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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 진사댁 사위 소장수 미카엘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28 조회수488 추천수0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가톨릭 사제가 쓴 눈물의 사모곡

나물할머니의 외눈박이 사랑
이찬우 신부

모성애는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안다.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본능 그 자체다. 그래서 그 사랑을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말한다.
어머니가 되는 길 어머니는 너무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었기에 여섯 남매를 낳아 기르면서 그 고단한 삶의 여정을 묵묵히 걸어오는 동안 더욱 더 진정한 의미의 어머니가 된 것이라고 믿는다. 김 진사댁 사위 소장수 미카엘

당시 국제 정세는 일본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일본 과 중국과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일본은 전쟁물자가 부족하여 군 사력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국은 일본에게 해외 주둔군의 완전 철수를 요구하면서 석유와 철광 등의 수출을 중단했다. 당황한 일본은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게 되었다. 하와 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면서 태평양전쟁을 도발시켰던 것이다. 바로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1941년, 우리 집에서는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는 일본이 오랜 전쟁에서 버티기 힘들어지자 새로운 전쟁을 일으킨 상황이었기에,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 야 할 만큼 경제 사정이 극도로 나빠졌다. 당연히 잘 살던 우리 집도 곤경에 빠진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 로 외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집안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더구나 겨우겨우 버티던 1945년 4월, 해방을 넉 달 앞두고 어머니는 둘째 호순누님 (데레사)에 이어 또 딸을 출산했다. 그런데 셋째 옥순누님 을 낳은 다음달 5월에는 외할머니마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일제의 암흑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외할머니는 해방의 기븜을 보지도 못한 채 셋째 손녀가 태어난 것을 보시고는 눈을 감고 말았 다. 이렇게 어머니는 태평양전쟁의 시작과 끝을 전후로 부모님을 잃 고 몸조리도 제대로 못한 채 깊은 슬픔을 맞게 되었다. 어머니에게 외할머니는 언제나 튼튼한 삶의 기둥 같은 존재였다. 모든 딸들에게 그렇듯이 어머니에게도 역시 외할머니는 큰 힘이요 위로였으며, 어떤 어려움도 어머니가 계셨기에 견디며 살아왔다. 그 런 외할머니를 떠나보낸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짐작을 할 수조차 없다. 아마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꺼지는 것 같은 참담 함을 느끼셨을 것이다. 두 누님의 얘기로는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외모는 물론 마음씨와 행동까지 빼다 박았다고 한다. 나는 외할머니를 한 번도 뵌 적이 없 지만, 어머니의 모습에서 외할머니를 떠올려 보곤 했다.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이제 어머니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기 둥은 아버지였다. 장인 장모가 돌아가신 후에야 아버지는 비로소 데 릴사위의 입장에서 벗어나 한 집안을 온전히 책임져야 할 가장의 위 치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장인 장모가 이끌던 집안을 아버지가 가장이 되어 이끌 어 가야 했다. 그와 함께 지금까지 누산리 주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농사와 집안일을 돌보던 아버지의 역할이 달라졌으며, 그동안 억눌 러 왔던 아버지의 욕망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난 오래 전부터 소장수를 해 보고 싶은 꿈이 있었소." 마침내 아버지는 오래 전 소망을 어머니에게 털어놓았다. 그 일이 아버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곧바로 평소에 교 분이 두텁던 누산리 사람 두 명과 함께 소장수 일을 시작했다. 소장수는 소를 키워서 팔기도 하고 사서 팔기도 하여 이윤을 남기 는 일로, 요즘으로 말하면 한우 도소매업자다. 그 일은 출퇴근을 해 야 하는 일이 아니라 크고 살집이 좋은 소를 찾아다니는 일이어서 늘 타지로 떠돌아다녀야만 했다. 때문에 아버지는 자연히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졌다. 아버지가 몇 날 며칠씩 집을 비우면 어머니는 농사일이며 집안일뿐만 아니라 다 섯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학교까지 보내야 했다. 집에는 어머니를 도와 줄 일손이 없었다. 게다가 모든 결정과 선택도 어머니 혼자서 해야만 했다. 어머니에게는 너무 갑자기 닥치 큰 변화였다. 아버지는 한번 집을 떠나면 며칠이 지나도 소식이 없고 또 알수도 없었다. 온종일 농사 일과 집안일을 하고 다섯 아이 뒷치다꺼리까지 해야 했던 어머니는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잠든 어린 것들을 쓰다듬으며 잘 키워야 한 다는 책임감에 눈물을 흘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곤 했다. 그때 어머 니의 심정은 그런 상황에 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아무리 어머니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그건 어림도 없다. 나는 사제로서 결혼생활도 자녀도 키워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의 심정을 10퍼센트도 짐작할 수 없다. 어머니는 모든 장래 를 부모님에게 맡기고 살다가 4년 사이에 부모를 잃고, 남편은 새 사업을 시작하여 밖으로만 돌고, 누구와 상의할 사람도 없이 다섯 아이를 끌어안고 살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또 어머니가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일들이 있 었다. 부모를 잃은 슬픔을 이겨내기도 어려운 터에 엄청난 일들이 밀어닥친 것이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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