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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11 조회수1,468 추천수1 반대(0) 신고

주제: 내 인생의 하느님 (평화 TV 신앙의 재발견 강의)

 
제 2 회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

김광엽(세례자 요한): 문화와 영성 연구소 소장
                                 문학박사.1997년 서강대 대우교수
                                 1996-2002 인천가톨릭대학원강의
                                 국제평신도공동체(clc)회원
                                                                                       
                                              
하느님은 모든 것을 나에게 선물로 내주셨다. 가족, 친구, 자연, 재산, 달란트 등등. 성경은 1,2장을 통해서 이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하느님은 왜 우리에게 이러한 선물들을 주셨을까. 하느님은 우리가 인생을 사는 동안 이 선물을 누리고 사용하면서 선물 속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기를 기대하고 계신다.
 
인생이란 떨리는 마음으로 하느님이 주신 이 선물을 풀어보는 시간이다. 모든 것 안에는 당신이 특별히 그것들을 나에게 주신 당신의 뜻이 담겨 있다. 인생의 행복은 선물 속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에 협력하며 사는 데 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가 이렇게 사는 가운데 당신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분이다
 
 첫 번째 시간에는 내 인생의 하느님이라는 전체 주제 속에서 [인생 하느님의 초대]라는 주제를 가지고 우리는 함께 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느님께서 인생을 살도록 초대하셨다는 것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왜 우리들에게 인생을 살게 하셨을까? 이 이야기를 오늘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
 
두 번째 이 시간의 주제는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인생을 살게 하신 것은 행복하게 인생을 살아가기를 하느님께서 바라시기 때문이고 그 행복을 통해서 인생의 행복을 통해서 하느님을 느끼고 만나고 그분의 뜻을 헤아려 당신께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 질문을 드리지요. 여러분들은 지금 살아가시는 데 행복하십니까? 행복하신가요? 예, 우리는 다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지요. 그런데 여러분도 아십니까? 하느님도 여러분이 행복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인간도 하느님도 다 우리가 이렇게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지요. 그런데 과연 우리는 행복한가? 아니 더 직접 말씀드리면 우리는 왜 이렇게 행복을 느끼기가 쉽지 않은가? 또는 어려운가?
 
어쩌면 수많은 철학자들이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래야 행복해진다고 많은 이야기를 그동안 해 왔지요. 그 수많은 철학자들이 또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행복론을 펼친 것은 그만큼 우리 인간들이 행복해지기 힘들어서 또는 행복이 뭔지 몰라서였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행복하기 어려운 까닭은 행복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 오해의 핵심은 바로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하다고 나도 모르게 사실은 착각하고 기대하는 것 아닐까? 조건이 마련되어야 내가 행복하다고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 아닐까 싶은 것이지요. 

그래서 그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우리는 사실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 행복의 조건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재물이지요. 어느 정도 재물이, 어느 정도 돈이 사실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다고 우리는 막연하게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도 몇 평 아파트는 우리가 살아야 우리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그래도 주말에는 외식을 한 번 할 수 있어야 행복한 거 아닌가? 최소한 일 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 있어야 그래도 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런 것들이지요.
 
또 우리들은 사회적 지위에 대한 어떤 기대들도 있지요. 말하자면 출세하는 거라고 하지요.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인 신분 상승을 꾀합니다. 사실은 사회적 신분이라는 건 그만큼 이 세상에, 이 사회에 책임을 지게 되는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회적인 신분을 갖게 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사회적 신분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그만큼 우리가 책임을 지고 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를 통해서 세상을 돌보는 것으로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 자체 지위가 '나'라는 인간을 설명하는 것이고, 그 지위가 내 '행복'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고 그렇게 믿을 때 우리는 결국 내가 기대하는 만큼의 사회적 신분을 성취하지 못하면 다 불행해지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렇게 행복하다는 것을 조건을 중심으로 이렇게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행복하다는 것이 뭘까요? 정말 이러한 조건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일까? 사실 우리는 그런 조건이 갖춰지고 난 이후에도 행복하지 않는 이유들을 너무도 많이 보게 됩니다. 신문 지상에서 요즘도 벌어지는 것들을 보면 대개 요즘 신문에는 어떤 것들이 나지요? 이런 행복의 조건을 많이 갖춘 사람들이 주로 신문에 납니다. 과연 그분들이 행복할까? 과연 우리가 믿고 있는 그 행복의 조건들이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핵심일까?
 
