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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면전에서 하느님을 볼 수 없는 고통을 생각하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10-31 조회수1,113 추천수1 반대(0) 신고

 

 

저희 본당 작은 수녀님의 미소에 관한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이 글을 올리고 나서 어제 저녁에 자면서 다른 생각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수녀님의 미소가 너무 밝고 맑아서 제가 잘 볼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 조카 결혼식이 부산에 있었습니다. 그때 여러 친척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날 근 10년 만에 만난 작은 외삼촌 딸을 만났습니다. 저랑 동갑입니다.

 

외가 친척들 중에서 동갑이 저를 포함해서 네 명이 있습니다. 이모 두 분의 딸과 외삼촌의 딸 해서 저랑 네 명입니다. 근데 한 명은 10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났고 그때 외갓집의 딸을 보고 이번에 결혼식 때 만났습니다. 반갑게 만나 인사를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동갑이고 자주 만났기 때문에 또 잘 지냈기에 반가웠지만 왠지 그날은 많은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작은 외가댁은 외삼촌이랑 외숙모가 정말 지금은 연세가 있으셔서 그렇지만 예전에는 배우 정도의 미남 미녀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외가댁 형이나 동생 그리고 이 애 모두 배우 이상의 인물입니다. 근데 이번에 보니 어찌된 영문인지 10년 전보다 너무나도 이뻐졌습니다. 친척인데도 그냥 잘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애는 신앙은 가톨릭이 아니지만 정말 보면 애가 영혼이 수정 같다고 할 정도로 그냥 보면 맑게 보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언제 기회가 되면 제가 전교를 할 생각입니다. 왜 제가 수녀님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하면요 단순히 이런 미에 대해 언급하려고 하는 의도가 아닙니다. 미국 링컨 대통령도 한 말이지만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처럼 나이를 떠나서 자기 얼굴은 자신이 살아온 흔적이 남아있고 자신의 삶의 괘적과도 같은 것이 될 수가 있습니다.

 

수녀님과 외가댁의 이 아이도 쉽게 쳐다보지 못하는 건 비단 미모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얼굴에 나타나는 순수한 영혼이 수정 같기 때문입니다. 수정처럼 맑아서입니다. 사실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본론은 지금부터입니다. 사람도 이렇게 맑은 영혼을 가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쉽게 쳐다볼 수가 없다면 나중에 다음에 하느님과 마주 뵈어야 할 때에를 상상해보니 한편으로는 두렵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존재가 두려워서 두려운 게 아니라 제 자신의 모습이 그러니까 이 세상을 살면서 아름답게 살지 못하는 모습이 있을 텐데 그런 모습으로 살았을 때 제가 그때 가진 영혼이 제 몸속에 남아 있을 거라서 살아서 그런 걸 씻어내지 못하고 나중에 하느님을 뵙는다고 생각하니 아찔하기까지 했습니다.

 

하느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하느님의 아우라는 우리 인간이 상상할 수나 있겠습니까? 그러니 나중에는 하느님의 모습을 온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렴풋이라도 뵈려면 정말 자신의 영혼을 최대한 맑게 해야 그나마 하느님을 뵐 수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뵙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자신의 양심상 볼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 면전에서 하느님을 바라볼 수 없다면 그것도 얼마나 고통일지를 한번 생각해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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