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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일묵상]삽시간에 퍼진 예수의 소문 - 강길웅 요한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01 조회수696 추천수5 반대(0) 신고
 

삽시간에 퍼진 예수의 소문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하실 때 전도활동의 무대를 갈릴래아 지방으로 정하시는데 그 중심지가 바로 가파르나움입니다. 세례자 요한 이 주로 남부에서 그의 사명을 수행했다면 예수님은 북부에서 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전도활동의 기간은 대략 3년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며, 예수님은 33세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보다 다르게 해석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바로 그 가파르나움에 있는 회당에 들어가셔서 대중들에게 설교하시고 가르침을 주시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의 설교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대단히 권위가 있고 그리고 이해가 쉽게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놀라고 감탄했으며 특히 그분의 말씀 한마디에 악령이 무서워 도망치는 것을 보고는 모든 사람들이 탄복을 했고 그의 소문은 삽시간에 온 갈릴래아와 그 근방에 두루 퍼지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권위 있는 주님의 말씀'을 묵상 해 봐야 합니다.


   옛날 율법학자들은 성서에 대해서 많은 지식과 훌륭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율법학자들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날수록 학자들의 권위가 쇠퇴하게 됩니다. 도대체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신앙의 은혜와 삶의 의미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압과 두려움과 그리고 속박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은 말씀을 실천하지도 않으면서 백성들에게 목소리만 높였고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 축소시켜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사랑에서 외면하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생전 느껴보 지 못했던 하느님의 사랑이 넘쳐흘렀고 복잡하고 막연하기만 했던 하느님의 율법 안에서 그들은 하느님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것 입니다. 백성들은 이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으며 또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풍성한지를 체험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진정 위대한 스승이셨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이론이 나 전통에 묶여져 있지도 않았으며 왜곡된 내용을 쓸데없이 고집하지도 않았습니다. 막연하고 애매한 것은 직접 예화를 들어 설명해 주셨으며 말씀의 참뜻이 무엇이며 거기에 어떤 힘과 사랑이 있는지 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위대한 스승의 모습이었으며 또 한 그것이 하느님의 가르침의 교수법이셨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언행의 일치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악령 보고 '나가라.' 하시자 악령 이 혼쭐이 나서 도망쳤습니다. 이런 일은 전에 없었던 일입니다. 성직자들에게 자주 문제가 되는 것이 '언행의 일치'입니다. 아무 리 강론을 잘하고 아무리 사목을 잘해도 그의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으면 그는 권위를 잃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성직자라는 자들이 거짓말이나 하고 돈이나 밝히며 선하게 살지 않는다면 성직자로서의 그의 생명은 끝장난 것입니다. 평신도들에게도 이것은 굉장히 중요 합니다.


   어떤 본당이 있는데 재정이 넉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자들의 열심과 기도로써 받은 은혜가 너무 컸습니다. 2백만 불짜리 집을 거저 얻었습니다. 그래서 본당신부가 우리가 한 푼도 안 주고 거저 성전을 얻었으니 우리가 모은 돈에서 십분의 일을 떼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묘한 일 이 일어났습니다. 의대 교수였던 회장과 신문사 사장이었던 어떤 형제가 들고일어나서 신부를 비난하고 신자들을 선동해서 악착같이 반대해서 본당을 아주 난장판으로 만들었습니다. 신자들이 그때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가진 것을 나눈다는 것은 신앙을 떠나서도 꼭 실천해야 할 인간의 과제입니다. 더구나 그가 신앙인이고 의술을 펴는 의사요 또한 언론인이라면 당연히 그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남들이 반대해도 그들은 사람들을 설득해서 불쌍한 이웃으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그런데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사랑을 펴야 할 사람들이 거꾸로 반대를 하게 되니 과연 하느님의 사랑이 어디에 있는지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의사가 아니고 언론인이 아니라 해도 사랑이 없다면 그는 신앙을 떠나서도 한 인간으로서 끝장이 난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불쌍한 이웃 들이 많습니다. 아니 비천한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이 많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바로 하느님을 배척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삽시간에 퍼진 예수님의 소문은 없는 사람들에게 크나큰 복음이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래서 예수님의 소식을 그렇게 전해야 합니다.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말씀을 실천할 때 우리 안에 그리고 이웃에 예수님의 소문은 삽시간에 사회를 밝힐 것입니다. 가진 것을 나눕시다. 거기에 사랑의 권위가 있습니다.

 

▒ 강길웅 세례자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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