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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몬의 장모 열병을 고치시다 (마르1,29-3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15 조회수1,838 추천수1 반대(0) 신고
 

 시몬의 장모 열병을 고치시다 (마르1,29-38) 

 

(마르1,29-38)

29 그들은 회당에서 나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갔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질병은 영적 삶과 관련된 해롭고 악한 것들을 뜻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질병을 치유하시는 것은 교회와 인간들에게 붙어 그들을 영적 죽음으로 이끄는 다양한 종류의 악과 거짓들을 몰아내시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기적은 교회와 천국의 상태들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다른 기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기적은 주로 병을 고치는 일이었다. 주님이 요한의 제자들에게 하신 다음 말씀은 그것을 뜻한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마태 11:4-5)

 

주님은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시고 병자들을 고치십니다. 특별한 점은 시몬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을 앓고 있는데 주님께서 그 병을 낫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29 그들은 회당에서 나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갔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주님께서 회당에서 나오셔서 시몬 베드로의 집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주님께서 회당에서 베드로의 집으로 이동하신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들의 내면으로 임재하신 주님께서 이성 가운데 계시다 의지 안으로 이동하시는 것을 나타냅니다. 회당은 신앙인의 이성을 뜻하며, 집은 의지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회당은 본래 교회를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람의 내면에서 주님께서 교리를 가르치시는 곳, 즉 인간의 이성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시몬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 시몬의 장모가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시몬의 장모는 말씀에서 어머니나 아내는 교회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내면에 있는 교회인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사람의 의지 속에 세워집니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내면에 교회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을 받아들여 그것을 의도하고, 삶으로 옮길 때 교회가 세워집니다. 교회를 뜻하는 시몬의 장모가 시몬의 집에 기거한다는 것이 그런 뜻입니다. 의지가운데 교회가 세워진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지금 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몬의 장모가 지금 열병을 앓고 있는 상태는, 신앙인들이 어떤 종류의 악이나 거짓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 사람들이 주님 앞에 병을 고쳐달라고 청합니다. 사람들이 병을 고쳐달라고 주님께 간청하는 것은, 진리에 대한 애정이 진리이신 주님과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자신의 영적 질병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진리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가지고 자신의 영적 질병을 고치려고 노력할 때, 주님께서 열병을 꾸짖어 주십니다.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열을 꾸짖으시니) 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악들과 싸우시는 모습입니다. 주님께서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병을 꾸짖으시자) 악한 영이 떠나고 시몬의 장모의 병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고 기록합니다. 주님께 시중을 드는 것은 진리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병에 낫기 전에는 진리에 순종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악과 거짓이 이끄는 대로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병을 고쳐주시자 악을 거절할 힘이 생겼고, 그렇게 해서 진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베드로의 장모가 주님께 시중을 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내면에 있는 교회가 진리이신 주님을 섬기는 모습입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의 장모의 병을 고치셨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병자들을 데리고 주님께 왔습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해질 무렵),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질 무렵(저녁이 되고 해가지자)은 어떤 때입니까? 신앙인들의 마음에 사랑이 없고, 그러므로 지혜가 없는 때입니다. 사람의 영적 상태는 항상 일정하지 않습니다. 아침일 때가 있고요, 한낮일 때가 있고요, 저녁일 때가 있고 밤일 때가 있습니다. 아침이나 낮처럼 햇빛이 밝을 때는 마음에 사랑이 넘치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지혜가 넘칠 때입니다.

그러나 저녁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고, 교회에 대한 애정도 없고, 그러므로 지혜가 없는 때입니다. 지혜는 사랑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질 무렵은 시험의 기간이며 영적 질병에 걸리기 쉬운 때입니다. 해질 무렵에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왔다고 하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온갖 병자를 데리고 왔다는 것은 신앙인들이 안고 있는 영적인 문제가 그만큼 다양하다는 뜻입니다. 사람마다 직면하는 영적인 문제들이 다 다릅니다.

 

