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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도신경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10-16 조회수1,220 추천수1 반대(0) 신고

 

 

사도신경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열일곱번째(2019.10.16)_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묵시 21.1-8)

1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2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때에 나는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5 그리고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이어서 이것을 기록하여라. 이 말은 확실하고 참된 말이다.” 하신 다음, 6 또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어졌다.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 나는 목마른 사람에게 생명의 샘에서 솟는 물을 거저 주겠다. 7 승리하는 사람은 이것들을 받을 것이며, 나는 그의 하느님이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8 그러나 비겁한 자들과 불충한 자들, 역겨운 것으로 자신을 더럽히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불륜을 저지르는 자들, 마술쟁이들과 우상 숭배자들, 그리고 모든 거짓말쟁이들이 차지할 몫은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못뿐이다. 이것이 두 번째 죽음이다.” 아멘

 

오늘은 그 모든 내용을 아우르는 결론부분, 다름아닌 부활과 영원한생명이에요 부활과 영원한생명은 그리스도교에 핵심교리일 뿐 아니라 우리 성도에 소망에 뿌리이기도 한거에요 오죽하면 사도바울도 부활을 언급하면서 부활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제일 불쌍한자 라고 했겠어요 부활은 곧 영생과 직결이 되어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부활이라는 개념에 전제가 죽음이죠 죽음이 있어야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소생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에요 분명 역사속에는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나자로나 도르가 야이로의 딸 등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이 많이 성경에도 기록이 되어 있어요 그러나 그들은 부활했다라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냥 소생했다 그래요 왜 다시 죽었어요 부활이라는 건 불사성 임모렐러티라 그러죠 즉 태초에 아담에게 있었던 임모델러티를 소유한 새 영역에서의 생명 그게 이터널라이프입니다 그러니까 임모렐러티와 이터널라이프를 소유한 새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부활이라 그래요 그 부활은 옛 사람의 죽음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죽음에서부터 출발을 해야 되겠어요 도대체 죽음이라는 것이 뭔가 오늘 사도신경에 결론이므로, 그 죽음과 역사와 부활과 영생과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라는 구속사 전체의 큰 주제들을 창세기부터 연결을 해서 요한묵시록까지 쭉 뚫어 보겠습니다.

하느님은 아담과 하와를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특별한 두 나무를 주셨어요 하나가 선악과고 하나가 생명나무입니다 그 두 나무에는 열매가 있었는데 그중 선악과나무의 열매는 절대 먹으면 안되는 금기의 열매였어요 그 두 나무의 열매는 단순히 어떤 효력과 효능을 가진 그런 신비의 열매가 아니라 그 자체에 하느님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성례전적 열매들이였어요 따라서 우리는 그 두 나무 이야기에서 하느님 의중을 읽어야지 그 이야기 자체에 머무르면 안되요

하느님은 유일하신 신이에요 그런데 그 신께서 피조물과 함께 당신에 능력과 소유와 성품과 누림을 나누시기로 작정했어요 그게 하느님 나라입니다. 성경은 그들을 하느님의 자녀 장자들의 총회 교회 성도 하늘의 예루살렘 등으로 불러요

그런데 피조물과 신에 격차는 너무나 커서 하느님 앞에서의 그 피조물이라는 존재는 그저 티끌에 불과한 정도에요 후 불면 없어질 티끌에 불과한 정도 그래서 피조물들이 흙으로 티끌로 지어지는 그림이 나오는 거에요 나무도 아니고 쇠덩어리도 아니고 티끌로 지어지는 그림이 창세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모든 피조물은 바로 흙이다 티끌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에요 하느님은 그 티끌에 불과한 피조물들의 왕으로 아담이라는 사람을 택했어요 아담이라는 단어 자체가 흙으로 만들어진 자라고 그랬죠 아담아가 흙이니까

아담은 그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고 정복하여 하느님 앞에서의 그 티끌됨을 순종이라는 것으로 보여야 했어요 그걸 안식이라 그래요 하느님이 하느님에 자리에 앉아 계시고 모든 피조물들이 제자리에서 하느님께 넙죽 업드려 순종하는 상태를 피조물의 안식, 섬김을 받는 하느님의 상태가 하느님의 안식이에요 사베스입니다 그것이 그리고 그 바로 그 안식에 현실이 오늘날 우리의 예배에서 재현되고 있는 거에요 이 예배가 바로 그 안식의 상태란 말입니다

그런데 티끌에서 나온 아담이라는 피조물이 하늘에 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다른말로 하느님의 뜻과 의지에 합한 자가 되어 하느님 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신적 능력이 필요해요 신에 성품이 필요합니다. 근데 피조물 자체에는 그런 능력이 있을 수가 없어요 따라서 하느님은 오로지 당신에 능력으로 얻은 아담들에게 신적 능력을 입히셔야 되요 그걸 뭐라 그래요 복 바라크라고 한단 말입니다 그게 하느님의 생명력이에요 그러니까 복은 여러분이 원하는걸 얻어내는게 복이 아니라 피조물들에게 티끌들에게 하느님의 생명력 하느님의 그 바라크가 충만히 부어지는 상태를 복이라고 하는 거에요 그리고 그 피조물이 바로 그 하느님에 생명력 복을 충만히 받아 누리는 상태를 영생에 상태라고 하는 거고 그 영생의 상태가 밖으로 가시적으로 들어난걸 독사 영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단어의 개념들을 잘 알고 계셔야 되요

근데 인격과 이성을 가진 피조물이 하느님에 신적 능력과 신에 성품에 참여하게 되면 나타내는게 교만이에요 휘브리스, 그게 마치 자기에게서 나온 것인양 착각을 하게 되는 거에요 왜냐하면 인간은 로봇이 아니라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생각하고 판단하고 의지를 발휘하는 인격적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에 하느님에 형상을 취하여 그분의 엄청난 능력을 덧입게 되었을때 자칫 교만의 자리로 떨어질 수 있는 거에요 여러분 아담은 아이큐가 우리와 상상할수도 없을 만큼 높았습니다. 그리고 아담은 벌거벗고도 이 지구상에서 아무런 질병이 없이 살수있을 만큼 건강했어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능력에 이런 허약한 인간이 아니였단 말입니다 지금은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많은 걸 잃어서 이 모양인 거에요

피조물이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이탈해서 하느님에 자리로 올라가려 하는 모든 시도, 그것을 교만 휘브리스 죄 하마르티아 여러가지로 표현을 하는 거에요 그만큼 천상의 교회는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엄청난 존재들이라는 거에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상태로 지금도 존재하고 있어요

