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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허무란 무엇인가? -허무에 대한 예방과 처방, 치유- 9.27, 목.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27 조회수486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2.9.27 목요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1581-1660) 기념일

 

코헬렛1,2-11 루카9,7-9

 

 

 



허무란 무엇인가?

 

-허무에 대한 예방과 처방, 치유-

 

 

 

 

 



저는 수도원 주일 미사 전에는 미사 준비에 몰두하느라

좀처럼 면담성사를 주지 않습니다만

어느 자매의 절실한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편이 저에게 ‘당신은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말했어요.”

 


오랜 동안 냉담하다 남편의 이 말에 충격을 받은 자매는

가족과 함께 수도원에 와서

우선 고백성사로 냉담을 풀고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영혼이 없는 사람’

‘중심이 없는 사람’

‘생각이 없는 사람’ 다 일맥상통하는 지칭입니다.


하느님을 잊고 욕망 따라 허무하게 살다보면

저절로 자기를 잃어 이렇게 되어버리고 맙니다.

 


오늘은 ‘허무’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인생무상의 허무에 상처 받은 많은 이들이

위로 받고 치유 받고자 끊임없이 수도원을 찾습니다.

 



허무는 부정할 수 없는 인간현실입니다.

허무해서 사람입니다.

나이 들어 죽음이 가까워 갈수록

서서히 어둠처럼 스며드는 허무의식이요 허무감입니다.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온갖 말로 애써 말하지만, 아무도 다 말하지 못한다.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못한다.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종파를 초월해 믿는 이건 믿지 않는 이건 구구절절

마음 서늘케 하는 공감이 가는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말씀들입니다.

 


마치 허무가 인생 결론 같이 보입니다.

아닙니다.

허무는 결론이 아니라 물음입니다.


환상이 깨끗이 걷힌 허무는 하느님을 찾으라는 표지입니다.

허무에 대한 유일한 처방의 답은 하느님뿐입니다.

 


허무를 그대로 방치할 때 영혼의 암이 되어버립니다.

믿음, 희망, 사랑은 허무의 암에 잠식되어 사라지고

그 남은 자리엔 무의미, 무절제, 무기력, 무감각의 어둠만 남을 것입니다.


태양 사라진 밤의 어둠처럼

하느님 사라진 그 자리에 어김없이 자리 잡는 허무의 어둠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불안해하는 헤로데 영주의 내면이

바로 그러합니다.

허무의 어둠 속에 분별력을 잃어 저지른 죄악이요

양심의 가책에 안절부절 중심을 잡지 못하는 헤로데입니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 했다 합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가?’

헤로데에겐 화두 같은 이 물음이 바로 허무에 대한 답입니다.


주 예수님을 만날 때 걷히는 허무의 어둠이요 참 나의 발견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화답송 시편도 허무에 대한 답은 하느님뿐임을 선포합니다.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천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사옵니다.”

 


“주님, 언제까지리이까?

  당신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 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하여 깨닫는 바는

평생 매일 끊임없이 하느님께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시편 성무일도와 미사의 공동전례기도보다

허무의 예방과 처방, 치유에 좋은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허무의 어둠이 스며들 여지가 없습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자 동시에 허무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수확의 기쁨도 잠시 동안이고 이어 낙엽과 더불어

인생무상의 고독과 외로움, 쓸쓸함이 마음을 적시기 마련입니다.

 


이래서 기도입니다.

허무의 계절이자 동시에 기도의 계절인 가을입니다.

기도와 더불어 하느님은 허무한 인생을 충만한 인생으로,

고해인생을 축제인생으로 바꿔주십니다.


하여 교회의 전례주년이 고맙습니다.

기도로 허무의 어둠을 몰아내라고

9월 순교자 성월에 이은 10월 묵주기도성월이요

11월 위령성월이요 12월 대림시기입니다.

 


묵상하다보니

수도원 설립 25주년 기념감사제 중 낭송했던 저의 자작시

‘하루하루 이렇게 살았습니다.’ 가

허무에 대한 참 좋은 예방과 처방, 치유가 됨을 깨닫습니다.


하루하루 이렇게 살 때 충만한 삶이요 허무가 스며들 여지도 전혀 없습니다.


하여 길다싶지만 다시 나누고 싶어 인용합니다.

 

 

 

 

 



하루하루 이렇게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하늘 향한 나무처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덥든 춥든,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하느님 불러 주신 이 자리에서

 

하느님만 찾으며 정주(定住)의 나무 되어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살다보니 1년생 작은 나무가

 

이제는 25년 울창한 아름드리 하느님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언제나 그 자리에 불암산(佛巖山) 되어

 

가슴 활짝 열고 모두를 맞이하며 살았습니다.

 

있음 자체만으로

 

넉넉하고 편안한 산의 품으로

 

바라보고 지켜보는 사랑만으로 행복한 산 되어 살았습니다.

 

이제 25년 연륜과 더불어 내적으로는 장대(長大)한

 

하느님의 살아있는 산맥(山脈)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江)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緩慢)하게 또 격류(激流)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하느님의 강(江)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활짝 열린 앞문, 뒷문이 되어 살았습니다.

 

앞문은 세상에 활짝 열려 있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歡待)하여 영혼의 쉼터가 되었고

 

뒷문은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

 

하느님과 깊은 친교(親交)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기도하고 일하며 살았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세상을 위해 기도하며

 

끊임없이 일하면서 하느님의 일꾼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주님의 집인 수도원에서

 

모두 주님의 전사(戰士)로, 주님의 학인(學人)으로,

 

주님의 형제(兄弟)로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이기적인 나와 싸우는 주님의 전사로

 

끊임없이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주님의 학인으로

 

끊임없이 수도가정에서 주님의 형제로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살았습니다.

 

저희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2012.9.15 수도원 설립25주년 기념감사제 날에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마음 하늘 안에 빛나는 태양으로 오시어

허무의 어둠을 말끔히 몰아내시고 충만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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