하느님께서는 성경의 첫 이야기, 창세기의 첫 이야기, 창세기 1장과 2장을 통해서 행복하다는 게 뭘까? 행복하게 사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이 하느님의 말씀에 따르면 행복은 오로지 선물을 알아보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이지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이미 다 주신 당신의 선물, 이미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충분한 것들을 다 주시고 계시다는 것. 이것에서부터 성경이 시작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하느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으셨습니까? 어떤 선물들을 받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선물이 있나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라는 것을. 많은 분들이 선물을 뭘 받았느냐고 이렇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물어보면 생명 또 세례 받은 것 또는 예수님 등 이런저런 것들을 구원받을 수 있는 것들을 선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것이 선물이지요. 이런 것이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선물을 드립니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든 인간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가장 크고 그리고 근원적인 선물이 뭘까?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그게 과연 무엇일까?
 
창세기는 이 이야기에서 첫 줄이 쓰인 것이지요. 창세기 1장 1절에 "하느님께서 한 처음에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이렇게 성경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 그 당시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그 하늘과 땅은 뭘 말하는 것일까?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모든 것을. 당시의 히브리 문화권에 살던 사람들에게 하늘과 땅이라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이 세상'입니다. 그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 가셨는가를 이렇게 하나하나 쓰고 있지요. 무슨 얘길까?
 
창세기 1장은 이 세상의 기원을 쓰고 있는 것인데 이 세상이 어떻게 시작된 걸까?  그 기원을 쓰고 있는 것인데 결국 그렇게 하느님께서 하나하나 만들어 가신 세상 모든 것이 인간에게 다 주시는 이야기로 드러나지요. 하느님은 왜 이 세상을 만드신 것일까?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 바로 우리 인간들에게 선물로 내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지요. 창세기 1장은 그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 인간과 상관없이 하느님이 만드신 것이다." 그렇게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셔서 우리 인간들에게 아낌없이 내 주시는 이야기가 창세기 1장입니다.
 
이 세상이 바로 우리가 받은 가장 크고 근원적인 선물인 것이지요. 뒤에 2장을 이야기하겠지만 아담에게 돌보고 다스리게 하시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은 인간에게 주시기 위해서 정성스럽게 하느님께서 선물을 준비하시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분들이 첫날, 이튿날, 사흗날... 이것을 여러분들도 헷갈리시지요. 이 순서를 기억하느라고요. 그러나 그 순서가 중요하다기 보다 하느님이 얼마나 정성스레 만드시는가를. 우리 인간들이 이 선물을 누리고 살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정성스레 만드시는 가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우리들에게 창조하셔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가 선물이 아닌 것이 없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인생은 하느님의 초대이고 이 세상은 마음껏 우리들에게 누리고 살도록 주신 선물이라는 것이지요. 모든 것이 선물입니다. 그런데 그 선물 중에 우리들이 특히 가까이 받은 선물이 있지요. 가까이 받은 선물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이라는 선물을 대가를 치르지 않고 다 받았는데 그중에 우리가 받은 선물 중에 가장 소중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가까이 있는 것들이지요. 무엇보다도 우리 가족입니다. 가족이 바로 하느님의 선물이지요. 여기는 자매님들이 주로 계시니까 무엇보다도 자매님들에게 자매님들의 형제님 남편이 선물인 것이지요. 아내가 남편이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자꾸 살다 보면 내 것이라고 행동하는데 창조의 정신 안에서 살펴보면 내 남편 내 아내가 하느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건 뭔가? 이렇게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누리게 되는 사람들이 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인 것이지요. 우리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말할 것도 없죠. 아이들이 바로 하느님의 선물이죠. 우리의 부모님들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평생 함께하는 친구들 하느님의 선물이고요. 내가 함께 살아가는 그 지역의 이웃들이 하느님께서 특별히 이웃해서 살라고 짝지어 주신 하느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동네 슈퍼마켓 아줌마나 세탁소 아저씨가 하느님의 선물인 거예요. 본당 교우들 말할 것도 없지요. 본당 신부님, 수녀님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또 내가 받은 달란트 특별히 하느님께서 이런 달란트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하물며 이 아름다운 자연은 말할 것도 없지요. 예!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공기, 하늘, 산, 바다, 흐르는 강, 푸르른 벌판 어느 것 하나 하느님의 선물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산다는 것은 이 선물을 받아안고 살아가는 것이에요.

