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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74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27 조회수581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3주간 화요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31-35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같은 그리스도교이므로 일반인들은 이를 굳이 구분하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개신교에서는 가톨릭과 차별화를 위하여 가톨릭을 비난하고 있으며 비난의 단골 메뉴는 가톨릭은 성모님을 믿는 종교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은 성모님을 믿는 종교로 비난하는 것은 타종교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집안싸움에 불과하고 누어서 침 뱉는 격이라 할 것입니다.

일부 개신교에서는 오늘 복음을 인용하여 예수님은 성모님을 문전박대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한복음의 말씀을 먼저 묵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요한 1.12-13) 위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혈통이라는 좁은 생각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요한복음의 이러한 가르침을 모든 공관 복음에서는 표현을 달리하여 오늘 복음에서 이를 다시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의미는 혈연은 찰나에 불과하고 하느님과의 인연은 영원하므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진리의 삶을 살아가는 인연을 소중히 하라는 가르침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인은 '하느님의 자녀'로 사는 것이고,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내 주위에서 가장 가까이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며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성모님께 못 다한 자식의 도리였습니다. 요한 복음서에 의하면 십자가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은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으며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음(요한 19,26-27)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 복음에서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성모님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예수님은 성모님을 공경하지 않았다는 그런 주장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가톨릭은 성모님의 신심 교리를 중요시하고 있으므로 일부 개신교의 공격에 대하여 사실 궁색한 입장이기도 합니다. 묵주 기도의 '영광의 신비' 5단에서 '예수님께서 마리아께 천상 모후의 관을 씌우심을 묵상합시다.' 또는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로 고백하는 고백 기도를 집요하게 공격하는 그들의 주장을 방어할 신학적 지식이 일반 신자에게는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의 형제들과 누이들이 여럿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이며 그의 누이들도 모두 나자렛에서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13,55-56).

 이처럼 형제분들의 이름까지 나열하고 있으므로 마태오 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의 형제는 5형제분이며 누이는 최소한 두 분 이상이지만 우리 가톨릭의 입장에서는 성모님은 평생 동정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형제자매는 사촌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난제들은 신앙 언어와 사실 언어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시하는 잘못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血緣, 學錄, 地緣 등을 찾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잘못된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요즘은 敎緣까지 하나가 더 추가된 것 같습니다. 이런 잘못된 모든 緣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 복음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모든 緣을 끊자는 것은 연줄로 인하여 야기되는 사회적 병폐를 해소시키라는 것이며,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인연만을 생각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오직 크신 자비임을 명심하며 오늘 묵상을 마치겠습니다.

대자대비 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혈연, 학연, 지연 등으로 야기되는 모든 병폐를 없애라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이런 인연에 연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인연에 연연하는 잘못된 삶을 청산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하느님의 참된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언제나 저희를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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