천상에서 하느님은 당신과 영원히 살게 될 인격적 존재들인 당신에 백성들에게 그들이 인격과 이성을 간직한 채 왜 인간은 하느님에 자리를 넘봐서는 안되는 지를 올바로 배우고 인식하도록 가르치셔야 했어요 하느님은 피조물은 원래 티끌에서 비롯이 된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과의 그 연합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면 그냥 티끌로 돌아가야 된다라는 것을 죄와 사망이라는 소품을 들어 설명을 해주시는 거에요

피조물은 하느님의 은혜를 떠나서 독자성과 무위탁성을 갖게 되면 그것이 곧 죄이며 죽음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에요 그 죽음에 상태에서 새 몸을 가지고 다시 영원으로 사는 것을 임모렐러티 불사성이라고 하고 부활때 그 임모렐러티가 주어지는 거에요 그리고 그렇게 살아난 자들에 그 삶 그것을 영원한생명이라고 하는 거에요 영원속에서의 삶 다가올 세대의 삶 그러니까 신적인 삶 다 같은 말이에요 그게 영원한생명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오직 하느님의 생명으로만 존재하고 살아가야지 하느님께 순종해야 하는 그 자리를 떠나서 다른 것을 의지하고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며 자신을 주인삼아 살게 되면 그곳이 곳 죽은 상태임을 가르치는 거에요 그러니까 여기 앉아 있는 사람 중에도 예수를 믿는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있는 티끌들 흙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자기만을 위해서 자기 소원과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나와 앉아 있는 흙들이 이 자리에 분명히 있단 말입니다 거기에 그런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등장시킨 것이 바로 에덴의 두 나무 이야기인 거에요 요한묵시록에 새하늘과 새땅에는 선악과 나무가 없어요 그런데 생명나무는 있습니다 잘 생각하셔야 돼요 원래 있던 것을 어느 시점에 뽑아 버린게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에는 원래 선악과가 없어요 창세전에 완성된 하느님 나라에는 원래 선악과 나무라는게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에덴동산을 새하늘과 새땅과 혼동을 하여 인식하시면 안되요 에덴은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어떤 교훈을 하시기 위해 한시적으로 하늘에 모형으로 사용된 무대셋트일 뿐이에요 에덴에 심겨졌던 생명나무는 우리가 성찬식에서 사용하는 빵과 포도주처럼 어떤 상징 성례전적 세크라멘토로의 의미를 가진 하나의 모형으로서 그 생명나무의 원형은 새하늘과 새땅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거였어요 그리고 선악과는 교육용 프로베이션이였던 것입니다

묵시록 27절 보세요 7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하느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해 주겠다.’”

이게 누구에게 한 말이죠 에페소 교회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에페소 교회는 지금부터 2천년전에 있던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때 이미 낙원이 있고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가 있데요 그들이 그 현실을 이기면 그 생명나무 실과 주어서 먹게 하겠다라는 것입니다

묵시록 222절 보세요 2 도성의 거리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 이쪽저쪽에는 열두 번 열매를 맺는 생명 나무가 있어서 다달이 열매를 내놓습니다. 그리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에 쓰입니다.

여기는 지금 새하늘과 새땅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입니다 거기에 생명나무가 있는데 그 열매로 민족들이 살아난다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생명나무 열매는 민족들을 살려내는 힘이 있는 어떤 존재를 말하는 거에요 요한은 자신에 다른 책 요한일서에서 그 생명나무 열매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요한일서 11-2절 보세요 1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2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생명나무가 누구에요 예수님을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자꾸 어떤 동산에 나무 두개가 이렇게 심겨져 있었는데 거기서 아담이 타락을 했고 이따위로 생각하시면 안되는 거에요 성경은 그거보다 더 깊은 것입니다 그거는 아주 유아기적 해석인 거에요 요한은 그 태초부터 존재한 생명을 봤는데 그 생명이 말씀으로 오셨데요 생명을 주는 생명나무 열매는 예수님인데 그분이 말씀으로 오셨데요 그 천국에 생명나무 열매가 이 땅에 나타났다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그 생명을 보고 손으로 만졌데요 바로 그 성육신 하신 예수 안에 생명나무 열매가 들어있었다 라는 것을 이야기 하는 거에요

요한1511절로 가보세요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보세요 11절을 보면 요한이 예수 안에 들어있는 생명을 가리켜 뭐라고 불러요 영생이라고 부르잖아요 영원한생명, 따라서 생명나무 열매는 티끌인 피조물에게 영생을 주는 열매였던 거에요 그런데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그 생명나무 열매를 품고 내려오신, 아니 그 생명나무 열매 자체이신 그 예수님을 가리켜 하느님이라고도 해요

요한복음 11-4절 보세요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따라서 영원한생명은 하느님에 신적 생명이며 그 생명을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무상으로 선물을 해 주시기 위해 성자 하느님께서 이 땅에 인카네이션 성육신 하여 내려오셨던 거에요 그 영생은 어떤 조건과 자격과 공로를 배경으로 주어지는게 아니에요 흙이 무슨 자격이나 기능이나 공로나 열심을 내어 놓아 아담이 된거 아니잖아요 흙은 그냥 죽어있었어요 무력하게 죽어있었는데 하느님의 능력이 다다르니까 그 흙이 아담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백성은 그렇게 창조되는거지 니들이 뭐가 잘나서 그렇게 된게 아니다라는걸, 그 천상의 완성된 엄청난 능력과 지혜를 소유하고 있는 그 천상의 교회에게 육신을 입혀 이 땅에서 가르치고 있는 거란 말입니다 그게 창세기부터 묵시록이며 역사인 거에요

영원한생명은 티끌인 인간에게 은혜로 무상으로 선물로 주셔야 되는 거에요 하느님 나라의 생명을 하느님 나라의 삶은 왜냐면 그 어떤 피조물도 하느님의 생명을 얻을 수 있을 만한 공로나 업적이나 열심을 내어 놓을 수 없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하느님은 영생을 값없이 주실 수 밖에 없었던 거에요 값어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 세상 그 어떤 것을 주어도 그걸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값없이 줄 수 밖에 없어요 갚을 수가 없기 때문에 여러분의 윤리적 도덕적 착한 삶으로도 못갚아요 괜히 하느님의 은혜를 갚겠다라는 말하지 마세요 그게 자기 의입니다. 못갚아요 하느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분을 사시는 것입니다 살려내고 사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서 그게 성도입니다 영생은 그만큼 소중한 거에요 그래서 하느님이 직접 우리에게 선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티끌들이 자기들도 힘이 있으며 영생에 도달할 지혜가 있다고 나선 거에요 그게 바로 스스로 하느님처럼 되겠다고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이고 바벨탑을 쌓아서 영생에 이르겠다는 저주받은 인간들이고 제사와 율법으로 하느님의 자격을 따겠다고 한 이스라엘이였어요 그게 다 우리란 말입니다 지금의 우리, 따라서 아담안에 내가 있는거고 이스라엘 안에 내가 있는 거에요 바벨탑 현장에 내가 있는 거에요 끊임없이 우리는 우리 힘으로 행복에 도달할려고 한단 말입니다 돈주세요 명예주세요 건강주세요 자식잘 되게 해주세요 행복은 내가 찾아먹을테니까 당신은 나만 도와주세요 그게 아담이에요 선악과 따먹은 아담 바벨탑 쌓는 인간들이고 그것이 제사와 율법으로 이 땅에서 다윗 화려한 다윗 왕국의 회복을 꿈꾸었던 이스라엘이란 말입니다 그들이 전부 멸망의 자식인 거에요

