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ABBA
작성자김영범 쪽지 캡슐 작성일2014-01-24 조회수485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수님께서 살아 계셨을 당시의 '하느님'의 개념은 '통치자' 의 개념이었을 것입니다.

특히나 바리사이 율법 학자들에게는 더욱이 그렇게 인식하고 싶어 하였을 것이고

식민 지배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로마 왕보다 더 힘이 센 

그런 '통치 권력자' 로서의 메시아를  학수고대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미 오신 메시아를 알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힘있는 권력자의 모습과는 정 반대의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억압에서의 '해방자'로 오실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예수님은 완전히 뒤집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을 다르게 보았기 때문에, 지상에서 펼쳐질 하느님의 다스림이 갖는 

의미도 그에게는 매우 달랐습니다.

 


예수에게 하느님은 위대한 항제도 아니고 백성위에 군림하면서 세도를 떨치는 통치자도 아니었습니다. (마르10,42)

그분은 자비로운 절대 권력자와도 같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빠(Abba), 사랑의 아버지로 체험 했습니다.

예수가 본 하느님의 다스림은, 방탕한 아들을 무조건 용서하는 아버지의 비유에 나오듯이, 아들을 되찾은 사실을 기뻐하면서 벌을 주거나 보복하지 않고 흥청망청했던 지난 날은 개의치 않는 사랑의 아버지의 다스림을 의미합니다.

아버지는 그저 가족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을 따름입니다.(루카15,11~32)         --- 엘버트 놀런


예수님께서 쓰신 언어인 '아람어' 로서의 실제 발음인 이 '아빠'(Abba)  라는 이 인격신의 개념이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인식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 '하느님'에 대한 개념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아버지는 비참한 '한국 전쟁' 직후의 시대를 사시면서  '잔인과 증오'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셨었고 

우리를 낳으실때 그러한 아버지의 잠재의식은 지금의 우리 세대에게 '자비, 사랑, 용서' 같은 개념 보다는  '미움, 엄격, 의심'  때론 '지나친 증오심' 같은 개념들로 알게 모르게 전달 되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버지의 상,하느님의 상은 마치 예수시대의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이 가졌던 '실수하면 벌을 주는 하느님' 으로서의 무서운 하느님상으로 각인 되어 진것 같습니다.


그러다 반세기를 훨씬 거친 지금 우리의 하느님상은 그러한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는 데는 성공 했지만

마치 '보상'을 받으려는 심리로서 '지나친 자유'를 갈망하는 세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개인 주의'와 '이기 주의'가 팽배하면서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하느님으로 인식 해 버리기 시작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전쟁 시대의 무서움을 거치면서 그리스도인 마저 '사랑의 하느님'의 대한 상을 편협한 이기적 해석으로 왜곡 해 왔습니다.  자유 마저 무서워하는 '근본 주의'가 아니면  지나친 자유와 쾌락를 갈망하는 '자유 주의' 사이에서 적당한 '중용' 을 찾는데 실패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아빠(Abba)라는 하느님 개념은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니라 '온 인류 전체'를 사랑하시는 그러한 아빠입니다.

'자비와 용서'의 아빠입니다. 

'벌을 주는' 아빠가 아니라 '좋으신' 아빠입니다.

 

그런 아빠의 개념은 어디로 사라지고 말았단 말입니까?

나만, 우리만 , 우리 지역만, 우리 나라만, 그리스도인만... .

이렇게 '~만'  자가 붙은 사랑은 이기적 자아(ego) 에서 비롯된 사랑이며 이것은 '가짜 사랑'입니다. 아빠의 사랑이 아닙니다.

나 부터로서, 우리 부터로서, 우리지역 부터로서, 우리나라 부터로서, 그리스도인 부터로서 ....

이렇게 '~부터로서'  너, 너희, 너희 지역 ,너희 나라, 비그리스도인으로 전도되어지는 사랑이 '진짜 사랑'입니다. 이것이 아빠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갈망하셨고, 우리 사랑의 아버지상인 아빠(Abba) 는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가족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그러한 아버지의 개념이 , 단지 한 가족의 행복으로만의 개념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우리 가족 행복하면 모든 소명이 끝'이라는 '이기주의'적 발상을 여러가지 구체적 '법'으로 합리화 하여  여기에 조금이라도 이의를 달면 개인의 자유를 침범하는 '범법자'가 되어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단죄에 행여나 양심이 거슬리면 '불확실'이 진리라고 어물쩡거리면서  결국 '사랑의 하느님'을 거부 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설명하는 하느님인 '아빠(Abba)' 의 개념을 찾을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식대로 아무리 하느님을 이렇게 저렇게 상상해 봤자 그것은 하느님이 절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실제 체험 하셨던 사랑의 아빠모습... 

모든 것을 감싸 주시고 , 학교 성적보다는 인성 교육에 치중하셨던 그러한 아빠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 해 내고 유지 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나의 아빠 모습입니다.

그것이 온 인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체험하셨던 하느님 모습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