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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77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30 조회수473 추천수4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3주간 금요일]
 
<씨를 뿌려 놓으면,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26-34

그때에 2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27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34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씨가 싹이 터서 낟알이 영글고, 겨자씨가 땅에 떨어져서 거목이 되어 하늘의 새들이 깃드는 비유를 들어 하느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를 알려주시고 계십니다. 오늘 묵상은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하신 말씀의 의미를 중시하여 自然의 관점에서 묵상하려고 합니다.
 
씨가 땅에 뿌려지면 저절로 낟알로 영글고 거목이 되는 이런 신비를 '자연의 섭리'라 하며 우리 신앙에서는 '하느님의 섭리'또는 '창조의 질서'라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자연의 섭리인 창조의 질서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하느님의 뜻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나라가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이러한 자연의 섭리인 하느님의 뜻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人爲이며 有爲입니다. 道家에서는 이러한 인위적인 有爲가 아닌 無爲를 강조하고 있으며, 우주질서는 '스스로 그리하여 진다'고 하여 이를 自然이라 하였습니다. 노자는 이렇게 무위를 강조하시며 인위를 철저히 배격하였습니다. '지혜롭다고 하는 사람에게 감히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하여라.'하신 使夫智者 不敢爲也(사부지자 불감위야)의 가르침이 새삼 떠오릅니다.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바로 이처럼 내가 무엇을 하겠다고 설치는 사람이 많이 있으므로 세상에는 평화가 깃들 날이 없습니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따르는 것은 어쩔수 없는 자연법칙이며 반작용을 억제하면 억제된 힘이 일시에 폭발하므로 이는 더 큰 불상사를 야기할 것입니다.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것은 스스로 그리하여 질 수 있도록, 하느님의 섭리가 작동되도록 인위적인 행위는 최소로 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인간이 자연을 극복한다는 얘기처럼 오만방자한 소리도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人爲는 이렇게 자연에 순응하는 삶 안에서 행하는 우리의 노력으로 한정되어야 하며, 자연을 극복한다는 오만한 생각에서 자연을 훼손하는 행위는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연은 원상회복이 가능한 상태로 이용하여야 하고 인간의 탐욕으로 자연이 훼손되면 하느님의 창조질서가 파괴되어 어떤 형태로든 재앙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한반도 지형은 남북으로 길게 백두대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백두대간의 험준한 산줄기를 관통하지 않고서는 東에서 西로, 西에서 東으로 왕래를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한강과 낙동강의 물은 백두대간을 넘을 수 없도록 창조하시여 한강과 낙동강은  각각 서쪽과 동쪽에서 이 땅의 젖줄이 되어 서해 앞바다와 남해 동쪽 끝으로 흘러가도록 하였습니다.
 
이를 거역하고 인위적으로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30km 터널수로를 만들어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훼손하려는 것이 바로 경부 대운하입니다. 하느님의 창조질서가 파괴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오직 하느님만이 알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문명의 생활을 마음껏 누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문명은 어디까지 발전해 나갈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합니다. 쾌락의 끝은 파멸로 이어지듯이 과학 문명의 발달은 종말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문명사회가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세계 각국의 행복지수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불과 오십 여년전에 불과하지만 제가 성장했던 환경에서 다시 태어나서 살라고 하면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설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환경에서 태어나서 살라면 끔직하기도 하고 너무나 경쟁이 치열하여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사후에 부활시켜 준다고 하여도 저는 절대로 부활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인위적인 요소가 많이 개입되어 오히려 더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흐르는 물은 서로 앞서 가려고 다투지 않는다.(流水不爭先)'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삶은 서로 앞서 가려고 치열한 경쟁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앞서 가려고 서로 다툰다 한 들, 그 최종 목적지는 누구나 예외없이 영안실로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흐르는 물처럼 언제나 낮은 곳으로 향해서 가야 함에도 물이 흘러가는 자연의 이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으므로 하느님의 뜻을 거스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율법과 제도는 인간의 탐욕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사회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분도 결국은 인간의 탐욕 때문에 사회 질서가 필요한 것이며,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려는 의도에서 생겨난 악법 등도 인간들의 탐욕의 산물입니다. 이처럼 인위적인 것은 모두가 인간 탐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탐욕을 버려서 탐욕에서 비롯되는 인위적인 요소들이 사라진다면 그런 나라가 바로 하느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에덴동산에서 쫒겨난 것도 탐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탐욕을 버린다면 우리는 에덴동산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 에덴동산은 우리의 그 어떤 作爲가 필요치 않는 하느님의 나라 입니다.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 인류의 영원한 구원이며 우리 그리스도교는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이런 목적에 지금 우리는 얼마나 충실하고 있는지를 늘 자문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탐욕을 버린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 수 있음을 '세상 걱정과 하느님의 나라' (마태 6,25-34)에서 알려주셨습니다.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며  우리의 신앙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우리가 이 땅에 아직 건설하지 못한 것은 우리는 이런 믿음에 대하여는 겨자씨만큼의 믿음도 없기 때문이며, 우리들의 탐욕 때문에 아직도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소탐대실을 하고 있다는 自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끝으로 오늘 복음에서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는 구절은 차라리 없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차별이 없으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차별하였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차별의식 때문에 다종교 국가였던 로마제국에서 초기 그리스도교가 타종교와 달리 유독 박해를 받았던 요인이 되었으며 지금 우리 현실도 우리 그리스도교는 우월적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려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마태 5, 45)고 하신 말씀을 늘 기억하여 우리 마음속에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종교적 차별의식은 모두 해소되길 소망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 하신 아빠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이 바르게 작동하는 나라가
하느님의 나라로 알려주셨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탐욕에 찌들어 인위를 행하며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자연에 순응하며 탐욕이 없는 무위의 삶을 통하여
저희 모두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언제나 성령님의 지혜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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