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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11 조회수953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9년 1월 11일 주님 세례 축일
 
 
 
“You are my beloved Son; with you I am well pleased.”
(Mk.1.11)
 
 
제1독서 이사야 42,1-4.6-7
제2독서 사도행전 10,34-38
복음 마르코 1,7-11 
 
 
신부님께서 천국에 대한 어린이 강론을 하셨습니다. 천국은 너무나도 좋은 곳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천국에 정말로 가고 싶도록 강론을 하셨지요. 그리고는 어린이들에게 “천국에 가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하셨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다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만이 손을 들지 않는 것입니다. 신부님께서는 그 아이에게 물었지요.

“너는 천국에 가기 싫으니?”

그러자 이 아이는 “아니요. 저도 천국에 꼭 가고 싶어요. 그런데요. 우리 엄마가 성당 끝나면 아무데도 가지 말고 집으로 곧장 오라고 했거든요.”라고 말을 했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까지도 엄마의 눈치를 보겠다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나옵니다. 그런데 성인들 역시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면서 생활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그들처럼만 하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품을 때도 상당히 많습니다.

주님의 일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주님과 나의 관계이니만큼 능동적이고 주관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나의 일이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다른 사람의 눈치는 당연히 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다른 사람의 눈치나 보면서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대신 주님 안에서 참 기쁨과 평화를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간절하게 원하시지요. 이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세례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는 날을 기념하는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세례는 죄를 용서받고 다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굳이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지요. 그러나 우리 모두가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해 당신께서 직접 모범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습에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시지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

예수님의 세례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기뻐하셨습니다. 이는 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세례 받음을 보시고 당신의 영원한 생명에 동참했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세례를 받았을 때를 다시 한 번 기억해 보았으면 합니다.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과 연결되고 새 생명을 받았는데, 나는 그 생명을 얼마나 잘 지켜내고 있는지. 그럼으로써 죄악에 물들지 않고, 하느님의 뜻에 맞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주님 세례 축일을 맞이하는 오늘, 나의 세례를 기억하면서 주님으로부터 새 생명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 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조롱당하는 것은 죽은 것이다. 웃는 사람은 고민하는 사람보다 강하다.(구스타브 플로베르)





상대의 신발을 신어보라
 
구소련이 물자 부족으로 허덕일 때의 일이다. 소련 사람들은 모든 물건을 줄을 서야만 겨우 살 수 있었다. 한 소련인이 외국 친구들이 놀러 온다고 해서 대청소를 하고 있었다. 열심히 청소를 하던 그는 하나밖에 없는 빗자루를 부러뜨렸다.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던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그때 외국 친구들 몇 명이 도착했다. 친구가 우는 모습에 당황한 그들은 사정을 듣자 위로를 했다. 부유한 일본인은 “빗자루 하나가 몇푼이나 한다고 그래. 다시 하나 사면되는데 뭘 그렇게 슬퍼하는 거지?”라고 했다.

법률을 만능으로 믿는 미국인은 냉정하게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조악한 빗자루를 생산한 회사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면 돼. 패소해도 너는 소송 비용을 낼 필요가 없어.”

낭만적인 프랑스 친구는 엉뚱한 논리로 위로를 했다. “나는 자네가 빗자루를 그냥 부러뜨릴 정도로 힘이 좋다는 사실이 너무 부러워. 나같은 사나이의 부러움을 사는 판에 울기는 뭘 울어?”

실용적인 독일 친구도 한마디 했다. “걱정하지 말라니까. 우리가 같이 연구하면 빗자루를 원래처럼 붙여서 사용할 수 있을거야. 틀림없이 방법이 있다니까.”

미신을 잘 믿는 타이완 친구도 거들었다. “안심해! 빗자루가 부러진 것은 재수 없는 일이 생길 거라는 징조가 아니니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불쌍한 소련인이 울면서 푸념을 했다. “나는 너희들이 말한 이유들 때문에 운 게 아니야. 나는 내일 가게 앞에 줄을 서서 한나절을 기다려야만 빗자루를 살 수 있어. 그러니 너희들이랑 같이 놀러 갈 수가 없단 말이야!”

소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임에도 쉽게 간과하는 사실은 서로의 처지를 공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상이몽인 사람들끼리 대화를 하다 보면 황당하고 우스운 결론으로 치달을 수 있다. 즉 각자가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면 다른 사람들도 나름대로 주관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나 사람을 이해해야 할 때는 자신의 생각은 한편에 내려놓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역지사지를 하면 많은 일들이 놀라울 정도로 쉽게 풀린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Innige Verbundenheit  - Ralf  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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