산다는 것은 선물을 누린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나 그리고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선물이고 인간이 서로 서로에게 선물인 것이지요.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먼저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생을 살면서 이 모든 것들이 내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을 넘어선 어떤 초월적인 힘 우리는 그분을 야훼 하느님이라고 고백하지요. 그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다 창조하셔서 우리들에게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살아가는 것을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그다음에 당연히 떠오르는 질문이 있는 것이지요. 왜 나에게 이런 선물을 주셨을까? 왜 주셨을까? 사람 사이에도 선물을 주고받을 때 우리가 사실은 누구에게 선물을 준다는 것은 차마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내 마음을 그 선물에 담아서 전하는 것이지요. 그게 사실은 선물의 참된 뜻이지요. 선물을 받는 사람은 그 포장을 풀어 보면서 저 사람이 이 선물을 통해서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를 알아들으려고 하는 것이 그게 선물을 사이에 두고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깊은 내면의 소통이 일어나는 거지요.
 
인간 사이에서도 이런데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선물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이런 선물을 주신 데는 하느님의 뜻이 있을 거라는 것입니다. 모든 선물에는 하느님의 뜻이 있다. 선물에는 하느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많은 선물들을 누리고 사는데 인생을 살면서 내가 누리는 선물들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우리가 헤아리지 못하고 살아가지 못할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선물이 내 것인 줄로 알고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을 해서 삽니다. 하필이면  많은 남자 여자 중에 이 사람을 왜 나의 배필로 삼았을까? 우리가 부부로 산다는 것은 이것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좋아서 사셨지요? 그러나 살다 보면 그저 좋지만은 않으시지요? 예! 아마도 그때부터 이런 질문이 시작되겠죠. 왜 이 사람과 함께 살게 하셨을까? 하느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왜 이 사람을 나에게 배필로 삼아 주셨을까? 왜 나에게 선물로 주셨을까?
 
수많은 아이들 중에 하필이면 이 아이들을 우리 부부에게 선물로 주셨을까? 왜 이런 성격과 이런 달란트와 또 이런 자기 나름대로의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는. 왜? 왜? 이 아이를 우리들에게 선물로 주셨을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그 아이를 키우면서 이것을 알아 가는 과정인 것이지요. 수많은 달란트 중에 하필이면 하느님은 나에게 이런 달란트를 갖고 살도록 하셨을까? 무슨 뜻이 있으신 걸까? 또 하느님께서는 이런 직업을 갖고 살게 하시는 걸까? 나에게 하느님께서는 이만큼의 재산을 허락하신 걸까?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알아가야 될 것입니다.
 