우리는 그러한 역사속에서의 하느님의 소품들 속에서 하느님의 은혜를 따난 전체로서의 그 피조물의 모습과 결국을 읽어 낼 수 있어야 되는 거에요 하느님은 티끌들에게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주시기 위해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셔야 했어요 그런데 그거는 우리 세상에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볼때에는 손해며 상함이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그 나라를 사는 존재들에 행동양식이며 삶의 원리에요

요한복음 314-17절 보세요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게 바로 하느님 나라의 삶의 원리에요 티끌같은 존재에게 아니 원수되어 떠난 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영생을 주시기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비우고 털어내 버리는 아들까지도 비우고 털어내버리는 아니 스스로 자기가 저주의 존재가 되어 뱀이 되어 놋뱀이 되어 장대에 매달리는 그러한 그런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하느님에 생명인 영원한생명에 본질인 거에요 그게 영생입니다. 그게 바로 하느님의 속성이에요

하느님은 당신에 택한 백성들에게 바로 그 영생을 주셔서 당신이 누리시는 하늘의 모든 것을 다 누리게 해주시며 함께 교제하며 연합하여 사시기로 하시고 천상에 이미 완성되어 있는 하느님의 교회에게 그 원리와 본질을 역사와 인생과 말씀을 통하여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시는 거에요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들 거에요 이왕 그렇게 영생에 본질이 하느님의 신적 생명의 본질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털어서 원수에 유익을 챙기는 것이라면 왜 마귀와 불신자들은 지옥에 보내시는가 그들도 원수 우리도 원수였잖아요 뭐가 다른게 있어요 똑같이 흙인데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구원해 주고 그들은 왜 지옥에 보내요 어짜피 하느님의 본질이 사랑이고 자기를 비워 원수를 살려 내는 거라면 원수들도 살려 내면 될거 아니에요 왜 그들은 죽이십니까 왜 그들은 영원한 형벌속으로 밀어 넣으시죠 여러분 그게 바로 인본주의적 질문인 거에요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인간과 모든 생물이 다 존귀합니까 그걸 인본주의라 합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다 존귀하다 물론 우리는 이땅에서 누가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자고 누가 하느님의 선택을 못 받은 자인지 몰라여 그래서 모든 인간을 존귀하게 여겨야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관점으로 봤을때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이 다 존귀하지 않습니다 인본주의자들이 들으면 짱돌들고 달려올 말이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다 존귀하지 않아요 하느님과 관계있는 자들만 존귀합니다

하느님의 관점에서 모든 존재는 그냥 흙이에요 그냥 티끌이에요 우리는 언제든지 하느님이 나를 티끌로 만들어 지옥에 쳐 넣어도 아무런 항변을 할 수 없는 그런 존재입니다 까지 내려가야 되요 그런데 그들이 제네들은 왜 안구해주고 나만 구해줬어요라는 질문을 한단 말이에요 그럼 너도 지옥가 그러면 할말이 없는건데 너도 티끌이잖아 그럼 너도 죽을래 그럼 어떻게 하실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미련한 인간들이 제네들은 왜 존귀하게 여겨주지 않냐고 항의을 한다니깐요

이사야서 4017절 보세요 17 민족들 모두가 그분 앞에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분께는 아무것도 아니며 헛것으로만 여겨진다.

하느님과 관계없는 이 민족들은 전체가 없는 거에요 헛것에 하느님이 생기를 불어 넣지 않으면 아무리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하더라도 그건 그냥 흙이에요 티끌이에요 그런데 그중에서 어떤 무리를 선택하셔서 당신에 생명인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을 하시고 나머지 먼지들은 그냥 소품으로 쓰셔서 당신의 백성들에 교훈에 도구로 사용하세요 불만있으세요? 하느님이 티끌을 그냥 티끌답게 소품으로 좀 사용하신다고 하는게 그렇게 가슴 아프게 합니까.

에페소서 21절을 보면 1 여러분도 전에는 잘못과 죄를 저질러 죽었던 사람입니다.

그말은 하느님과 관계없는 모든 존재는 죽은 흙에 불과한 거에요 죽은 흙을 지옥에다 갖다 넣는게 뭐가 잘못됬어요 그런데 하느님의 은혜로 하느님의 백성이 된 것일 뿐이지 그 은혜가 떠나면 여러분은 언제든지 죽은 흙이에요 자 그래서 하느님은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비로서 아담을 만드시는 거에요 생기를 불어넣기 전에 아담이 네페시라고 나와요 성경에 보면 그 네페시라는 존재는 동물들을 하느님이 흙으로 만드셨을때 거기에 쓰인 단어거든요 네페시 살아있는 거에요 움직이는 거에요 그런데 아담에게만 하느님이 생기를 불어넣었어요 그게 하느님과의 관계요 생명력이라는 거에요 그걸 잃으면 어떻게 된다 죽는 거에요 정녕 죽으리라 무트 타무트, 그 상태가 지금 이 세상인 것입니다 그들을 전부 지옥에 넣는다 할지언정 뭐가 잘못이에요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그냥 먼지인데 그들이 지옥에 간들 무슨 하느님이 뭐가 잘못하는 거에요 그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본주의에 빠져서 살아온 이들은 거기를 그걸 가지고 불평을 한단 말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그렇게 하느님의 생명력을 받았을 때에만 존귀함을 얻어요 하느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었다에서 그 생기가 르와흐거든요 숨 호흡 바람 성령 이런 뜻이에요 여러가지 뜻을 갖고 있어요 래서 열두제자를 천상의 교회로서 세상에 보내실때 예수님이 후하고 숨을 내쉬고 그들을 보내는 거에요 교회는 성령을 하느님에 생명력을 받아야 비로소 교회가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하고 숨을 부는 거에요 오순절날 교회가 정식으로 탄생이 될때 하느님에 성령이 르와흐가 바람이 급한 강한 바람처럼 그들에게 임한것도 똑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느님의 생명력이 피조물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생명력이 그 피조물에게 임하는 각기 다른 모양의 동일한 그림인 거에요 그래서 베드로가 사도행전 3장에서 설교를 할때 너희들이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야되 그래야 너희들이 유쾌하게 된다 그래요 아탁쉽시스라는 단어를 써요 그게 뭐냐면 질식하여 죽어있던 자에게 바람이 새 신선한 공기가 확 뿌려져서 살아나는 상태아낙쉽시스라 그래요 그게 구원인 거에요

