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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된 단식의 의미>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19 조회수1,369 추천수4 반대(0) 신고
 
 

<참된 단식의 의미> ... 윤경재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마태 9,14-15)



  레위기 16,29절과 23,27절에 기록된 대로 유대인들은 속죄일(Yom Kippur)인 유대력 칠월 열흘날에 고행을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은 공식적으로 금식하는 날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지은 죄를 반성하며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는 날이었습니다. 본래 일 년 중 하루면 되었으나, 바리사이들은 그 외에도 덤으로 금식을 하였는데 한 주에 두 번씩 월요일과 목요일에 실시하였습니다. 그들은 십일조 규정도 토라에 규정된 것보다 더 넘치게 지켰습니다. 신명기 14,22에는 곡식과 포도주와 올리브기름에 限에서 십일조를 바치라했으나, 바리사이들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 까지 십일조를 바쳤습니다.(마태 23,23)


  그들의 행위는 자신들의 단체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지킨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일종에 한 단체의 행동규약일 뿐이었습니다. 여기에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마저 덩달아 나선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남보다 튀어 보려는 속물근성이 있습니다. 상대를 깎아내리고 자기를 내세워 보려는 얄팍한 속임수입니다. 그들의 속마음은 예수일행을 비난하려는데 있었습니다. 또 단식 등 자기들의 힘으로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은 엄격주의자들이었습니다. “저희가 단식하는데 왜 보아 주지 않으십니까? 저희가 고행하는데 왜 알아주지 않으십니까?”하고 답없는 공허한 외침만 한 꼴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단식에 대해 옳다 그르다 판정을 내리지는 않으십니다. 다만 그 정신을 알려주실 뿐입니다. 단식은 구원을 주시는 하느님께 마음을 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40일 간 단식하셨고, 사도들도 단식하며 기도했다고 사도행전에 쓰여 있습니다.


  신랑을 빼앗기는 날 예수께서 겪으신 수난과 죽음을 생각하며 깊은 슬픔에 쌓여 입맛을 잃어 단식하게 되리라는 말씀은 단식의 정신이 어디에 있어야하는지 보여줍니다. 논어 술이편에 보면 공자님이 齊 나라에 갔다가 소(韶)라는 음악을 듣고서 그 음악이 하도 지극한데 감명 받아 석 달이나 고기 맛을 잃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경지에 다다라야 올바른 단식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도 단식이 그저 남에게 보이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단식은 compassion(동감, 동정, 감정의 교류)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이사 58,10)

 

 

 



A Comme Amour(가을의 속삭임) / Richard Clayd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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