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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두 개의 빈 깡통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30 조회수646 추천수14 반대(0) 신고
 
 
 

두 개의 빈 깡통 - 윤경재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마르 4,26-34)



 속이 빈 깡통 두 개가 서로 대화를 나눕니다. 한 깡통이 말합니다. “내가 흐르는 저 강물에 머리를 숙이고 들어갔더니 이제 나는 신선한 물로 가득 찼다.”


 이 말을 들은 다른 깡통이 자신도 목이 마른 차에 잘 됐다 싶어 강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숙이고 강물에 몸을 담가보았지만, 곧 떠오를 뿐 신선한 물을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었습니다. 그는 돌아와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것은 모두 거짓이다, 강 속으로 들어가 가득 찬 물통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강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 까닭은 그가 뚜껑을 열지 않은 채 강물에 들어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빈 깡통이 머리를 숙이고 강에 들어가더라도 열려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제 속을 비우고 또 겸손히 머리 숙여 실천했더라도 개방성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씨가 땅에 뿌려지면 먼저 자신의 몸을 터뜨려 땅과 빛의 기운을 향해 자신을 내어 놓습니다. 그러면 땅과 빛은 그 씨가 무럭무럭 자라게 자신의 에너지를 내어 줍니다. 그 기운은 어디에고 흘러넘칩니다. 다만 그 기운을 수용할 준비를 갖춘 자만 그 에너지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가 그 에너지를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서 에너지가 없다고, 모두 거짓이라고 외칠 수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눈으로 보지 못하는 신비가 가득합니다. 온 천지에 널려 있습니다. 모든 게 신비이고 기적입니다. 그 신비를 받아들이려는 개방성만 있다면 누구라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느님 나라를 가리켜 보이고자 무던히 애쓰셨습니다. 사람들이 알아들을 정도로 온갖 비유와 표징으로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가리켜 보이셨습니다. 심지어 당신을 내어놓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지 못했다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귀를 닫아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씨앗이 자랄 때 그것이 알맞게 자라도록 때맞추어 에너지를 부어주십니다. 한꺼번에 부어주어 질식하지 않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만물을 사랑하시는 방법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귀를 여는 수준에 알맞게 은총을 내려 주십니다.  하느님의 판단아래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아무리 우리가 귀를 열었다고 우겨도 결국은 연 만큼만 들리는 법입니다.


 모든 비유를 제자들에게만 따로 설명해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은 스스로 몸을 개방하고 스승에게 다가간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넘치는 신비를 오롯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 몸 안에 신선한 생명수를 넘치도록 받아들였습니다.


 비우고, 다가가고, 개방하는 세 자세는 제자들이 갖추어야할 삼위일체의 자세입니다. 하나라도 부족하거나 어긋나면 온전히 성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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