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약해져야 강해진다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13 조회수489 추천수2 반대(0) 신고
“상처가 나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습니다....”
한 목사가 2차 대전 중에 입은 상처 때문에 두 다리를 잃은 절친한 친구에게 말했다.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목사로서 사목을 계속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덫에 걸려 쓸모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고 느꼈지만 서서히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 났습니다. 다시 목회할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한 것입니다.
의사들이 유사한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에게 설교해줄 것을 부탁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은총이 그에게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치유가 되었습니다.”(미국의 루터교 목사 로버트 허홀드)
 
 이 목사의 경험은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인들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의 앞 부분을 생각나게 한다.
“우리 주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란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란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2코린 1:3-4)
 
바오로 사도는 이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실제적이고 사목적인 주제를 말하고 있다. 그가 실제로 앓은 병을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병이 나에게서 떠 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 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12:8-10) 
 
이와 같은 주제로 롤하이저 신부가 쓴 묵상글이 있다. 
 
“우리는 남과 다르기를 바라는 마음, 특별하기를 바라는 마음, 비상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또 자신의 탄생이 우연이 아니기를 바라고, 하느님의 손길로 태어나기를 바라고, 신성한 절대명령에 의해 존재하기를 바란다. 또 죽음에 대한 불안이 치유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심리적인 압박이 아주 크고, 자신이 평범한 사람으로 우연히 태어났고,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할 때 광기(狂氣)가 나타나게 된다. 우리는 복음(the Good News)에서 말하는 은총을 보지 못하고 있다. 진심으로 바라는 모든 것들이 우리들에게 무상으로 주어 졌는데도 받지 않은 양 스스로 그렇게 터무니없이 부정하면 안 된다(Alan Jones, Journey into Christ, SPCK, 1978).
 
 우리 모두 위의 말이 무슨 뜻인지 다 잘 알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한편으로 실제로 누리고 있는 행운과는 관계없이 우리 모두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귀하고 중요하게 특별히 태어난 창조물이라고 느낀다. 또 단순한 진화의 결과가 아니며, 운명ㆍ기회ㆍ 행운ㆍ 우연의 희생물이 아니며, 영원히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다.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사랑을 받고 태어나고, 생명을 받고 의미를 갖고 태어나고, 독특하고 아주 고귀한 존재로 태어난 하느님의 자식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 살아가면서 많은 성공을 거두고 많이 소유하여 고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고귀하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뭔가 색다르고 훌륭하게 살아야겠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이렇게 강력한 직감도 이내 시들해 지고 만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색다르고 고귀해질 수가 있을까?
결국 우리는 평범하게 그리고 무명(無名)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 먼저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고귀하게 태어났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무언가 남과 다르다는 것을 이 세상이 믿어주기를 바라면서 악착같이 일하는 그저 평범함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조금 더 독특해지려고, 조금 더 의미 있는 사람이 되려고 그리하여 영원히 이름을 남기려고…..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남과 다르게 영원히 기억될 것 같은 무엇을 이루어야만 자신이 고귀하고 독특하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고귀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많은 사랑을 받아야 하고,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고, 영원히 존엄성을 가져야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이루지 않아도 이미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따라서 누구나 극심한 좌절을 맛보지 않고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무명으로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게 된다.
 
평화와 행복을 파괴하는 만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스스로 가망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좌절하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어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항상 부족하게 느끼며 쉬지 못하고,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은폐하려고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그리고 좇기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왜 그렇게 만족하지 못하고 살까? 왜 삶이 항상 시시하게 보이고 하찮게 보이고 좋지 않게 보이고 짜릿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왜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습관적으로 평범하게 느끼고 만족하지 못하고 불행하게 느끼는가? 왜 그렇게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고 안간힘을 쓰는가? 얻지 못하는 모든 것에는 왜 그런 고통이 있을까? 왜 그렇게 가정에만 집착하면서 살고 있을까? 왜 조나단 리빙스톤(Jonathan Livingston) 갈매기같이 만사를 제쳐두고 다른 사람보다 더 특별하기를 바라며 쉬지 않고 날려고만 하는가? 왜 형제자매와 더불어 살지 못하고, 겸손하게 그리고 감사하면서 살지 못하고, 서로의 재능과 존재를 축복해주지 못할까? 왜 남을 경쟁자로 생각할까?
 
그런데 왜 자신을 어떤 이미지로 투사(投射)하는 위선과 가장이 필요할까?
 
 하느님 만이 주실 수 있는 고유함이나 고귀함이나 불멸성을 우리 스스로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발버둥치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에서는 그리스도의 중심 메시지는 “믿음만이 구원할 수 있다.”는 말씀이라고 항상 주장한다. 믿음만으로도 의롭게 될 수 있다. 그렇다. 이 간단한 말씀이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마지막 비밀을 계시하고 있다. 고귀함, 의미 있는 존재, 중요한 존재, 불멸성은 모두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주시는 선물이다. 이것을 믿으면 우리는 보다 더 쉴 수 있고, 평화를 얻을 수 있고, 겸손할 수 있고, 경쟁적이지 않게 되고,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다른 곳에서 헛되이 성배(聖盃)를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다른 수많은 사람들처럼 가정에 충실하면서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고귀하게 되고,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평범하게 살면 족하다. 고귀하게 되고 중요한 존재가 되는 것은 우리들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결코 평범하지 않으며 평범을 가장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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