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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누면 줄어드는게 아니라 오히려 늘어난다 [사랑의 신비]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07 조회수680 추천수2 반대(0) 신고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모두 그분을 보고 겁에 질렸던 것이다. ...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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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사람은 빵의 기적으로 믿음의 힘을 가지지 못한다.
하느님의 기적으로 빵의 문제 곧 배고픔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믿음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지도 모른다.
영혼은 곤궁한 처지에서 더욱 믿음의 은총이 커지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빵의 문제를 간과하고자 하는 뜻은 아니다.
빵의 문제인 육신의 문제를 멸시한다고 하여 영혼의 감사와 찬미가 더 높이 들여지는 것은 아닌게다.
 
오늘날의 시대는 인간의 욕망을 가득히 채울 만큼이나 온갖 물질들이 풍족하다.
상대적으로 그러한 풍족한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도
우리들 눈에는 보이지 않게 사회 구석구석에서 여러 모양으로 살아가고 있다.
 
인간이 창출해 낸 물질들이 과거하고는 달리 풍성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근본적인 행복은 도리어 충만하게 누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물론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러한 결과를 초래케 하는 제도적인 모순도 그 원인이 된다.
하지만 제도적인 모순 보다는 그 제도를 만드는 사람 그 자체의 문제가 더 근본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
 
사회 경제적인 모순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측면에서는
인간 그 자신 자체에서 그러한 원인을 찾아 보려는 것을 다소 못 마땅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들은 제도적인 모순의 진실을 숨기고자 하는 것이다고 언제나 주장하기 때문이다.
 
지금 빵을 배불리 먹고 있는 사람들은 분명 풍족한 물질의 생산 덕택으로 이를 누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이들에 비하면 빵마저도 충분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있다.
 
왜, 인간이 산출해 내는 물질은 풍족하면서도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물질이 풍성하다면 틀림없이 인간들은 모두 다함께 물질의 충만함을 가져야 하는 일이다.
 
빵의 기적은 일어났다.
그러나 인간은 도리어 상대적으로 빈곤해 가기만 한다.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ㅡ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자신의 배가 부르면 더 많은 여러가지 욕구를 갈망하게 되어 지는게 사람의 끝없는 탐욕이다.
배가 부른 사람은 남는 재화로 사회의 다른 이들에게 돌려주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끝없는 탐심 때문이다.
 
세상의 온갖 문화적인 혜택을 누리면서 더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애쓴다.
자신이 탐욕의 절제를 통해서 자기 보다 못한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 없이
사회의 제도적인 모순을 바꾸고자 노력하려는 인간들은 나타나지 못한다.
언제나 상호 대결 구도로서만 점점 깊이 뿌리 내려져 가는 것이다.
 
"빵의 기적"은 무엇인가 ?
 
단순하게 '하느님의 기적'으로만 그리고 '그분의 신성'으로서만 자리매김해서는 안 된다.
빵의 기적은 하느님 당신 자신을 인간 앞에서 엄위롭게 보이고자만 하신 그런 하느님의 뜻은 아니다.
 
물론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
인간의 배고픔을 인간과 함께 느끼시는 인간의 마음을 지닌 체 
당신의 위격 안에서 전능하신 사랑을 완전하게 드러내신 것이다.
 
물질의 풍족함이 인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가르침이 아니다.
인간은 오히려 배가 부르면 끝없는 숨은 탐욕으로 인해 그 마음이 더욱 완고해 지기도 한다.
 
하느님의 빵의 기적은 측은지심을 가지시는 우리와 같으신 인간이신 분께서
우리 인간의 문제로 바로 연결되도록 가르쳐 주시는 사랑의 계시인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사랑으로 내어 놓게 하신 것이다.
바구니 속에서 빵이 저절로 생겨나는 요술을 부리신게 아니시다.
 
인간의 문제,
즉, <인간이 지닌 빵>을 하느님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 내어 놓게 하심으로써
하느님의 기적을 그렇게 나타내어 보이신 것이다.
 
자기의 빵을 거저 내어 놓는 그런 사랑의 마음이
진정 인간 모순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신 것이다.
 
빵을 기꺼이 내어 주는 사람에게는
빵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영혼은 충만해 지고 빵이 더욱 풍성하게 늘어만 간 것이다.
 
빵을 내어 준 사람의 손에는 빵이 사라지는게 아니다.
나눔으로 빵은 신비롭게도 사람들 공동체 사이에서 더욱 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께서 백성들 사이를 거니시기 때문이다)
 
빵을 건네받은 빈 손에서는 넘겨진 빵을 자신이 먹고서도
빵을 다시 남에게 기꺼이 내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새롭게 넘쳐나고 있었다.
 
나눔은 줄어드는게 아니라
도리어 풍성해 지는 하느님의 신비인 것이다.
 
먼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하신
예수님의 사랑의 말씀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다.
 
"너희가" 곧,
인간 스스로가 거저 기꺼이 내어 놓지 못하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행복해 질 수 없는 사실이다.
 
인간이 하늘을 바라보면서 인간 스스로 자신들의 노력(실행)은 하지도 않고
청하기만 한다고 해서 하늘에서 기적과 같이 빵이 내려지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오늘 이 시대에서도 그리스도를 유령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그분께서는 인간이시다.
따라서 인간 자신의 문제를 향해 인간 내적으로 철저하게 짚어 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오병이어 때처럼 백성들 사이를 거닐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시고 계시는 것이다.
 
이 하느님의 신비는
오늘날 이 시대에서는 무엇보다 인간 자체에게 틀림없이 주어져 있다고 하겠다. (사랑의 계명)
 
인간이신 예수님의 기적은
인간의 현실(인간을 통해서 서로 나누는 사실적인 일)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자신의 손에서 내어 준다고 빵이 줄어든다고 결코 두려워 할게 없다.
 
우리 사이를 거닐고 계신 그리스도의 신비
빵을 인간 자신의 손에서 내어 놓게 하심(나눔)으로써
인간 자체를 사랑의 신비로 변화시켜 더욱 새로운 충만함을 누리게 하시는 것이다.
 
그런 '사랑의 인간'이 사회에 많이 나타날때
인간의 사회는 비로소 서로 행복해 지게 되는 것이다.
 
 
  
  

 
 
 
 "슬픔을 당해도 늘 기뻐하고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
 
"나는 그들 가운데서 살며 그들 사이를 거닐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2고린토서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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