왜 이런 선물을 주셨을까? 왜?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는 하느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그 존재하는 것들을 창조하신 목적이지요. 하느님께서는 목적 없이 창조하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름 없는 풀 정말 아무런 의미 없는 것 같은 그 작은 것까지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고유한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들은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이 모든 것들이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 이것을 깨닫고 나서 그렇다면 왜 나에게 이 선물을 주셨는가? 그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 우리들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인생의 행복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우리 인생은 얼마나 큰 아파트에 살고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고, 얼마나 우리 아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얼마나 우리 아이들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이것이 행복의 척도가 아니고, 인간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내 인생이 하느님께서 살도록 초대 하셨다는 것 그리고 그 인생을 사는 동안 내가 누리고 사는 이 많은 것들이 사실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이것을 깨닫고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인 것이고 그리고 그 선물
속에 담겨있는 뜻을 헤아리면서 그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 남편 내 아내를 주신 뜻이 뭘까를 내가 헤아려 깨달아서 그 하느님이 선물로 주신 뜻에 협력하면서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은 가장 행복한 삶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1장에서 이렇게 우리 모두에게, 인간에게 다 선물로 내주기 위해서 이 세상을 만드신 이야기로 시작을 해서 그다음 그 모든 것을 선물로 받는 인간을 만드신 이야기가 그다음에 나옵니다.
 
다 잘 아시다시피 창세기 2장 5절에서 6절은 인간을 창조하시는 하느님, 물론 1장에서 먼저 나오는데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는 2,5-6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하늘과 땅을 다 만들었는데 아직 이 땅에는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그리고 누가 없다고 그러고 아담을 만드시는가? 공동 번역에는 '땅을 갈 사람이 없었다.'라고 하고, 새 번역 성경에는 '흙을 일굴 사람이 없었다.'이러고 아담을 만드십니다. 여기에 우리 인간을 왜 만드셨냐가 다 나오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모든 피조물들이 다 주님이 창조하신 목적이 있는데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이 성경에 근거해서 볼 때 우리 모두 창조된 목적은 땅을 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흙을 일구게 하기 위해서인 것이지요. 이 땅, 이 흙이 뭘까? 우리 보고 농사 다 지어야 된다. 그걸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그 땅 그 흙이 바로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세상을 돌보고 갈, 세상을 갈고 일굴 그렇게 할 목적으로 우리 인간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간 창조의 목적이 명확해지지요? 세상을 돌보는 것이지요. 

세상을 돌보는 것이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창세기 1장은 세상 창조의 목적을 쓰고 계십니다. 우리 인간들에게 다 선물하시면서 그 선물 속에는 하느님의 뜻이 다 있어요. 그 선물을 받아안는 인간들에게는 어떤 창조의 목적이 있나? 세상을 돌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연결하면 어떻게 되지요?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선물을 받아안고 살다가, 선물을 누리면서 살다가, 선물을 올바로 누리게 되면 선물 속에 담겨 있는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모든 존재하는 것들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서 그 뜻에 협력하고 사는 것이 세상을 돌보는 것입니다.
 
저 나무 한 그루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헤아릴 때, 저 나무를 누리면서도 돌볼 줄 안다는 것입니다. 내 남편 내 아내가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깨달을 때, 우리는 내 입장에서 저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으로 저 사람을 보려고 애쓰고, 저 사람을 나에게 짝지어 주신 하느님의 뜻이 뭘까를 알아 가려고 애쓰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내 뜻이 아니라 당신 뜻에 합당하게 내가 저 사람과 관계 맺으려고 애써 가는 게 저 사람을 돌보면서 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혹자는 창세기 1장에서 인간을 만드실 때 1장에서는 이 세상을 다스리게 하자고 만드시는 걸로 쓰고 있어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 다스림이라는 말이 인간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말로 오해하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고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맘대로 해도 되는 것처럼. 그러나 1장에서의 세상을 다스리는 그 인간 창조의 목적, 다스림의 본질은 2장에 가서야 분명해집니다. 다스림이라는 것은 세상을 돌보는 것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우리는 창세기 2장 6절에 나오는 그 표현이 뭔가를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에는 다른 피조물들처럼 흙만 빚어 만드신 게 아니고 흙을 빚어 숨을 불어 넣어 주셨다는 것이지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땅의 존재만이 아니라 하늘의 존재 땅의 존재, 흙과 하느님의 숨이 만나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창조됐다는 것이지요.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 중에 땅에 의해서만 만들어지지 않은 생명, 그 숨, 그 생명을 나눠 받아서 만들어진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인간의 존엄함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존엄함이라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것은 뭘 말하나?  인간에게 이렇게 당신의 생명을 주셨다는 것은 뭘 말하나? 바로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지요? 그런데 그 창조하신 세상을 인간에게 선물로 주고 돌보게 하십니다. 그럼 우리 인간들이 이 세상을 올바로 돌보려면 누구를 닮아야만 돌볼 수 있는 거지요? 하느님의 마음을 닮아야지만 이 세상을 온전히 돌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스림이라는 것은 돌봄을 통해서만 다스림의 의미가 분명해지는 것이지요.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그 하느님의 마음을 닮아야 온전히 돌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숨을 불어 넣어 주신 것이지요. 인간이 특별히 창조되었다는 것은 막 살아도 된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렇게 이 세상을 마음껏 누리도록 하시고, 이제 이 세상을 돌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것이지요. 그걸 다른 말로 표현하면 모든 것을 선물로 주신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하느님께서 이렇게 기대하시는 것이지요. "내가 너희들에게 모든 것을 선물로 주었듯이 너희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이 되어 주어라."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게 창조에 담긴 뜻입니다.

