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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이웃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법
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3-05-30 조회수485 추천수2 반대(0) 신고

 

 

 

 

 

 

 

 

 

 

 

2023년 가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이웃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법>

 

 

 

 

복음: 루카 1,39-56

 

 

 

 

     


LORENZETTI, Pietro 작, (1325)  

 

 

 

    오늘 성모님은 엘리사벳을 방문하십니다. 엘리사벳은 성모님께서 인사하실 때 성령으로 가득 찹니다. 성모님의 인사말과 함께 성령께서 엘리사벳에게 가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모님은 엘리사벳에게 성령님을 주시러 가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은 성령님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성모님은 성령님을 주실 수 있으셨을까요? 우리 안에도 예수님께서 계시고 성모님 안에도 예수님께서 계셨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도로시 데이(Dorothy Day)는 1897년 11월 8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습니다. 데이는 명목 상 종교적인 성공회 가정에서 자랐지만 어린 시절에는 무신론자였습니다. 데이는 저널리스트로 일하기 위해 뉴욕으로 이사했고 여성의 참정권을 위해 항의하고 노동 분쟁에 대해 보도했으며 그녀는 국가의 위험 인물로 간주되어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녀의 삶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보헤미안적 생애였습니다. 전통을 벗어나 관습적인 사회적 기대에 대한 무시, 사회적 투쟁에 대한 참여로 특징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내면의 영적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1926년 딸 테레사(Tamar Teresa)의 탄생은 데이에게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자신이 딸을 사랑하는 것처럼 하느님도 자신을 사랑할 것이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아이에 대한 크나큰 사랑으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딸이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도록 했습니다. 

 

 

    이는 확고한 무신론자인 남편 포스터 배터햄과의 이별을 의미했습니다. 데이는 배터햄을 사랑했지만, 배터햄은 데이를 떠났습니다. 데이의 신앙은 그녀가 자신의 사회적 행동 주의와 가톨릭 신앙을 결합할 방법을 찾도록 이끌었습니다. 이러한 열망은 1933년 가톨릭 노동자 운동(Catholic Worker Movement)을 설립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음식, 의복이나 쉼터를 제공하는 환대의 집입니다. 데이의 가톨릭 노동자 운동은 자발적 빈곤, 비폭력, 노숙자에 대한 환대를 강조하면서 당시로서는 급진적이었습니다. 그녀는 내부 분쟁과 외부 비판을 포함한 많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남은 생애 동안 운동에 전념했습니다. 

 

 

    그녀의 작업은 또한 전쟁 반대를 포함하여 평화 운동으로 인해 여러 번 체포되었습니다. 가톨릭 노동자 운동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장했으며 오늘날까지 미국과 해외의 200개 이상의 공동체가 사회 정의 문제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도로시 데이는 삶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시성 절차를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오늘의 가장 큰 도전은 어떻게 마음의 혁명, 우리 각자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혁명을 가져오는가?”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가장 큰 혁명은 결국 내적인 변화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 안에 성체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계심을 알았고 그것이 그녀에겐 가장 큰 혁명이었습니다. 이러한 혁명을 거친 뒤에야 이웃에게 그 하느님께서 주실 수 있는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녀는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우리는 모두 오랜 외로움을 알고 있었고, 유일한 해결책은 사랑이며, 사랑은 공동체와 함께 온다는 것을 배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혼자 무엇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외롭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이 계심을 안다면 사랑의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오늘 성모님께서도 그렇게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것입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나는 진정으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만큼만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자신 안에 하느님을 품은 사람은 그 하느님께서 이웃 사랑을 통해서만 자신 안에서 깨어나실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성체를 영해도 죽은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또 말합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세상을 변화 시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사람들이 스스로 먹고, 입고, 거처하는 일이 좀 더 간단해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풍랑이 일 때 예수님께서 배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는데도 그분에게서 성령의 힘이 나올 것을 믿지 못하고 자기 힘으로 풍랑을 이겨보려고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만날 때 내 힘으로 사람들에게 잘해보려 합니다. 그러나 잘되지 않습니다. 나에게서 좋은 능력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풍랑을 가라앉힐 수 있었던 방법은 자신들 안에 계신 분이 하느님임을 인식했을 때입니다. 그때야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풍랑을 가라앉히십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우리 안에 하느님이 계심을 인식해야 합니다. 성체를 영하더라도 내 안에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인식하지 않으면 성령께서 활동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누가 계신지 인식할 때 우리는 이웃에게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이웃에게 힘든 사람이 되거나 이웃 때문에 내가 힘들어집니다. 성령을 베푸는 사람이 됩시다. 마음의 혁명을 먼저 이룹시다. 

 

 

 

 https://youtu.be/hAzfD9o1H6g

유튜브 묵상 동영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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