하였고 불법출생은 400% 증가하였으며
이혼율은 네 배로 늘어 났고 외짝 부모 밑에 자라는 어린이의 수가 세 배가 되었다.”
1960년대 당시 미국의 작가로 <내셔널리뷰(National Review)>지(誌)의 편집자이며
TV프로그램 <파이어링 라인(Firing Line)>의 진행자로 유명했던
윌리엄 F. 버클리 주니어(William F. Buckley, Jr., 1925-2008)는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포자기하고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던 시절의 상황은 과연 어떠 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서에서 요한이 한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마태오 3:7-12)
이 당시의 상황은 오늘날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시고
요르단 강 가운데에 서 있는 요한에게로 가셔서 세례를 달라고 하셨다.
요한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처하면서 몹시 당황하였다.
예수님께서 계속하여 세례를 달라고 요구하시자 요한은 마지못해 세례를 주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공생활을 시작을 알리시기 위하여
구태여 받지 않으셔도 되는 세례를 많은 군중 앞에서 받으시는 연출을 하신 것이다.
프랑스의 소설가·평론가인
앙리 다니엘 롭스(Henri Daniel- Rops, 1901-1965)는 그의 책
죽음이여, 그대의 승리는 어디에 있느냐(Death, where is thy victory?)』에서 이 의문을 풀이하고 있다.
 
지하묘지의 그림이나 옛날의 조각이나 전례 서적,
모자이크나 스테인드 글래스에서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작가는 예수님께서 받지 않으셔도 되는 세례를
왜 받으셨느냐 하는가에 대하여 집요하게 매달렸다.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작가는 파리 외곽에 있는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래스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였다.
중세 때 덴마크 사람 잉게보르그(Ingeborg)는 시편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의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루면서
예수님의 세례장면만 빼놓고는 아주 강렬한 색깔을 사용했다.
 
왜 그랬을까?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솔직하게 자신의 개인생활을 돌아보도록 요구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 물로 세례를 받으신 것처럼
무엇보다도 먼저 깨끗하게 우리 자신의 죄를 씼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버클리가 말한 자포자기하고 있는 인간세계의 문제에 눈을 돌려야 한다.
변화는 자신의 집과 자신에게서 먼저 일어나야 한다. 가능한 한 빨리 단순해져야 한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대로 우리들은 죄밖에 내세울 것이 없지만
아무 죄도 없는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먼저 깨끗히 씻은 후에
사람들을 변화시키시려고 세례를 청하신 것이었다. 어느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주님은 솔선수범하시는 분이시지 말만 앞세우시는 분이 아니다.
 
알칸타라의 성 베드로(St Peter of Alcantara)가 말했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에 계시가 있는 법이다.
진정으로 새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바로 지금 회개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죽으셨다.
그분께 우리의 사랑을 보여드리려면 그분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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