그 이야기를 사도베드로가 바람처럼 성령이 임한 그 상황에서 바로 다음에 붙여서 설교를 하고 있단 말입니다 이 일이 바로 여기서 일어났다는걸 보여주는 거에요 그러니까 하느님과 관계없는 모든 인간들은 전부 뭐에요 티끌이에요 흙이에요 죽어있는 것입니다 차치하고 그렇게 하느님의 생명력으로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이들은 이미 창세전에 모두 결정이 되어 있어요

(디도서 11-2) 1 나 바오로는 하느님의 종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내가 이렇게 부르심을 받은 것은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의 믿음을 돕고 신앙에 따른 진리를 깨우쳐 주기 위한 것으로, 2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근거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거짓이 없으신 하느님께서 창조 이전에 약속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러니까 이미 영원 전에 영생을 주시기로 선택된 어떤 무리가 존재하고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게 영원이에요 나머지는요 그냥 멸망이에요

요한복음 316절 보세요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영생과 멸망이 극명히 대조되어 있죠 멸망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지옥은 분명히 있다라는 거에요 영생을 얻지 못한 자는 다 멸망해요 근데 그 멸망할 자들이 이미 하느님에 의해서 작정이 되어 있어요 멸망시킬라고 지옥에서 그렇게 불태워 버릴라고 죽은 흙으로 창조된 이들이 있다 말입니다

로마서 920-23절 보세요 20 , 인간이여! 하느님께 말대답을 하는 그대는 정녕 누구인가? 작품이 제작자에게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21 또는, 옹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한 덩이는 귀한 데 쓰는 그릇으로, 한 덩이는 천한 데 쓰는 그릇으로 만들 권한이 없습니까? 22 하느님께서 당신의 진노를 보이시고 당신의 힘을 알리기를 원하시면서도, 멸망하게 되어 있는 진노의 그릇들을 큰 은혜로 참아 주셨다면, 23 그리고 영광을 받도록 미리 마련하신 자비의 그릇들에게 당신의 풍성한 영광을 알리려고 그리하셨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렵니까?

하느님이 준비한 멸망받기로 작정된 그릇들이 있단 말입니다 이중에도 있어요 분명히 또한 영광받기로 예비하신바 자비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유함을 알게 하고자 하여 그러니까 영광을 받기로 만들어진 인간과 멸망을 받기로 만들어진 인간이 나누어져 있단 말입니다 이미 언제부터 영원 전부터~

사도행전 1348-49절 보세요 48 다른 민족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들은 모두 믿게 되었다. 49 그리하여 주님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그 말을 알아들은 자는 다 믿더라가 아니라 창세전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만 다 믿더라 란 뜻인 거에요 그러니까 다시는 모든 인간은 다 평등하다느니 하느님의 처사가 너무 독선적이고 불공평하다던지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되요 그 사고의 중심은 여전히 인간인 것입니다 티끌들이 할 말이 아닌 거에요 그거는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자칫 어떤 분들은 그리스도교가 너무 비인간적이고 차갑다고 말씀하실 수 있을 거에요 그러나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수가 없어요 다만 조심할 것은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스스로는 누가 그져 죽은 흙이고 누가 하느님의 생명력으로 완성된 사람인지 절대 판단할 수 없다라는 거에요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사람도 포기하지 말아야 되는거고 그 어떤 존재도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영원한생명은 하느님이 선물로만 주셔야 하는 아주 소중한 하느님의 것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그 은혜의 자각 앞에서 납작 엎드려 하느님에 은혜에 감사와 찬양과 순종을 드릴 수 밖에 없는 그런 존재로 지어진 자들인 거에요 그렇게 귀하고 소중한 것이 영생인데 사람들은 스스로에 힘으로 그 영생에 도달하려 하고 심지어 그 영생을 곡해하여 이 세상 다른 것에서 행복과 쾌락과 만족을 찾으려 해요 그게 영생에 본질인 줄을 알아요 사람들은요 아니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들의 삶이 그걸 이야기 해주고 있어요 하느님의 말씀이 매일 여기서 떨어지는데 자기들의 삶은 여전히 자기 문제 해결에만 창렴되어 있는거 그사람들은 영생 안 믿는 겁니다 미안하지만 그런자들은 절대 영원한생명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해 주시기 위해 선악과가 동원이 된거에요

선악과는 하느님에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하느님만으로 행복하고 하느님만으로 존재해야 하는 피조물이 하느님 절대 의존의 자리를 떠났을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가를 설명하는 설명용 교보재인 거에요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자 하느님은 뭘 감춰요 생명나무를 감춥니다 영생이 감춰지는 거에요 지금.

창세기 322-24절 보세요 22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 사람이 선과 악을 알아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으니,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 생명 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어서는 안 되지.” 23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그를 에덴 동산에서 내치시어, 그가 생겨 나온 흙을 일구게 하셨다. 24 이렇게 사람을 내쫓으신 다음, 에덴 동산 동쪽에 커룹들과 번쩍이는 불 칼을 세워, 생명 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

여기보시면 재미있는 말이 나오는데 인간이 선악을 아는 일과 선악을 판단하는 일에 하느님처럼 되면 그게 죄라는 거에요 그 상태가 영생에 반대인 멸망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변에 특히 옳은것 잘 분별하고 옳은거 많이 주장하는 사람들 있죠? 그 사람들 참 바르다고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까 그사람들이 선악과 많이 드신 분들이에요

인간들은 하느님을 알면 알수록 절대 그 자리에 설수 없어요 내가 설사 옳다고 여겨도 나도 언제든지 저 자리로 내려갈텐데 나도 티끌인데 하느님이 나를 살려 주셔서 내가 이 상태로 된 거지 그리로 먼저 가지 절대로 남을 지탄하거나 정죄하고 심판하는 그 자리로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런 이들에게서 영생에 나무를 감추어버리는 거에요

죄인들에게 자신을 감추시는 하느님은 출애굽기를 비롯한 모세오경 예언서 시가서 심지어 신약에 복음서에도 계속 반복되어 기록이 되어 있어요 하느님께서 시나이산에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 기억나십니까? 백성들이나 짐승들이라도 그 어느 것 하나 거룩한 땅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라 내가 돌격하여 죽여버리겠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거룩한 곳은 하느님의 생명 하느님이 계신 곳이에요 거기에는 火焰劍과 그룹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못들어가요 그곳으로 예시된게 또 하나 뭐다 지성소 거기에 그룹 휘장에 그룹이 새겨져 있었잖아요 그게 바로 생명나무가 하느님이 그룹으로 막혀 있는 그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거에요 거기는 아무도 못들어가 들어가면 다 죽습니다.

