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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입으로만 성모님하지말고 행동으로 표현해야 [완전한 가난]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31 조회수534 추천수2 반대(0) 신고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모든 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 안에 집착을 끊는 것을 말한다. 집착에는 언제나 자신과 결부되어 있다. 사실 모든 것을 버려서는 안된다. 있는 그대로 모든 것과 조화로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오로지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하겠다. 모든 것을 없애는 것은 생명이 아닌 죽음뿐이다. 모든 것에 생명이 살아 나도록 감미로운 숨결을 불어 넣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을 모든 것을 없애는 파괴로 여겨서는 안된다. 모든 것 안에 얽매여 있는 자신의 탐욕과 이기심의 집착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육정과 욕심이 지나치면 모든 것을 자기 소유로 삼아서 결국 자신을 버리지 못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 줄 수 있고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덜 가질 수 있을 때에 육정의 온갖 사욕에서 떨어질 수가 있다.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짐이 된다고 하여 벗어나고자 이것들을 없애 버리려고 한다면 그것들은 언젠가 다시 되돌아와서 자신을 한순간에 덮쳐 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모든 것을 없앤다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자기 안에서 자신을 비워 '모든 것'들로 감싸 안을 때 이는 없애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생명을 주는 것이며 '모든 것'에 사랑이 풍성해 지는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린다 할지라도 모든 것 안에 있는 자신을 결코 버리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지 못하였다(얽매였다)는 뜻이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모든 것 안에 자신을 속박시켜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모든 것 안에 자신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신 안에 모든 것을 담아 내는 것이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 모든 것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 안에 자신이 들어 있다면 모든 것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에 지배받는 것이다. 사탄은 광야에서 예수님께 유혹하기를 세상 영광(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영광을 거절하였다
이는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것을 버렸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은 예수님 자신 안에 담으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탄은 세상이 자기 것이라고 말하면서
세상 모든 것 안에 예수님을 속박시켜 예수님을 지배하려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반대로 자신 안에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하려고 하셨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다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이 모든 것을 없애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조화가 아닌 파괴는 생명이 아닌 죽음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 안에 자신이 들어가 앉는 것(위에 앉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자신 안에다 모든 것들을 조화롭게 포용하여야 하는 것(아래에 앉는 것)이다. 이것은 겸손한 섬김의 자세이다. 자신 안에 겸손으로 포용하는 섬김은 만물의 다스림이지 만물의 지배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영광을 거절하셨다. 세상 영광(온 민족과 온 언어들) 안(위)에 앉으면 세상 영광에 도리어 지배당하고 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하느님께만 경배드리며 '당신의 모상'인 사람을 섬기러(사랑하러) 오신 것이다. 사랑(섬김)으로 만물을 가지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만물의 모든 것들에게 자신을 내어 주는 것(희생)으로 모든 것들이 생명으로 넘치게 하셨다.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모든 것을 없애는 파괴의 죽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모든 것들에게 사랑으로 내어 주어 평화의 생명을 이루는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세상)에게 영광을 받고자 아니하셨다. 자신에게 참으로 영광을 주시는 분은 오직 아버지 뿐이시다. 자기 자신의 목숨마저도 그렇게 아낌없이 내어 주신 이같은 완전한 '무소유'의 참된 가난을 십자가에서 이루신 사람은 마침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아 나는 것이다. 성체적인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빈무덤은 모든 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무덤 마저도 소유할 필요가 없는 온전히 마침의 가난은 도리어 풍성한 은총으로 돌려 받는다는 것(부활 생명)을 당신의 남겨주신 행적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성체적인 생명의 삶을 사랑으로 살아라고 오늘(새해)에도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의 이행, 그리스도(말씀)에게서 성덕의 빛이 오지요. 자신의 '어둔 밤'은 자신의 수덕(삶의 체험)에서 거쳐 지나는 것이지만 만일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빠진다면 이 '어둔 밤'은 영혼의 동물적인 탐식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자기 안에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분께 집중함으로써 (순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나 자신(자애심)을 버리게 합니다. 나 자신 안에 사랑(그리스도의 십자가)이 소용돌이 치지 않으면, 인간적인 것(욕과 맛)들만이 자기 안에 꿈틀거리고 자기 자신만 커져만 가게 됩니다. 자기(자애심)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비우고자 하는 자신'이란 곧, '자기(자아)가 있다' 는 뜻입니다. 어떤 자아인가 ? '비우고자 하는 자아' 이지요. '비우고자' 하는 자아는 사실 '비우지 못하는' 자아에 묶여 버리고 맙니다. 자기 비움 => '완전한 가난' => '거저 주는 것' 입니다. 남에게 주는 것이지요. 성인은 우선 우리의 감각적인 것('비우고자 하는 자기')을 영적인 것(하느님의 은총에서 오는 모든 영적인 것)들에로 집중시킬 것을 권합니다. 욕망들을 끊어버리기 위해서는 욕망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끊어버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고 본성적인 욕망들에 반대되는 것(곧, 영적인 것)들을 적극적으로 원함으로써 욕망들에 대해 대항을 행하여야만 한다고 합니다. 성인께서는 신덕(믿음)으로 이성이 정화되고 망덕(희망)으로 기억이 정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애덕(사랑)으로 의지가 정화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하셨는데 이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가르침이다고 봅니다. '자기 비움'은 욕망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끊어버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그것에 도리어 의지가 묶여 가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거저 성모님 처럼 그리스도를 따르기만 하면 되지요. 그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나 가운데'를 거니시게 됩니다. 아무런 응답하지 않으시는 침묵하시기도 합니다. 단지 '나 가운데'를 거니시는 것입니다.
 
재물을 가진 부자 청년에게 '재물을 나누어주고 그후 나를 따라라'하신 말씀에서 사랑의 실천은 재물을 '악'으로 여기라는 것이 아니고 바로 자기(재물에 묶인 자애심)를 버리는 것입니다. '비우고자 하는' 이것도 재물과 다를바 없습니다. '비우고자 하는 자신'은 '비우고자 하는' 것에 묶인 자기의 자애심이지요.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그런 자애심마저 끊어버리는 '순수 그리스도'를 따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억으로 파악될 만큼 형(形)과 상(象)을 지니지 않으시므로 기억이 하느님과 합쳐져 있는 경우에 형도 상도 없고 상상도 없어져서 망덕(그리스도와 일치이다면)으로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갈망하면 기억은 오직 최고 선(하느님)에 빨려든 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게 됩니다. 아무런 응답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십니다. 단지 '나 가운데'를 거니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겸손, 순종이라 합니다. 아버지를 바라보시는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내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대로"가 이 의미입니다. 기도와 삶은 하나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기도만 하신 분이 아니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따름은 실천의 삶이기도 합니다. 기도는 삶이고 삶은 기도가 됩니다.
 
결론적으로 <완전한 가난>이란  '가진 것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거저 내어 주는 것' 입니다. 완전한 자기 버림 = 자기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자기를 주는 것. 입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완전히 '자기를 내어 주심'입니다. 성체를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난, 자신을 거저 내어 주는 행동(완전한 표현)을 뜻합니다. 단순히 없는 것이 가난이라 하지 않고 단순히 자기 없슴을 비움이라 하지 않고, 거저 주는 가난함, 거저 자기를 내어 주는 비움이 [ 완전한 가난, 비움 ]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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