  

너희가 이 많은 것들을 받고 살아가듯이 너희가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이 되어 주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천 년 전에 예수님이 오셔서 이 얘기를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표현하신 것이지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의 복음의 정신과 창조에 담긴 하느님의 섭리는 서로 다른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창세기 2장은 인간 창조의 목적을 쓰고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때 가장 행복한가? 인간의 창조 목적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인간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들을

마음껏 누리면서 나도 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이 되어 주면서 살아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창조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이것을 전해주고 계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창세기 2장은 이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후반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뭐냐 하면 아담에게 하와를 짝지어 주시는 이야기입니다. 궁금하시지요? 왜 내가 저 사람하고 계속 살아야 하는지 궁금하시지요? 창조의 이야기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같이 사는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게 도대체 뭘까요?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시는 이야기를 쓰시고 창조의 목적을 쓰시고는 뒤이어 혼인에 대해서 쓰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혼인의 목적이 뭔가를 분명히 드러내고 계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해합니다.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만들었다 하니까 아담이 외로워해서 아담이 외로워하지 않게 하려고 하와를 만들어서 짝지워 주셔서 외로움을 채워 주시려고 이랬다. 이렇게 혹시 이해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것은 하느님의 뜻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자매님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분개하셔야 하지요? 여성들은 남성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지요. 여성도 똑같이 누구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지요? 하느님 또는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이 창세기의 후반부를 어떻게 이해하는 가가 중요한 것이지요? 창세기 2장은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와를 만드신 것은 뭐라고 그러고 만드시냐 하면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않으니 함께 서로 협력할 짝을 만들어 주리라."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공동 번역에서는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않으니 그의 일을 거들 짝을 만들어 주리라."

 

아담의 일이 뭐였지요? 에덴을 돌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뭔가? 세상을 돌보는 일을 하는 아담을 하와를 만들어 주셔서 함께 협력해서 세상을 돌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외로워해서가 아닌 것이지요. 함께 협력해서 세상을 돌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앞부분의 이야기가 분명해지지요?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이제 이 표현은 뭔가? 아담이 이 세상을 혼자 돌보기에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서로 협력해서 세상을 돌보게 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이렇게 세상을 돌보는데 하느님께서 주신 이 모든 것을 누리면서도 또한 그 누리다 보면 소중해지니까 잘 돌보아 가는데 혼자 힘으로는 힘드니까 함께 힘을 모아서 돌보라는 이 하느님의 섭리가 함께 부부로서 살아가게 하시는 것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가정만이 아니라 교회를 이뤄가는데도 똑같은 것이지요. 인간은 약한 존재인 것입니다. 인간은 절대 혼자 힘으로는 하느님을 찾아가기가 힘든 존재입니다. 혼자 힘으로는 세상을 돌보기 힘든 존재입니다. 인간은 협력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것을 잘 모르고 지기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니까 행복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함께 살게 하셨던 것은 바로 함께 힘을 모아서 돌보라는 얘기지요. 이게 바로 혼인의 목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살게 되어있지요. 믿지 않는 사람들도 섭리 속에서 함께 삽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가정부터 돌보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돌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이 가정을 돌보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명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되지요. 오랫동안 우리는 이것을 모르고 살았지요? 가정을 꾸려 간다는 것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역사에서 하느님의 사명은 그것이 아니라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교회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정이 중요하고 가정이 바로 평신도 사도직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 교회가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가정이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기신 사명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이지요. 무엇보다도 가장이 이 가정을 위해서 경제 활동을 하는 것, 직장에 다니거나 자기 사업을 해서 돈을 벌거나 이것이 어쩔 수 없이 내 가정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하는 내 일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이 생명들을 돌보라고 하시는 그 사명을 내가 수행하기 위해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자기 일을 통해서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살아가는 사회적 행위가 하느님 안에서 무슨 뜻인가를 알고 해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살림하는 주부들도 똑같습니다. 살림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내가 감당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하느님께서 생명을 돌보라고 하신 이 가정을 내가 돌봐 가는데 그 하느님이 맡기신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일에 협력하는 것입니다. 