자 그 말씀은 지금 하느님 당신 자신이 두루 도는 화염검과 그룹에 역할도 대신하고 있다라는 그런 말씀인 거에요 하느님이 막고 계시다라는 거에요 하느님을 떠나 자신들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선악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그런 존재들은 절대 하느님과 연합하여 영생에 이를수 없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에요 내가 막는다 내가 못들어오게 할거야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런 자들은 하느님 앞에서 그냥 흙이라는 거에요 火焰劍으로 생명나무와 차단이 되어 있는 그들은 전부 흙이라는 거에요 다 죽은 거에요 그들은 그 화염검의 불길에 다 타죽어도 마땅해요 그걸 지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절대 하느님의 생명에 근접할 수가 없어요 그것을 화염검과 그룹으로 상징화하여 표현하는 거에요

하느님 앞에서 티끌이 되지 못하는 자들은 절대 하느님과 연합할 수 없고 영생을 누릴 수 없다라는 거에요 고거 말하나 어겼다고 이런 엄청난 저주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먹지 말라는 거 한입 비어 먹었다고 그만큼 하느님은 크신 분이고 우리는 보잘것 없는 존재인 거에요 그 현실을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기록하죠

이사야서 69-10절 보세요 9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저 백성에게 말하여라. ‘너희는 듣고 또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마라. 너희는 보고 또 보아라. 그러나 깨치지는 마라.’ 10 너는 저 백성의 마음을 무디게 하고 그 귀를 어둡게 하며 그 눈을 들어붙게 하여라.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치유되는 일이 없게 하여라.”

보세요 하느님의 말을 전하라고 예언자를 세워서 보내는데 못알아 듣게 하래요 그럼 왜 보냅니까? 너희들은 못알아 듣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보내는 거에요 선악과 따먹고 자기들의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들도 하느님 앞에서 납작 엎드려 순종하는 그런 삶만을 살수 없다고 자기들의 힘도 주장하고 이 세상의 힘을 얻어 하느님이 말씀하신 그 지복에 한번 도달해 보겠다고 하는 모든 자들은 못알아 듣는다라는 뜻이야 하느님의 말을 못알아 듣는다 그 말은 말씀으로 오신 예수도 못알아 본다라는 뜻과 똑같은 거에요 자 그들은 그 상태로 절대로 하느님께 돌아와 고침을 받을 수 없는 거에요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막혀 버린 바로 그 생명나무의 모습인 거에요 그 현실이 여기에서 이사야를 통하여 한번 또 보여지는 거에요 이 이야기를 예수님이 또 인용을 해서 말씀하시죠

 

마태복음 1310-13절 보세요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12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13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명나무 실과인 영생을 품은 예수님이 오셨는데 말씀이 오셨는데 그분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어요 그분의 말씀을 아무도 알아 듣지 못했습니다 왜요 그분이 자신을 숨기셨기 때문이에요 화염검과 두루 도는 화염검과 그룹으로 생명나무 실과를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감춰 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이 못알아 먹는게 당연한 거에요 왜 그들은 다 티끌인 거거든요 다 흙이에요 못알아 먹어야 되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와 복음을 비유로 말씀하셨던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차라리 잘 설명을 해주시지 왜 못알아 듣는 비유로 말씀해주세요 그랬더니 제네들 혹시 알아들을까봐 이렇게 이야기 하신단 말입니다 못알아 들어요 못알아 듣는데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건 예수님이 아무리 설명해줘도 그들은 못알아 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나라의 비밀은 하느님이 택한 백성들 영원한생명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에게만 들어나 있는 거기 때문에 너희들만 듣고 너희들만 볼 수 있다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숨기신 사건이 여러번 반복이 되어 나오죠 숨으셨다 숨기셨다 이런 말씀, 구약에도 숨어 계신 하느님 감추이신 하느님 이라는 말이 여러번 등장해요 그게 전부 화염검으로 가리워진 생명나무의 모습인 거에요 그렇게 영생의 근원이신 예수님은 세상에게는 감추어져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영원히 당신의 생명을 감출거에요 그게 지옥이에요 누구에게 하느님말 안듣고 자기들이 자기들 인생에 중심이 되어 사는 이들에게는 영원히 안나타내실 거에요 무스테리온 비밀로 그냥 남겨 두실 것이다란 이야기인 거에요 그런데 그렇게 감추어진 예수님을 보는 사람들이 생겼죠 그들이 바로 제자들로 상징이 된 교회인 거에요

마태복음 1317절 보시면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그래요 그런데 그 영생에 열매이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 버리신 거에요

예언자들은 증거만 받았지 약속에 실체는 받지 못했잖아요 히브리서에 나오죠 못본거에요 그런데 그 약속의 실체인 예수가 이들 앞에 나타나버린 거에요 봐 그랬더니 이들이 보더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들은 계속 실패하는데 하느님이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버리더래는 거에요 기필코 제자들이 무슨 노력을 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학식과 뛰어난 재능과 열심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였어요 그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부인한것 밖에 없어요 그런데 하느님의 눈과 귀를 마침내 열어버리시는 거에요 불가항력적 은혜로 생명이 그들의 삶에 뚫고 들어와 버리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러한 방식으로만 영생의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에요 그걸 십자가가 한번 또 보여주는 거에요 아주 집약을 해서 생명나무를 가리고 있던 성소에 휘장이 그룹이 그려져 있던 성소의 휘장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위에서 아래로 찟어지죠 그리고 지성소가 열려요 생명나무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찟어짐으로 예수가 찟어짐으로 히브리서가 그러잖아요 그 휘장은 예수였다라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예수가 막고 있었는데 예수가 찢어 짐으로 어떤 티끌들에게 죽어 있는 자들에게 영생이 주어지는 거에요 우리들은 그렇게 천국백성이 됐기 때문에 이제 다시는 그 앞에서 모반이나 반역을 꿈꾸면 안되는 거에요 그거 배우셨으면 되는 거에요 성도는 이 땅에서 나그네요 이방인으로 살면서 그거 배우고 가는 거에요

그런데 요한은 그 예수님을 가리켜 말씀이라 그러죠 그래서 하느님에 말씀 또한 세상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진 비밀이어야 되요 세상 사람들은 도저히 못알아 들어요 그들은 절대 복음에 수긍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성도는 점점 외로워지는 거에요 점점 고립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님에 말씀으로 말을 하기 시직하기 때문에 세상과 말이 안통해요 점점 여러분은 고립되어 가는게 맞습니다

