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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빈 산(空山)-비움에 대한 묵상/녹암 진장춘
작성자김순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12 조회수627 추천수1 반대(0) 신고

 

     빈 산(空山)-비움에 대한 묵상/녹암 진장춘 

 

      겨울산은 마음을 비웠다.

      활엽수는 잎을 지우고 성장을 멈추고 잠을 잔다.

      정적만이 머문 산을 오르며 비움을 생각한다.

      자연은 섭리에 순응한다.

      무위자연이다. 이것이 비움인 것 같다.

      내 뜻대로 마시고 당신 뜻대로 하소서.

      이런 마음이 비움이다.

 

      도대체 비움이란 무엇인가?

      요즘 내 화두가  비움이다

      비움은 형이상학적인 것 같지만 구체적인 겸손과 나눔과 줌이다.

 

      동양사상에서 비움이란 空과 無이다.

      불교는 철저한 空의 사상이다. 불변의 실체가 아닌 것은 모두 공이다.

      물질이나 생물에서 불변의 실체는 없다.

      공 사상에서는 불변의 이데아는 그 근거를 상실한다. 

      자아에게 공 사상을 적용한 것이 무아(無我)이다.

      나(atman)의 실체도 변한다. 아상을 버려야 한다. 내가 가진 많은 욕망과 아집을 버려야 한다. 

      금강경은 해탈을 위해 편견과 집착인 四相(我相, 人相, 衆生상, 壽者相)을 버리라고 한다.

 

      노장의 무 사상은 공과 유사하다. 

      불교가 중국에 와서 도교의 무 사상을 받아 격의(格義)불교가 되었다고 한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채움을 위한 비움인가?

      장자는 무아를 위해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을 내건다.

      도는 다만 텅빈 곳에 모이니 텅빈 것이 심재다.( 維道集虛 虛者心齋 )

      심재는 내 뜻을 귀로 전달하지 말고 마음으로 전달할 것이며,

      나아가 마음으로 전달하지 말고 기()전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귀로 소통하지 마라! 허이대물(虛而待物)이라! 비워! 그 상태에서 상대방과 소통하라!

      마음으로 소통하라!

      마음으로 소통이 되면 그 소통을 끊고 기로 소통하라!  

      비우는 것이 심재(心齋)! 허자심재(虛者心齋)!

      상대방이 내 말을 받아들인다면 마음껏 울어라!(入則鳴)이라!

      그러나 상대방이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 그쳐라!(入則止)

      (顔回曰, 敢向心齊. 仲尼曰, 若一志, 無聽之以耳, 而聽之以心, 無聽之以心, 而聽之以氣, 聽止於耳, 
      心止於符, 氣也者虛而待物者也, 唯道集虛, 虛者心齊也)


 

      마음을 텅 비우는 것이 무엇인가?

      탐진치 삼독을 버림인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는 것인가?

      교만한 마음, 우월한 마음, 자랑하고픈 마음,  명예심, 권력욕, 모든 이기심을 버리는 것인가?

      그리고 너그럽고 이해하는 마음 용서하는 마음, 겸허한 마음, 무색의 마음인가?

      그곳에 도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정치가에게 비우라는 말은 죽으라는 말이다.

      사업가에게 비우라는 말은 패업하라는 말이다.

      젊은이에게 비우라는 말은 희망을 포기하라는 말이 된다.

      욕망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희망과 야망을 가지라는 것과 비움은 배치되는 말인가? 어떻게 조화되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마음을 비우라는 말은 욕심을 조금 비우고 양보하라는 말인가?

      진정한 비움이란 무엇인가?

      정말 어려운 화두이다.

      완전한 진공같은 비움은 있을 수 없다.

      비움이란 나를 잊음이다. 

      나무는 임시 성장을 멈추었지만 생의 의지는 지니고 있다

      마음을 진공으로 만들면 사랑도 미움도 없고 욕망도 없으니 죽은 거나 같다.

      비우되 바른 욕망과 사랑은 남겨두어야 한다.

      헛된 욕망, 사악한 욕망, 과도한 욕망을 버리고

      소아를 버리고 대아를 택하라는 말이다.

      진정한 진리 편에 서서 살라는 말씀이다.

 

      비움이란 편견을 버리는 것이다.

      도덕경 48장에는 "배운다는 것은 날로 쌓아 가는 것이고

      도를 닦는다고 하는 것은 날로 덜어내는 것인데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마침내 무위에 이르면 하는 것이

      없지만 되지 않는 것이 없다(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20장에는 "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絶學無憂)"고 했다.

      여기서 배움(學)이란 세상에서 익힌 편견과 위학(僞學)이다.

      예를 들자면 학력이 높은 사람, 아파트 평수가 큰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 아름다운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하여 그런 상식을 지혜로 알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지혜가 노자가 말하는 학(僞學)이다.

 

      비움이란 헛된 욕망을 버림이다.

      지기와 남을 망치는 헛된 욕망, 삿된 욕망

      불교의 공은 세상만사가 변하는 것이므로 불변의 진여(眞如)를 찾아 그 가르침대로 살라는 말씀이다.

      없어지는 재물과 명예, 지위에 대한 과욕이 헛된 욕망이다.

      허례허식을 버리고 소박한 삶을 살라는 것이다.

   

      비움이란 무애(無碍-거침없는 자유)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남이 나를 칭찬해도  비난해도흔들리지 않으며

      기쁜 일이나 나쁜 일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

  

      성경에서 말하는 비움이란 어렵지 않고 단순명쾌하다..

      성경에는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이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다.

      복음을 위해 자기가 가진 것을 포기하라는 말씀이다.

      세리인  자케오는 예수님의 방문을 받고 가진 것의 반을 팔아 가난한 이웃에게 주겠다고 했다.

      (루카 19.1~10)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또한 자기 작은 이익보다 이웃의 큰 이익을 돌보는 자기 비움이다.

      성경은 자기를 버리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자기를 버리고 진정한 진리(복음)와 남을 위해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잘났다고 교만한 이들을 책하시고  천대받는 사람들을 들어올리셨다.

      이는 편견을 버리라는 것이다.

     “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하지 마옵시고 오직 하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하소서.”

      예수가 말한 ‘나의 뜻’은 작위이며 ‘하늘의 뜻’은 무위자연이다. 

      예수님의 일생은 비움의 극치이다.

      가장 높으신 하느님의 아드님이 가장 얕은 곳인 말구유에서 비천한 인간으로 탄생하시고

      세례자 요한에게 죄인이 받는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단식고행하시고 악마의 유혹을 받으시고 

      가난하고 천대 받는 사람들을 찾아다니시면서 고치시고 가르치시고

      끝내 제자와 유대인들에게 배신을 받아  가장 수치스러운 십자가 죽음을 하심으로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시며 모든 것을 인류를 위해 바치신 더없이 겸손하신 낮추신 분이시다.

      예수님처럼 낮추고 비우면 그게 정말 비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움이란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다.

        2008년 12월 29일

   

   텅 빈 정자

  

   텅 빈 까치 집

  

   텅 빈 정구장  

  

    텅 빈 운동구들

  

   텅 빈 운동장  

 

  내년의 새싹을 위하여 코스모스 풀대를 베고 있는 노인, 그처럼 아름답던 코스모스 비탈도 이 노인 덕에

  그처럼 아름다웠다.  이 노인이야말로 마음을 비운 의인이다.

  

   담벼락이 성글면 앞을 바라볼 수 있지만 넘을 수는 없다. 넘자면 아래처럼 문을 만들어야 한다.

 

 배경음악: 寂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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