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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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910년대 생 서동띠기
작성자조화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07 조회수488 추천수0 반대(0) 신고



 저는 서동이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엄마가 항상 외할머니를 놀릴 때 부르는 말입니다.  할머니는 올해로  유관순 누나가 살아 계셨으면 아마도 그분의 막내 동생, 아니면 조카뻘 쯤 되는 나이입니다. 남편 이성우씨를 35년 전에 중풍으로 저 세상 보내시고 이날 이때까지 홀로 살아 오신 분입니다. 그동안 둘째 아들과 시골 마을,금서면에서 같이 사시다가 얼마 전에 집에서 차로 5분 거리, 이곳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기셨습니다. 8년 전에 욕실 바닥에 넘어지시어 다리를 부러뜨려, 지금껏 자리 보존해 계시다가 병바라지 하시던 외숙모가 허리를 다치셔서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엄마와 저는 이런 할머니의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워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찾아 뵙습니다. 우리가 가면 할머니는  지금이라도 당장 집에 가겠다고 떼를 쓰십니다. 엄마는 할머니가 그러시면, 올캐가 지금은 아파서 안된다, 어머니가 여기서 몸이 조금이라도 나아 걸어 다니시면 집에 갈 수 있지만  지금 집에 가셔봤자,  식구들 고생만 시킨다고 얼루십니다. 그래서 딸인 엄마와 손녀인 제가 다소나마 할머니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서 음식을 싸가지고 가서 함께 지내다 옵니다.



요 얼마전에 가서 할머니께 노래를 부르자 하니,

"험한~ 세상 좋~게 한평생 살다 갑니다. 지금 갈려고 하니 이승의 꽃들이 참 곱구나" 







 구슬픈 나름의 멜로디에 가사를 부치어 흥얼거리십니다. 이런 모습에 우리 어머니는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울고.. 할머니께 왜 그런 노래를 부르냐 타박하셨지요. 본인도 나이가 들어 자식들 수발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고, 한편으론 또 집안 장녀로서 자신의 엄마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그러셨던 거지요.



우리 할머니는 정말 열심히 사신 분이십니다. 중풍으로 거동을 못하시는 남편인 외할아버지를 아마도 제 기억엔 한 10년간, 얼굴 한 번 찌푸리는 일 없이, 큰 소리 한번 내시는 일 없이 보살피셨습니다. , , 그 땐 제가 어릴 때라 참 오래도 할아버지가 아프셨던 것 같습니다. 시골 살림살이 어려운 형편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자식들을 길러 내시고, 두부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파시어 딸들의 옷을 항상 깨끗하게 해 입혀주시고, 학교 가기 싫어하는 큰딸을 위하여 동네 큰 애기들에게 부탁해서 꼭 손붙들고 학교에 가라고 맛있는 것도 만들어 주셨던 자상한 어머니셨습니다.



그러다가 젊은 새댁이 삶이 고달파 힘이 들 때면 강구산에 있는 절에 가시어 부처님께 절하고 자신의 고단함을 부처님께 아뢰었겠지요!  염주를 돌리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 보살, 옴마니 반메움을 진언하셨겠지요.



저는 지금 우리 할머니께 세례를 받으시라 말씀드릴 수 있는 용기가 없습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대승불교 모태 크리스챤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할머니의 일생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 할머니의 영성 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셨을 것 같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돌아가시면 천국에 가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지금 슬퍼하지 않습니다. 우리 할머니가 이렇게 나이가 많이 드셨어도 ,,,



예수님, 우리 할머니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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