로마서 1625절 보세요 25 하느님은 내가 전하는 복음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 또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의 계시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26 이제는 모습을 드러낸 이 신비가 모든 민족들을 믿음의 순종으로 이끌도록, 영원하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예언자들의 글을 통하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7 홀로 지혜로우신 하느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었다가 언제부터 영세 전부터 창세기때부터가 아니에요 영세전부터 이미 감추어져 있었던 거에요 흙들에게는 그걸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 그림으로 설명을 해주는 거에요 그게 성경이란 말입니다 이제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느님의 명을 쫓아 예언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쫓아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시니라 여기 비밀이 무스테리온 이에요 시크릿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524-30절 보세요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26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27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28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29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30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과거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얻었어요 얻었으면 살수 있는 거에요 그럼 어떻게 사는게 영원한생명을 사는 거에요? 그건 신적인 생명이라면서요 부활후에 하느님 나라에서 사는 삶이라면서요 그런데 어떻게 이 세상에서 살죠 성경은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가 뚫고 들어와 있다라고 그러죠 그래서 하느님 나라와 이 세대와 오는 세대가 오버렙되어 있는 굉장히 이상한 세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거에요 지금. 그래서 여러분은 이 땅에서 이 세대를 살기도 하지만 하느님 나라를 살기도 해요 영원한생명도 살수 있고 이 세상에서 육적 삶도 살수 있어요 그게 이땅에서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성도입니다

 

자 어떻게 우리가 이 땅에서 영생을 살 수 있는가.... 믿음으로 그래서 성도에게 믿음이라는게 주어지는 거에요 믿음은 눈에 보이는 현상에서 눈을 들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볼수 있는 눈을 말해요

따라서 믿음을 소유한 이들은 자신들에 티끌됨을 온전히 티끌됨을 온전히 자각하고 수긍하고 인정하며 그 위에 부어진 하느님의 은혜와 사랑에 무게를 실감하고,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힘으로 선악을 판단하고 열심을 부려 행복에 도달하려했던 그 교만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오직 예수님에 십자가 피 공로만을 의지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고백하는 자로 지어져 가야 되는 거에요

따라서 우리 성도는 이 땅에서 선악과를 따먹는 일 즉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 앉아 우주의 중심 행세를 하려는 그 모든 일에서 돌이켜 오직 예수만이 믿음에 대상이고 예수만이 의지의 대상이며 예수만이 행복에 근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자리로 자꾸 내려가야 하는 거에요

쉬운말로 성도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예수만을 믿는 일 우리는 돈도 믿었고 자식도 믿었고 명예도 믿었고 여러가지 관계도 믿었고 이웃도 믿었고 믿은건 많았잖아요 그 자리에서 예수만 믿는 자로 내려오는 그 자로 성숙되어져 가는 거에요 우리가 그 일을 하고 있는 상태를 이 땅에서 성도가 영생을 산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땅에서 예수만을 믿는 자로 무장해제되는 그 일... 그 일만을 우리 안에서 내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영원한생명을 사는 삶이에요

요한복음 627-29절 보세요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이 양식이 누구에요 예수에요 말씀이에요 예수만을 믿는 자 그런 자로 지어져 가는 그 일에 나타나는 모든게 여러분이 지금 하느님의 일을 하는 거에요 그리고 그 삶을 사는게 이 땅에서 영생을 경험하며 사는 이들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할 하느님의 일은 예수를 믿는 일 밖에 없어요 그 상태가 선악과를 따먹는 일에 동참하지 않고 생명나무에 다다른 하느님 나라 백성의 모습인 거에요 우리가 영생에 본체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을 보내신 하느님의 능력과 은혜와 사랑을 알지 못하며 여전히 우리의 힘을 의지하고 세상에 재화를 얻어내는 데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선악과를 따 먹고 영생나무를 화염검으로 차단당하는 그런 멸망할 자의 신세에 불과한 거에요 그래서 요한은 영생을 하느님을 알아야 되고 그 분이 왜 예수를 보냈는지를 알고 그 분이 보내신 예수를 아는게 영생이다라고 이야기 한거에요 연결이 되십니까

요한복음 172절 보세요 2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성도에서 영생을 사는 길은 이란 뜻인 거에요 그런데 그 삶이 잘 안살아지죠 그래서 요한은 하느님의 선택에 의해 이미 거듭나고도 영생에 의미를 잘 모르고 여전히 세상사람과 방불하게 사는 이들이 분명히 있다고 성경에까지 기록을 해 놓고 있는 거에요

(요한 1513) 13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이 지금 요한일서라는 성경을 썼어요 왜 썼어요? 희들이 영생이 있는데도 너희들 안에 영생이 있는지를 너희들 스스로가 모르고 있구나 그러니까 말씀보고 성경보고 너희들에게 영생이 있는 것을 깨달아 알아라 그래서 내가 요한일서 쓴거야 이야기를 한거에요 요한복음은 왜 썼어요 요한복음 2030-31절 보세요

30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렇죠 이렇게 영생을 얻고도 영생과 무관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그들에게 뭐가 필요했다는 거에요 성경 설교 말씀이 필요한 거에요 그들에게 영생을 살게 하기 위하여 그 무지의 자리로 내리 꽃히는게 바로 성경이며 하느님의 말씀인 거에요

그 말은 너희는 말씀을 잘 배워서 너희에게 영생이 있다는 걸 알고 영생을 가진 자처럼 하느님이 살게 할 때 수능하고 받아들여라라는 뜻인 거에요 따라서 우리는 강단에서 선포되는 하느님의 말씀과 성경의 묵상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수시로 확인하여야 하는 거고 그 말씀에 힘으로 이 땅에서 생명을 살아야 하는 거에요

그 말도 잘 분별해서 들으셔야 됩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노력해서 영생을 살도록 하라는게 아니라 여러분은 이미 영생 안으로 들어와 있다라는걸 확인하라는 거에요 그때 여러분은 하느님의 열심에 의해 여러분 자신이 이미 영생을 살고 있음을 아시게 될거라는 거에요 그걸 위로라고 합니다. 내가 고난에 봉착해 있는데 성경말씀을 읽다 보니까 이게 내가 부인되고 십자가를 지는 영원한생명에 삶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때 위로가 되는 거에요 그걸 뒤집어서 회복시켜주는게 그리스도교가 아니라니깐요 거기에서 위로를 받게 하는게 영생으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게 하는게 그리스도교라 말입니다

 

