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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용서의 열매 - 주상배 안드레아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09 조회수990 추천수14 반대(0) 신고
 

                              용서의 열매


 

     그러니까 30여 년 전,


     군종 신부 퇴직금으로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던

     승용차를 샀다. 어느 부인이 타던 꽃자주색

     중고 포니Ⅱ였다. 참으로 예뻤다.


     차를 타고 달려보고 싶었지만 오라는 데도

     별로 없고 대부분 교우 분들이 자기 차를 태워 줘 

     내차는 세워두는 날이 거의 많았다.


     그래도 매일 아침저녁 일구월심

     차를 열심히 닦았다.


     새벽미사 지내러 가다보면 차가 마치

     예쁜 공주님처럼 주인님 "안녕" 하고 인사하는 것

     같았고 나도 멋쟁이 기사가 된 듯 뿌듯한 느낌이었다.


     그런가 하면 동네 꼬마들이 흠집을 내면 어떻게 하나

     불안해 틈만 나면 자주 밖을 내다보곤 했다.


     솔직히

     하느님 보다 차를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았고 길었다.

     아니 생각이 아니고 차라리 사랑이었다.


     미안함이 솟구쳐 올라왔지만 억누르며 일부러 모른 척 했다.

     자꾸 그러다 보니 나중엔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갔다.


     바람나면 자식 부모도 몰라본다는데 이래서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신부님으로부터 용서에 대한 강론을 부탁 받았다.

     부담스럽고 찜찜했지만 화려한 외출이 반가워 얼른 승낙 했다.

     선보러 가는 총각처럼 설렜다.


     나는 마치 용서 잘해주는 챔피언이나 되듯이

     열변을 토하며 강론했고 박수의 열기에 젖어 흐뭇해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빨간 신호등에 차를 세웠다.

     흘러나오는 흥겨운 유머레스크 피아노 음률에

     손가락으로 장단을 맞춰가며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쾅"하는 굉음과 함께

     차가 앞으로 움찔거렸다.


     가던 사람들이 멈춰서 내 쪽을 바라보고들 있었고

     순경 아저씨가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황급히 이쪽으로

     달려오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뒤를 보니 역시 택시기사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차에서 내려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크, 이거 큰일 났구먼!

     아니, 목소리 큰사람이 이긴다는데 이를 어쩐 담…

     (당시는 보험이라는 게 시원치 않았지 아마?)


     나도 모르게 어느새 로만 칼라를 가리고 있었던 걸 보면

     곧 한판 붙게 될지도 모를 전투에서 교회와 사제직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그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왜 전투부터 할 생각을 하니?

     로만 칼라를 가릴 일을 하지 마라.

     자랑스럽게 드러낼 일을 해야지.


     너, 방금 용서의 거룩함에 대해 열변을 토하지 않았느냐?

     아직도 따끈따끈한데…


     그리고 얼마 전 가정방문 때 일을 벌써 잊었느냐?


     새벽까지 일하고 단칸 셋방에서 곤히 자고 있는 택시기사

     아빠 때문에 방에 들어가질 못하고 아이를 업고 서성거리던

     며느리와 시어머님을 밖에서 축복해주고 돌아서던 일말이야…


     선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난 그제야 제 정신이 들었다.

     아니,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나, 원 참…


     나는 골을 넣은 브라질 축구선수처럼 성호를 긋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교통순경 아저씨에게 애원했다.

     " 제발 없었던 일로 해 주세요 " 라고.


     그리고 기사 아저씨에겐 이렇게 말했다.


     " 아저씨, 없었던 일로 해 드릴테니 아저씨도

     누군가를 용서할 일이 생겼을 때 오늘 일을

     생각하면서 한번만 용서해 주실 수 있겠지요? "


     꼭 그렇게 하시겠노라고 하면서 고맙다며 연신 허리를 굽혀

     절하는 기사 아저씨를 뒤로하고 그 자리를 떴다.


     차는 비록 우그러졌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아니 상쾌했다.


     그 후 이상하게도 차에 대한 걱정과 애착에서 오히려

     자유로워져 마음이 아주 평온해졌다.


     열정과 애착이 다시 하느님께로 향하며 자리 매김 해갔다.


     그런 일로 정신 차리게 해주신걸 보면

     하느님께서 그동안 샘이 무척  나셨던가 보다.^^*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지내던 어느 날

     나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때 신부님의 용서를 받은 OOO 입니다.

     통신교리를 끝내고 예비신자 종합 반에서 세례준비하고

     있습니다."


     나는 편지에 입을 맞추며


     "오, 하느님,

     이번에도 악에서 선을 맺어 주셨으니 감사드립니다."

     라고 했다.


     그러자 주님께서도

     " 응, 내가 농부처럼 그런 열매를 맺게 하는 기쁨을 준 너에게도

     고마워하고 있단다." 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교우 여러분 사랑해요!

     아무쪼록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주상배 안드레아 광장동 주임 신부)


 

Golden Autumn2 - Autumn Slu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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