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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302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26 조회수489 추천수0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0-2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 21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 22 그때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이다. 23 불행하여라, 그 무렵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 이 땅에 큰 재난이, 이 백성에게 진노가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24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25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루카 복음서에는 오늘 복음을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다'로 소제목을 달고 있지만 다른 복음서에는 '가장 큰 재난'으로 되어 있습니다. 타 복음서에서는 오늘 복음처럼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고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인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을 보거든.... 읽는 이는 알아들으라. ...'를 인용하며 닥쳐올 재난에 대하여 말씀하셨으며, 닥쳐올 재난은 하느님께서 불의한 세상을 징벌한다는 뜻이므로 불의한 자가 당하는 재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에서처럼 예루살렘이 멸망한 모습인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이런 말씀은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상징적으로 말씀하신 재난을 루카 복음서에는 예루살렘이 멸망한 역사적 사실로 대체하여 복음 해석에 많은 혼란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재난이 막바지에 이르면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직전 또는 직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셨어야 하고 설사 재림하지 않으셨더라도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에는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으며 하느님의 나라 대신에 로마제국의 강압통치로 더 고통을 받았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상징적인 의미로 기록한 재난을 루카 기자는 예루살렘이 멸망한 역사적 사실로 구체화하므로 써 예루살렘이 멸망한 이후의 로마 제국의 혹독한 강압통치가 하느님의 나라가 되어버린 이해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루카 기자가 잘못 기록하였다기보다는 후대에 첨삭하여 본래의 의미가 훼손된 것으로 추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이 적중하였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다가 말씀의 의도를 훼손시킨 경우로 생각되며, 그리고 19장(41-44)에서 이미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였으므로 오늘 복음에서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음에도 중복된 점도 후대에 첨삭하였다는 추정을 하게끔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 하신 말씀은 죽음에서 벗어나 생명을 구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은 악과 불의를 상징하고 있으므로 '달아나고, 빠져나가라'는 말씀은 악과 불의에서 벗어나라는 뜻이므로 회개를 말씀하고 계시며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는 말씀은 불의의 세력에 동조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말고 지금의 마음을 끝까지 유지하라는 말씀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하여 새롭게 묵상하는 것은 예루살렘은 지금의 관점에서는 우리가 사는 공동체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개인의 영성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생각하며 슬퍼하신 것처럼 사회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이 오염되면 그 물 속에 있는 고기는 전부다 죽을 수밖에 없음에도 나는 살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맘몬 신을 섬기며 무한경쟁을 하느라 갈수록 인정이 메마른 불의한 세상에서 황폐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엊그제 어느 매체에 보도된 칼럼의 제목은 '물은 아래로 흐르지만 돈은 위로 흐른다.' 이었습니다. 제목만 봐도 지금 우리 사회는 하느님의 뜻과는, 자연의 섭리와는 너무나 다른 불의한 세상이라는 것을 진단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낮은 곳을 향해 나아가라고 당부하신 여러 말씀도 이러한 자연의 섭리에 따르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과 정연한 질서가 곧 자연이므로 우리가 매일보고 느끼는 자연을 통해 하느님의 숨결을 느껴야하지만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의 숨결을 느끼고 깨달아야 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불의이므로 불의는 곧 재앙을 불러올 것입니다.

우리가 저지른 불의는 누군가에 의해 언젠가는 치유될 수 있겠지만 하느님이 창조하신, 하느님의 숨결이 살아있는 자연을 훼손하는 일만큼은 치유될 수 없으므로 자연을 훼손하는 일만큼은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도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4대강 사업에 대하여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권 내부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화급을 다투는 사안이 아니므로 꼭 필요하다면 어느 한 곳만 시범적으로 시행하여 부작용이 없도록 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국가 채무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멀쩡히 살아있는 4대강을 죽이려고 왜 고집을 피우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들이 물은 아래로 흐르도록 설계한 하느님의 뜻을 어기고, 맘몬 신을 섬기는 자들만 살 찌우게하는 불의한 모습일 것입니다.  

개인의 영성도 중요하지만 사회가 썩지 않도록 사회 정의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며 우리 그리스도교가 타 종교와 비교하여 자랑할 수 있는 것 중에서 하나는 개인의 영성에만 치우치지 않고 사회 정의를 중시하는데 있습니다. 세계 3대종교 중에서 창시자가 사회 불의에 항거하다가 승천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가르침을 따르는 우리 교회는 우리 사회가 불의한 사회가 되지 않도록 선도해야 나가야 하지만 아직도 중세 봉건왕조시대에 머물러 있으므로 오히려 우리 사회에 의해 이끌러 가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 교회의 모습마저도 정당화시키고 있으므로 참으로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불의한 사회에 침묵하지 않고 세상의 소금이 되고자 쓴 소리를 하시는 사제 분들을 우리 일부에서는 정치 지향적 사제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난하는 분들은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있거나, 아니면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과 달라서 반대하고 있으므로 오히려 더 정치 지향적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 교인들은 사랑과 진리의 두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며 그 외에 다른 눈이 더 있을 수 없습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는 말씀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썩지 않도록 소금의 짠맛을 다하여 오늘 복음과 같은 환란이 일어나지 않고도 주님의 나라가 도래할 수 있도록 그 역할을 다하여야 하며, 우리는 우리 자신과 끊임없는 싸움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는 불의한 생각들을 몰아내고 주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함을 끝으로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림시기를 맞이하여 피정 겸 대림특강을 수강하기 위해서 금일 오후부터는 일상에서 잠시 떠나있으므로 다음 묵상은 새로운 전례력이 시작되는 대림 1주일부터 재개하겠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불의한 세력의 종살이로부터 해방되어
속량이 가까이 왔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날, 불의한 세력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으나
주님이 오시는 날을 방해한 세력들이 저희를 사방에서 포위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물리쳐서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강림하실 수 있도록
미리 깨우침의 성령님을 보내주시어 눈 먼 저희들의 눈을 뜨게 하여 주시옵고
또한, 불의를 물리쳐서 주님을 영접하는 생명의 길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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