영원이란 하느님에 시간대를 말하는 거에요 따라서 우리가 쓸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영원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통합된 그런 개념이에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알파와 오매가이신 처음이며 끝이신 그분의 시간대, 하느님의 시간대 그게 영원이에요 영원속에서는 순서나 시차가 없어요 영원한 현재에요 왜? 완성된 곳이기 때문에. 더 이상 거기는 발전이나 성장의 개념이 없어요 자라남의 개념이 없어요 왜 완성된 곳이기 때문에 그래서 영원이에요 더 이상 자랄 필요도 없고 발전할 필요도 없고 성장할 필요도 없는 모든 것이 완전하게 이루어져 있는 상태 거기가 영원입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시간이 필요없는 거에요 시간이 없는 그곳에는 기다림이라는 게 없어요 따라서 하느님께서 창세전에 작정하시고 만드신 하느님 나라는 이미 영원속에 완성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죽음이라는 문을 통과하여 이 시간속에서 영원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하느님 나라로 입성을 하게 될거에요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이 살아 있다라고 하는 거에요 죽었잖아요 그런데 영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통합이 되어 있는 영원속에서는 살아있다 말입니다 그래서 산자의 하느님인 거에요 성도는요 성도는 이 땅에서 죽어도 사는 거에요 그게 영원이에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이 조금씩 이해가 가지 않으세요

그렇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통합이 된 그 영원이라는 하느님의 시간대가 역사속으로 들어오죠 하느님의 은혜를 입은 성도는 믿음이라는 것을 사용하여 시간위로 붕 뜨는 거에요 그리고 그 성도는 영원을 사는 자가 되요 어떻게 믿음으로, 우리 성도는 믿음으로 아담에 범죄현장에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어요 여러분은 믿음으로 그게 하느님이 하신 일이고 그 아담안에 내가 들어있다라는 것을 고백하잖아요 어떻게 고백해요 수천년전에 있었던 일인데 그걸 영원이라고 해요 여러분은 믿음으로 지금 영원을 살고 있는 거에요 언제든지 여러분은 에덴동산으로 갑니다. 언제든지 그 노아의 홍수 사건에 투입이 되어서 저주에 바다에서 건져지는 경험도 하고 카인이 아벨을 살해하는 현장에서 또 다시 우리의 불가능함과 띠끌됨을 보기도 하고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기도 하고 출애굽하여 홍해앞에 서기도 해요 우리 앞에서 홍해가 갈라져요 구원이 일어나요 구원사건이 일어나요 그런게 어떻게 우리에게 믿겨졌죠 그게 영원이란 말입니다 어떻게 더 쉽게 설명을 해요? 그리고 이미 2천년전에 골고다에 섰던 그 십자가의 현장으로도 우리는 갈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십자가 앞에서 그 십자가에서 튀는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우리가 직접 맞습니다 덧입을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로 구원받는 거에요 어떻게 영원에서 나는 지금 2019년을 살고 있는데 AD30년에 십자가가 내 앞에서 현실로 나타나는 거에요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과 재림사건에도 우리는 동참해요 어떻게 소망으로 믿음으로 내가 거기에 있을 거라는걸 우리는 소망하잖아요 믿잖아요 그게 영원이란 말입니다 별거아니에요 그게 이미 일어난 거란 말입니다 하느님의 시간대 속에서는 그게 영원이에요 과거 현재 미래가 통합되어서 일어난 거에요 그래서 십자가는 창세전에 선거고 그 십자가가 전 역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거에요

자 우리는 그렇게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과 재림사건에도 동참하며 아직 가시적으로 오지 않은 새하늘과 새땅을 소망으로 바라봐요 그래서 바오로는 우리가 창세전에 구원을 받았다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고 창세전에 하느님에 아들이 되었다 라고도 하는 거고 이미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있다라고도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게 뭐다 영원, 현재만 살고 있는 그래서 현실에만 묶여 있는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성도는 이 땅에서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동시에 산다라는 거에요 그래서 그 사람들은 이 현실에 묶여 있을 수가 없어요 여러분을 괴롭히는 이 현실의 문제에 묶여 있을 수가 없어요 그건 영원을 사는 게 아니에요 현재를 사는 거에요 그거는요 여러분은 영원속에서 완성된 그 하느님 나라를 살아야 되요 창세기 11절부터 요한묵시록 끝까지가 여러분의 삶속에서 살아지는 것이지 여러분의 현재를 여러분이 사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자꾸 그 편협한 고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거기에 묶여 있으면 안되요

 

여러분은 영원을 산다니깐요 그게 영원한생명이에요 그래서 영생을 사는 이들은 이 땅에 것으로 일희 일비 안하는 거에요 그렇게 산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게 영생을 산 사람들인 거에요 현실을 살지 않고 현재를 살지 않고 과거 현재 미래 하느님의 구속사를 살아버린 거에요 그래서 내 삶에 이런 나쁜 일이 일어나도 이게 영원속에서 완성된 그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백성 거기로 수렴이 되는 이 땅에서의 시간속에서의 한 과정이구나를 깨닫고 거기에서 딛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게 영생을 살고 있는 거에요 영원을 살고 있는 거에요 우리들의 행실이 조금 부족하고 못나도 괜찮아요 그런 일이 합력하여 선.... 영원속에서의 그 완성을 이룰거니까. 그들이 영생을 사는 거에요 자기의 행실을 의지하지 않아요

야 내가 예수 믿고도 이럴수가 있어? 나는 혹시 구원받은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이건 자기를 지금 의지하는 거죠 오히려 폭로당하시라니깐요 그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나를 완전한 그곳에 세우신다고 하니 감사하다라는 그 영생 그 영원을 살란 말입니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향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삶이 바로 영생이에요 그렇다고 성도는 이 세상을 아무렇게나 막 살아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열심히 살아야 되요 성실하게 살아야 됩니다 그러나 그 자체에 목적을 두시지 말란 말이에요 그게 영원을 사는 사람들의 삶이에요 따라서 진정으로 나는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영생을 사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신앙고백을 하는 이들은 지금 이땅에서도 영생을 사는 이가 되어야 되는 거에요 영생은 나중에 사는 게 아니에요 지금 사는 거에요

그런데 그 영생은 나와 하느님이 하나로 연합이 되는 삶이라 그랬죠 하느님의 것이 내 삶에 완전히 부어지는 상태니까 내가 다 비워져야 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영생은 내가 완전히 비워지는 자기가 부인되고 십자가를 지는 그 삶을 사는 거거든요 그게 하느님 나라의 삶의 원리에요 그래서 내가 자꾸 하느님의 뜻에 항복하는 자로 부인되어져가는 삶을 살게 되는 거에요

