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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놀라운 소식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04 조회수657 추천수5 반대(0) 신고
 
 

놀라운 소식 - 윤경재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마태 2,1-12)

 

 이 세상에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들어오신 아기 예수님의 놀라운 소식이 어디에 있는지 오늘 우리의 상황에서 새롭게 조명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비교하여 살펴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헤로데는 흔히 헤로데 대왕이라 부르는 자입니다. 기원전 73년에 태어나 기원전 4년에 급작스럽게 병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정치 지향성이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정통 유대인이 아니라 이두매아 출신으로 늘 핏줄에 대한 열등감을 지녔습니다. 하스몬 왕가 요한 히루카누스의 시종장이었던 부친 헤로데 안티파텔 덕분에 어려서 로마에 가서 교육을 받았고 로마 귀족들과 교분을 쌓고 돌아왔습니다. 핏줄에 대한 열등감을 해소하고자 하스몬 왕가의 미리암 공주와 정략결혼을 하였습니다. 하스몬 왕가가 분열로 치달을 때 아버지와 함께 로마를 끌어들여 로마가 손쉽게 승리해서 유대지방을 지배하는 데 큰 공을 세웁니다. 로마에 들어가서 함께 공부한 동문인 황제에게 큰 뇌물을 주고 충성을 맹서하고서 BC 40년에 유다지역의 왕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성격이 화려하고 의심이 많고 포악하였습니다. 또, 시리아와 전투에서는 죽기를 각오하고 직접 기습공격을 벌이는 과단성 넘치는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늘 자신의 위치가 위협받는 것에 공포심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시리아를 위시한 외부 세력의 침입을 걱정 했으며 자신의 아들이 유대인들과 모의하여 반란을 꾀할까 두려워 친 아들을 직접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수로 정비, 도시 건축 등 대규모 공사를 일으켜 경제를 활성화 했으며, 무너졌던 성전을 화려하게 재건축하여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도 했습니다.  사해 근처 마싸다에 요새 겸 궁전을 설계하고 건축한 그는 뛰어난 건축가로서 명성을 날렸습니다. 그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게 지형지물을 이용한 공중 건축물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헤로데는 정략적이고 인간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그를 대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실적과 소유에 대해 자부심이 큰 만큼 그것을 잃어 버릴까 두려워 했고 미련이 컸습니다. 모든 사고 방향이 자기를 향했습니다.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자기 내부를 지향하는 이중적 모순에 힘겨워하며 살았습니다. 자신을 과시하고픈 욕망에 휩싸일수록 확신이 없어지고 더욱 자신에게 매달리는 심리적 고립감에 괴로워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들까지 죽이는 광기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가 갑자기 병사하자 유대 백성은 모두 천벌을 받았다며 속으로 박수를 쳤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동방박사들은 천문을 관찰하고 자기를 넘어서는 초월적 가치를 내다볼 줄 알았습니다. 모든 사고를 자기 자신에게 지향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역사의 흐름을 꿰뚫어보고 조만간 인류의 구원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필연성을 깨달았습니다. 위대한 역사의 현장에 동참하려는 갈망이  기나긴 고난 여정의 수고로움을 무릅쓰게 하였습니다. 또 그들은 단독자가 아닌 공동체로 움직였습니다.

 우리는 단독자라는 철학적 개념에 지나치게 물들어 있어 이 공동체 의식에 약하게 반응합니다. 말로만 외칩니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이 홀로 이루진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에 눈이 가려 그 가능성을 외면했고, 언제나 스스로 소외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들어오신 아기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한데로 모으셨습니다. 특히 이방인으로 여기던 동방박사들까지 모였습니다. 공생활 중에도 늘 여러 사람들과 함께 지내셨습니다. 누구라도 받아 들이셨습니다. 그래서 먹보요 술꾼이라는 오해도 받으셨습니다. 또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면서도 어머니와 제자를 한 공동체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가르침은 하나되는 공동체의식입니다. 우리가 단독자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일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예수님께서 세우신 이 공동체 의식을 뼈에 사무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뛰어난 능력을 더 찬양하며 또, 그 개개인들은 자기가 성취한 것을 잃지 않으려고 무단히 매달립니다. 마치 헤로데 대왕이 그러했던 것처럼. 모래알처럼 흩어지길 원합니다.

 지금 우리는 전에 겪어보진 못한 금융위기에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여러 학자들의 원인분석을 살피지 않더라도 이 미증유 사건의 원인은 한계를 모르고 커져갔던 개인 욕심에서 비롯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도 이 문제에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암흑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공동체 정신을 되살려 충실히 살아감으로써 이 사회에 대두한 문제 해결의 대안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자신이 지닌 부와 능력이 자기 것만이 아니라 주님과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 여기고 자발적으로 내놓을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기 예수님 앞에 자기가 지닌 것 중 제일 좋은 것을 내놓아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흔쾌히 봉헌한  동방박사들처럼 말입니다. 자기가 지닌 것을 나눌 때 모두는 더 행복해 질 수 있으며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복음을 살아 있는 말씀으로 재창조하는 길은 바로 우리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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