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가까이 들어온 하느님 나라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05 조회수656 추천수9 반대(0) 신고
 
 

가까이 들어온 하느님 나라 - 윤경재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그리고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마태 4,12-25)

 

 작년에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지금은 폐허가 된 카파르나움은 갈리래아 호수 북서쪽에 자리 잡은 마을로 회당(시나고그)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집터가 회당 가까이에 발굴되어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집터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탄생된 유서가 깊이 서린 곳으로 정확한 위치 고증과 보존상태가 양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머무셨던 방 위에 일찍부터 경당이 세워졌고 지금은 현대식 성당이 세워져 집터 전부를 지붕처럼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카파르나움은 시리아를 거쳐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 연결되는 기간도로가 시작되는 곳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고속 터미널이라고 하겠습니다. 당시 지도를 보면 큰 여관이 자리 잡았으며 세관 터, 돌로 된 올리브유 수확틀을 만드는 공장, 갈리래아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 가공창고 등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 받으시고 당신도 예루살렘 근처 요르단 강가에서 침례운동을 주도 했었습니다. 요한보다 예수께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요한 4,1). 그러다가 세례자 요한이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잡히자 구약의 시대가 끝나간다는 판단을 내리셨습니다. 혹시나 했던 심정이 여지없이 무너진 것입니다. 그래서 활동 장소를 터미널 근처로 옮겼습니다. 그곳은 소식이 빨리 전파되고 사람들 생각이 개방된 곳입니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적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는 이런 곳을 이방인의 땅이라고 폄하하여 불렀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새로운 출발선에 서셨습니다. 그 첫 외침이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입니다. 그러면서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하늘나라가 들어온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병들고 가난하여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셨습니다. 그들은 병들고 가난한 것도 억울한데 그것이 죄를 지어 벌 받는 것이라고 손가락질 당하였습니다. 이중으로 소외당한 것입니다. 혹시나 지금 우리 잠재의식 안에도 이런 허무맹랑한 의식이 없는지 살펴야합니다. 노숙자와 걸인, 무직자들을 보면서 그들이 게으르고 무능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치부한다면 또 다른 바리사이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유사이래 병든 자, 심신 장애우, 고아, 과부, 실직자, 가난한 자 등이 없었던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참 좋았다고 하신 하느님께서 이렇게 불완전한 모습을 지어내셨다면 분명히 무슨 까닭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실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실수라는 말도 어리석은 인간의 입장일 뿐이겠죠.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차이가 나는 분들이 있다는 말은 누구라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나라서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어려움을 겪는 그런 분들이 내 대신 고통을 겪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불행과 행운의 차이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닥쳐올 위험의 가능성을 그들이 몽땅 걸머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로 인간 모두가 책임지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하늘나라가 도래했다고 선포하시면서 보여주신 첫 행동이 바로 나눔입니다.

  요한복음서 9장에서 태생소경이 존재하는 까닭을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깜짝 놀랄 만하게 답하십니다. 그의 고통이 누구의 탓도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언뜻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하느님께서 일부러 소경으로 태어나도록 만드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를 구원하는 모습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구현을 맛보라는 말씀입니다. 또 그 고통을 당하는 당사자도 누구에게 원망하거나 자기 탓을 할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하느님의 뜻이 구현된다는 영광을 깨달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만방에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역설적인 가르침입니다. 죽어야 산다는 말씀의 본보기입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의 성령을 부어주시고 그 성령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가 구현되는 것을 맛보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하느님 나라가 우리 가까이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그 몫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