현실과 현상에 집착했던 그 삶에서 하늘에 존재로 살아나는 거 , 옛 사람의 죽음으로 자꾸 일어나는 거에요 옛 사람이 그렇게 죽으면 내 안에 새 생명이 있잖아요 세상 사람은 옛사람이 죽으면 계속 죽어가는 거에요 그런데 생명을 소유한 우리는 옛사람이 죽으면 새 생명이 더욱 가득 채워져요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죽는다고 하는 거에요 예수님도 날마다 십자가 지라고 하시는 거에요 그렇게 날마다 죽으면 날마다 살아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활도 이땅에서 날마다 경험하는 거에요 부활은 예수님의 재림때 한번에 일어날 일이지만 우리가 영생을 이 땅에서 미리 살듯 부활도 매 순간 살수 있어요 매일 잠자리에 들면서 하느님 나 오늘 땟장 덮습니다 죽는 거에요 아침에 일어나면서 부활하는 것입니다 하루 하루 나는 더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로 지어져 가는 거니까 그래서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가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게 영생이에요 마지막때에 가시적으로 일어날 것이지만 우리 인생속에서 경험되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날마다 내가 죽고 날마다 내가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그 일은 우리 힘으로 되는게 아니에요 또 너무너무 힘이 들어요 왜? 내 옛 사람이 이 삶은 아닌거 같은데 라고 자꾸 날 미혹하거던요 그때 말씀이 필요한거라니깐요 그래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거에요 그래서 심지어 성경은 말씀이 너를 낳았다 라고도 이야기를 해요 말씀이 너를 낳았다는건 너한테 생명을 줬다는 뜻 아닙니까 그 말씀속에서 영생을 확인할 수 있고 영생을 살수 있다는 거에요 우리가.

그래서 말씀이 없고 도덕이나 윤리강연을 하거나 아니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소원을 이루고 잘 살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말씀은 여러분의 구원과 부활과 영생에 관한 것이여야만되요 예수와 십자가 여야만 되는 거에요 그래야 여러분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수가 되어 우리의 옛사람을 죽이는 거에요 그래서 강론을 듣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나가는 사람들이 생겨야 되는 거에요 그래야 됩니다 아파서 못들어야 되요 그리고 내가 다시 부활하는 거에요 살아나는 거에요 그게 성도의 인생이에요 근데 전부들 앉아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것만 해달라고 자기 소원 들어달라고 비전성취해달라고 그런 기도만 하고 앉아 있으니 도대체 천국에 몇명이나 들어갈까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 주위에 교회가 그게 그리스도교입니까? 천국에 몇명이나 들어갈까요 거기가서 깜짝 놀라실 것입니다 저런 못된 놈이 여기와있어 그사람은 왜 안와있지 깜짝 놀라실 거에요 선악은 우리가 판단하는 거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비밀을 배우고 가는 거라니깐요

요한복음 663절을 보세요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생명이래요 영생이에요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가 말씀이에요 여러분은 예수를 배우셔야 되요 딴거 배울려고 하지 마세요

야고보서 118절 보세요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말씀을 모르고는 영생을 몰라요 영생을 살수도 없어요

 

베드로전서 123-2523 여러분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 곧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 24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25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 계시다.” 바로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전해진 복음입니다.

우리를 낳고 생명을 주고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하는건 말씀밖에 없어요 난 다 알아요 알긴 뭘 다 알아요 성경 다 아세요? 50년 성경읽으신분 계시더라구요 그분이 그러시더라구요 내가 여태까지 600번 읽은 성경은 다 헛것이였습니다 그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딸딸 외워도 그거는 안되요 성경은 예수로 올바로 봐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결론을 내야 되는 거에요 이렇게 말씀을 통하여 영생을 살다 보면 우리 안에 성경 전체가 엑추얼라이징 실제화되어 나타납니다 아니 나타나고 있다는걸 알게 되는 거에요

왜냐면 영원이라는거 그 자체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통합이 된 그런 것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삶이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요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에 심장에 칼을 꽃는 그 일이 우리 삶 속에 나타납니다 영원을 사는 거에요

야곱처럼 얍폭강가에서 자기 전 존재를 부인당하는 얍폭강가의 씨름사건이 우리 삶에 나타나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 삶속에 나타나요 그의 수난의 삶이 우리 삶속에 나타나요 그게 모든 하느님 나라 백성들의 삶이였거든요 이 땅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님의 구속사를 사는 이들을 바로 그 사람들의 삶을 이 인생속에서 살게 되요 그걸 사람들은 고난 이라고 하지만 그건 고난이 아닌 거에요 그건 현실을 사는 사람들에게만 고난인 것입니다 날마다 이 땅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며 옛사람을 죽여가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지금 천국에는 있지도 않은 선악과라는 그 푸로베이션 기간을 살고 있는 거에요 우리가 이 세상을 살고 있는건 바로 선악과 먹는 그 삶을 살고 있는 거에요 거기에서 생명나무가 어떻게 저렇게 화염검으로 막혀 있는 생명나무가 어떻게 나에게 주어지게 되었는가를 배우고 찬양하는 자로 지어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많이 따먹으세요 그리고 주변에 열심히 선악과 따먹고 있는 사람들 있으면 지탄하고 정죄하기 전에 먼저 저 지긋지긋한 왠수의 삶속에서 어떻게 자기의 선을 이루는지 내가 보고야 말리라로 가셔야 되는 거에요 자기를 위해서 살지 하느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 몇명이나 있어요 여기에 없어요? 우리는 매일 선악과를 따먹어요

그러나 이 프로베이션은 우리가 이 시간을 떠난날 오벌 프로베이션 이즈 오벌 생명나무만 있는 새하늘과 새땅이 우리에게 약속되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어찌 기뻐 찬양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감사하세요 그리고 행복하고 기뻐하세요 우리의 일이 잘되고 소원이 들어져서 기쁜 그딴 거 말고 내 삶속에 영생이 들어와 영생이 내 삶속에서 살아지고 있구나 그것으로 기뻐하시란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꾸 옛사람을 죽여서 이세상에서 이제 완전히 죽게 되면 여러분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임모렐러티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상실했던 임모렐러티 불사성을 다시 회복하고 완전한 이터널라이프를 소유한 부활의 몸으로 완성이 되는 거에요 그걸 위해 우리들이 이 땅에서 부활과 영생을 조금씩 맛보면서 사는 거에요 불가능함을 폭로당하며 이제 바로 그 부활의 몸을 입고 영원히 영원을 살 거에요 완전한 나라 완전한 왕국 조금의 부족함도 없는 그런 곳에서 영원을 살 거에요

그 부활의 현실을 믿으십니까? 매일매일 우리가 부활하고 있지 않다면 그 부활을 믿을 수 없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의 옛 사람을 계속 죽여가고 있고 새사람으로 바꿔 가고 있어요 그들이 진짜 나는 완전히 부활하겠구나를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삶을 사는게 이 땅에서의 영생이고 그 부활한 몸에 완전한 영생, 하느님의 신적 생명이 풍성하게 부어져서 우리 모두 하느님이 누리는 모든 것을 누리며 하느님 나라(천국)에서 살거에요.

 

긴 시간 함께해주신 교형자매님들께 주님의 이름으로 감사드립니다.

부디 신앙생활의 본질이 무엇이지를 좀더 깊이 묵상하며 참 그리스도인 이시기를 기원합니다.

살롬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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