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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최강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09 조회수691 추천수11 반대(0) 신고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새해에도 주님께서 항상 함께하시어 건강한 육신과 평화로운 영혼으로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에 정진하시기를 빕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최고의 복이 되겠지요.


   저는 한국외방선교회의 최강 스테파노 신부입니다. 이렇게 형제, 자매 여러분께 인사드리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매순간 우리의 존재 저 깊은 곳에서 우리와 함께 생생하게 살아 계시는 하느님을 너무 무겁지 않게, 그러나 너무 가볍지도 않게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지내다가 주님의 새로운 부르심을 받고, 이곳 중국의 스자좡(石家庄)이라는 낯선 땅에 도착한 지 이제 석 달 정도 흘렀습니다. 아는 사람이라곤 단 한 명도 없이, 중국말이라곤 ‘니하오’와 ‘짜이찌엔’ 정도만 겨우 알고 시작한 이곳 생활에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습니다. 가끔씩 뜨개질을 하며 햇볕을 쬐고 있는 중국 할머니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되지도 않는 중국말로 할머니들을 웃겨 드리는 여유를 즐기기도 합니다.


   때때로 번거롭게 여겨지는 세상과의 인연 때문에 항상 분주하게 보내야만 했던 서울 생활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언제나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혼자 일어나 혼자 기도하고, 혼자 미사 드리고, 혼자 음식을 준비하여 밥을 먹고, 혼자 빨래하고 청소하고, 혼자 공부하고 돌아다니다, 혼자 집에 들어와 잠자리에 드는 것이 요즘 제가 살아가는 하루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혼자 하루를 보내는 일이 제게는 그리 어렵지 않아, 어떤 면에서는 서울에 있을 때보다 더 평화로운 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씀 드릴 수도 있겠습니다. 혼자 있을 때 사람은 하느님과 자신,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더 깊이 묵상하면서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혼자 지내는 일을 제법 즐기면서도 혼자 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싫은 일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혼자 미사를 드리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마음을 드높이”

   “…….”


   “우리 주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


   “주님의 평화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면서 세상을 향해 두 팔을 벌려 주님의 평화를 나누려 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 그 짧은 고요가 제게는 마치 영원처럼 길게만 느껴집니다. 그럴 때면 무슨 신비의 공간인 양 옷장 속에 차려진 제대와 그 앞에 걸려 있는 선교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제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요?’ 하고 하느님께 여쭙고는 한참을 멍청하게 앉아 있곤 하지요. 이곳 중국에서 선교 사제로 살아가면서 제일 먼저 익숙해져야 하는 일이 이렇게 ‘혼자 미사 드리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미사 봉헌을 ‘일’이라고 말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중국으로 오기 바로 전에 4박 5일의 짧은 일정으로 대만에서 활동하는 동료 신부님들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곳에서 친구를 만나 나눈 대화가 요즘 많이 생각납니다. 약속 장소에 조금 늦게 도착한 친구는 최근 몇 주 동안 주일 미사에 나오는 신자 수가 절반으로 확 줄었다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본당 신부가 엄청나게 큰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걱정하는 제게,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게. 다 내 부덕의 소치지 뭐. 주일 미사에 보통 네 명 정도는 나왔는데 최근 몇 주 동안 두 명밖에 안 나오고 있어. 여름이라서 어디 놀러들 가셨나 봐. 하하하.”


   그때 친구는 어느 막노동꾼보다 더 그을린 구릿빛 얼굴에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소탈하게 웃었습니다. 주일 미사가 그 정도니 평일에는 당연히 텅 빈 성당에서 혼자 미사를 봉헌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이 빈 본당을 충실히 지킴으로써 신자들이 없는 대만의 한 작은 본당에서도 하느님께 바쳐지는 주님의 희생 제사가 끊이지 않는다는 기적에 놀라워하며 만족한다고 말했습니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자기가 맡고 있는 본당이 낡아 할 일이 많다며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친구의 뒷모습을 저는 한참 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가 참 건강하고 성스럽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게는 아직 그런 본당도, 신자도 없지만 제게 주어진 상황을 건강하고 성스럽게 맞이하고 싶습니다. 작은 옷장 속의 제대가 저의 본당이고, 하느님께 기도를 바치면서 항상 함께 길을 걸어가는 세상의 모든 친구가 저의 본당 신자들이니 사실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선한 의지를 가지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봉헌하면서 살아가는 저의 친구들이 이 세상에 밝은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또 그들은 그곳에서 건강하고 성스럽게 살아가는 일이 우리가 삶의 여정의 어느 순간, 어느 공간에 머무르고 있는지 관계없이 가장 중요하고 자연스러운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겠습니다.


▒ 최강 스테파노 신부 - 한국외방선교회

                        

                                   
 
 - 출처 : 성서와 함께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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