그 이유는, 사람마다 애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애정의 다양성에 대해 수만, 또는 수만 곱하기 수만 개만큼이나 많다고 말합니다. 사람 얼굴의 생김새가 모두 다른 것처럼, 각자의 애정이 모두 다르고, 그러므로 직면하고 있는 영적인 문제가 다른 것입니다. 사람들이 병자를 주님께 데리고 온 것은, 신앙인들이 자신의 영적 질병을 주님 앞에 진심으로 고백하고 치유를 원하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주님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시려 해도 개입할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를 온전히 비우고 주님이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환부에 당신의 손을 얹으시고 병을 치유해 주십니다. 환부에 손을 얹으실 때 주님과 우리 사이에 소통이 일어납니다. 소통이란 주님의 생명이 우리 안으로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마치 몸 안의 혈액이 각 장기와 조직과 세포 속을 원활하게 흐를 때 병이 걸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실 때, 병자들의 내면에 있던 귀신들이 나가면서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그들을 향해 잠잠하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악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진리의 고백은, 순수한 고백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혐오이며 적대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때문인지 주님께서는 당신이 그리스도란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셨습니다. 심지어 가야파가 "네가 유다인의 왕(그리스도)인지 말하라" 고 했을 때에도 주님께서는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시고, “네가 말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악한 사람들에게 진리가 들어가면 진리를 더럽히거나 파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말씀에서는 그것을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폭행하고 십자가에 매다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악인들이 진리에 접근하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으십니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조금 전에 해질 무렵이 사랑이 없는 상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새벽은 주님으로부터 천국의 빛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하는 영적 상태이며, 그래서 사랑과 지혜가 풍성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때 주님은 외딴 곳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외딴 곳은 한글 성경의 번역이고요, 영어 성경의 번역은 광야 황무지 빈들 사막입니다. “광야는 진리가 없고, 그러므로 선한 삶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날이 밝은 것과 광야의 상태는 정반대의 상태입니다. 그러면 왜 주님은 날이 밝았을 때 광야로 가셨을까요? 그 이유는, 주님은 우리 내면의 광야를 진리로 개간하시는데 한 번에 하지 않으시고, 점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미 옥토로 변한 곳도 있을 것이고, 여전히 광야와 같은 곳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비교적 합리적인데, 다른 어떤 면에서는 전혀 합리적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실수도 하고 후회도 합니다.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그 부분에 있어서는 진리가 없다는 것이고, 광야와 같다는 뜻입니다.

 

 날이 밝았을 때 주님께서 광야에 가신 것은, 주께서 사람의 내면의 어떤 부분을 치유하신 후에, 이번에는 광야와 같은 곳으로 이동하셔서 그곳을 다시 변화시키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때 주님을 찾던 사람들이 주님을 발견하고 떠나지 마시라고 붙잡습니다. 주님을 찾는 사람들처럼 우리들도 주님의 부재(不在)를 느낄 때, 주님을 찾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떠나시지 않습니다. 아주 가까이에서 우리의 의도와 생각을 살피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되 스스로 하듯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라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주님께서 다른 곳으로 가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삶의 어떤 문제에 대해 주님의 지혜를 구할 때마다 교리적인 답변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에서 고을(동네)은 교리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웃 고을은 삶의 어떤 문제에 대해 특별한 교리적 해법을 기다리는 곳입니다.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은 삶의 모든 상황에서 다 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때마다 우리는 애정을 가지고 주님께 특별한 진리를 구합니다. 그것은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물을 향해 뿌리를 뻗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원천이신 주님께 닿으려는 수많은 뿌리들이 주님이 복음을 전하실 다른 동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이웃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파견)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 오신 주님은, 사랑 자체인 야훼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진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에게서 나오는 진리는 그냥 진리가 아니고, 을 동반한 진리입니다.

 

끝으로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라고 말합니다. “갈릴레아는 이방인을 뜻합니다. 그러면 우리 내면에 있는 이방 지역은 어떤 곳입니까? 가장 주님으로부터 가장 먼 곳이며, 가장 나중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곳, 그곳이 이방입니다. 그래서 우리 내면의 갈릴레아는 겉사람 입니다. 따라서 주께서 갈릴레아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전도) 하시는 것은 앞에서 "이웃고을에서도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입니다. 즉 주님께서 겉 사람 안의 여러 애정들과 소통하시면서 그들을 가르치신다는 뜻입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주님은 시몬의 집을 방문하시고 열병을 앓고 있는 그의 장모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시몬의 장모가 그런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 역시 거듭나는 과정에서 수많은 병치레를 합니다. 때로는 죽을 것 같은 열병을 앓기도 합니다. 그때 주님은 병의 치유를 위해서 우리들의 의지 속으로 오십니다. 영적 질병은 이성의 문제가 아니고,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구체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영적 질병을 치유 받으려고 주님께 구체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것을, 오늘 말씀에서는 시몬의 집에 있던 사람들이 장모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주님께 간청하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질병의 원인인 악한 영을 쫒아내 주셨습니다.

신앙인의 질병은 각자의 애정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고, 그리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그 문제를 그동안 어떻게 다루어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주님께 말씀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지혜와 능력을 구할 때 주님께서 그 질병들 위에 일일이 손을 얹어서 고쳐주십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우리 교우님들과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야훼여, 저를 낫게 해 주소서. 그러면 제가 나으리이다. 저를 구원해 주소서. 그러면 제가 구원 받으리이다. 당신은 제 찬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예레17:14) 아멘.

    

행복한 날 되세요.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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