 

이 말에 우리 말이 아주 좋은 말이 있지요? 자매님들에게 뭐 하십니까? 이렇게 물으면 자매님들이 "살림해요!" 이렇게 얘기를 하지요? 요 얘기 할 때 좀 당당하게 하셔야 되는데 괜히 쑥스러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말로 살림이라는 말 너무 좋은 말이에요. 우리나라는 선조들의 덕에 사는 나라 같습니다. 선조들이 이걸 살림한다고 얘기했어요. 자매님들이 주부로 사실 때에 뭐 하시는 거지요? 생명을 살리는 일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지요. 살림 한다는 게 그 말입니다. 우리 말 얼마나 좋습니까? 영성적이에요. 살림합니다. 주부로 사시는 것이 어쩔 수 없어서 사는 게 아니지요. 이를 악물고 견뎌내는 것이 아니고 가정을 돌보고 살림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맡기신 하느님의 사명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엇이 행복한 삶일까? 내가 지금 청소하고 빨래하는 것, 이거 언제까지 해야 되나? 이러고 불만을 터뜨리고 사는 삶이 행복할까? 아니면 내가 설거지를 할 때, 내가 방 청소를 할 때 힘들지요? 그 힘든 순간에도 하느님께서 그 힘들어하는 내 손을 어루만져 주면서 제 이름을 부르시면서 "힘들지 고맙다!" 이렇게 나에게 말씀하시는 그 하느님의 말씀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과 어떻게 살아가는 게 과연 행복할까?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행복할 수 있는 것을 다 주셨습니다. 창세기는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선물이고 이미 행복할 수 있는 충분한 상황 속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이지요. 창조는 그래서 오직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만 창조가 이해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정성스레 만드셔서 아낌없이 다 내 주신 것이 사랑이에요.  온 세상이, 온 세상 모든 것이 하느님의 사랑의 증거인 것이지요.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만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사랑의 증거라는 것!

 

인간은 이 사랑 모든 것이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안에서 살아갈 때만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지요. 그것을 알아보는 이들의 행복! 그 사람들은 곧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은 떨리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선물을 풀어 보는 시간입니다. 풀어도 풀어도 끝없는 선물을 저희가 받고 있지요. 그 선물은 풀어 보는 것이 정말 축복이고 행복인 것입니다.

 

모든 것들 안에는 그런 것들을 나에게 선물로 주신 하느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인생은 살아가면서 그 선물 속에 담겨 있는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면서 그 뜻에 내가 협력할 수 있는 한 협력해 가면서 살아가는데 우리 인간들의 행복의 본질이 있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우리 인간들에게 인생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사는 가운데 하느님을 발견하고 그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래서 그 하느님의 뜻에 협력해 가면서 당신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분입니다.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 이 내 인생의 하느님을 여러분들께서 진심으로 여러분들의 인생에서 만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https://cafe.naver.com/withbiblestudy '성경과 함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성경과함께,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 내 인생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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