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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혼의 단식도 필요한 때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19 조회수692 추천수5 반대(0) 신고
 
 

영혼의 단식도 필요한 때 - 윤경재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마르 2,18-22)

 

 단식에 대해 말씀하시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려고 준비하던 중에 우연히 두 가지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봉쇄 수도원에서 잠시 지냈던 두 사제의 경험담입니다. 

“봉쇄 수도원에서 하는 것은 24시간 침묵하며 기도하고 노동하는 것뿐입니다. 예전에 한 주간을 지내면서 지금도 잊히지 않는 외국인 수사 한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그 곳 책임자도 아니고 그저 기도하고 노동하는 평수사로서 이야기를 나눠 본적도 없습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 시간에 모두가 함께 기도를 해도 그분이 유독 빛나는 것입니다. 또 노동하는 시간에 여기저기 흩어져서 일을 해도 시선은 자꾸 빛나는 그분에게 멈춰지는 것이었습니다.

‘이 집의 중심은 저분이시구나!’

물론 그 집 중심은 하느님이시지만, 그 수도원을 꾸려가는 힘이 그분에게서 비롯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게 됐습니다. 그분 얼굴 표정, 기도하는 목소리에서 권위가 풍겨 나왔지요. 한마디 말없이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그 힘이 느껴졌습니다.” - 이기양 신부님 강론 중에서 

 

“이곳이 미국의 중심이다. 나는 무엇이 이 나라를 지탱하게 하며 온 우주가 산산조각이 나지 않고 제대로 돌아가도록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지녔었다. 이제 단지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이 수도원이다. ~중략.

트라피스트 회원들에게 일은 중요하다. 일은 고행과 레크리에이션의 혼합이다. 그 일이 아무리 힘이 들지라도 그것은 여전히 놀이의 한 형태이다. 심지어는 가장 큰 고행일지라도 역시 놀이이다. 전례도 마찬가지이다. 트라피스트 회원들은 일을 자기 영혼을 구하는데 사용한다. 어린아이처럼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처럼 놀이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하루를 첫 시간경이 시작되는 새벽 2시에 이곳 수사님들과 함께 시작하지 않는다면, 이 수도원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 새벽 2시에서 8시까지 6시간이 모두 기도로 봉헌된다. 8시에 전체가 모여 함께 드리게 되는 대미사가 하루의 정점을 이루고 있다. 대미사야말로 하루의 심장이며 중심이며 기초이며, 사실 미사가 바로 하루이다. 만약 4시나 5시에 일어난다면 즉시 이 사실을 깨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그냥 미사가 하루의 시작으로 생각될 수 있고, 아침 9시에서 11시 30분, 오후 1시에서 5시 두 차례에 들에서 일하는 것이 하루의 중요한 일과로 여겨질 수 있다. 물론 일은 진정한 의미에서 레크리에이션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토마스 머튼 신부님의 일기 중에서, 류해욱 신부님 역

  단식하면 음식물을 끊는 것만 떠올리게 되지만, 봉쇄 수도원에서 지내시는 사제와 수도자들의 삶은 영혼의 단식까지 실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평생 외출도 못하는 담장 안에서 지낼 수 있을까 무척 궁금했습니다. 봉쇄 수도원을 두고 말하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평생 세 경우만 외출이 가능한데. 일단 들어가면 큰 병이나 꼭 병원에 가야할 때와 수도원에 불이 났을 때, 또 교황님께서 방문하셨을 때라고 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외출이 안 된답니다. 그럼에도 수도원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은 늘 행복에 겨운 모습을 잃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그래야 살 수 있기도 하고요.

  새벽 두 시부터 깨어나 꽉 짜인 하루를 기도와 노동으로 보냅니다. 아침 8시에 올리는 미사를 하루의 중심으로 삼고, 하루 내내 침묵으로 일관한답니다. 그분들 삶의 모습을 두 사제는 한마디로 ‘중심’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이기양 신부님은 그 집의 중심인 평수도자를 발견했습니다. 트라피스트 봉쇄 수도원이 미국의 중심 아니 우주의 중심이며 그 덕택에 우주가 산산조각 나지 않는다고 깨달아 스스로 그 수도원에 입회하여 생활한 토마스 머튼 신부님입니다.

  그분들 삶의 비밀은 바로 일을 “고행과 레크리에이션의 혼합”이라고 깨닫고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레크리에이션은 말뜻 그대로 하느님의 창조 본성을 모상한 인간의 능력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은 그것을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순간순간 마다 또 매사에서 하느님의 창조를 자각하고 그것에 생명을 불어 넣는 일입니다.

  그런 것을 안소니 드 멜로 신부님은 ‘깨어있다’라는 말로 정의했습니다. 걸음을 걸어도 오른발이 나가고 왼발이 따라 나가는 것을 자각하고, 음식을 먹으면서도 다섯 가지 맛을 인식하면서 육체가 필요한 만큼 섭취하는 것입니다. 누구와 대화할 때도 지금, 여기서 상대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입니다. 깨어있으라는 말은“현재를 살라(카르페 디엠).”는 말과도 같습니다. 깨어있는 사람은 자신이 지닌 60조나 되는 세포 하나하나에게 새 생명을 불어 넣을 줄 압니다. 하루에 10억 개 세포가 죽어가지만, 그는 그만큼 살려낼 줄도 압니다. 모두 레크리에이션의 능력 덕분입니다.

  레크리에이션 하는 사람은 매사가 기쁩니다. 고행과 일이 놀이처럼 행복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단식은 바로 우리를 레크리에이션 하는 수단으로 삼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와 요한의 제자가 보여준 단식은 그저 고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나 단식합네 하고 얼굴을 찡그리며 뭇사람에게 드러내는 단식은 참된 레크리에이션이 아닙니다. 고통마저 자랑으로 삼는 것이며 그것은 오히려 하느님께 대죄를 짓는 꼴입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려 단식하려다가 죄만 지었습니다.

  무엇이든지 과잉 생산하고 소비하며, 과잉 소유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 현대의 우리에게 단식의 정신은 새로운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육신의 단식뿐만 아니라 영혼의 단식도 필요한 이때 새 포도주를 쏟지 않고 담을 방법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 Exultate Jubi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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