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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격논쟁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02 조회수552 추천수4 반대(0) 신고
 
 

자격논쟁 - 윤경재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요한 1,19-28)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이민족의 압제 아래 큰 고통과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여 자존심을 회복시키고 이름을 드러내줄 메시아를 대망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몇몇 사람들이 나타나 스스로 메시아라고 자처 했습니다. 광야에서 사람들을 모아 큰 기적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거짓 메시아라고 판명이 났습니다. 언행일치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 교만과 이득을 위해 마술을 행사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나타난 뒤엔 반드시 악영향이 미쳤습니다. 로마와 정치 지배자들이 더 가혹하게 탄압했습니다. 그 이후 바리사이와 종교당국자들은 메시아를 자처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꼭 시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안전판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베풀며 회개하라고 외치는 요한이라는 인물은 좀 달랐습니다. 자기가 메시아라고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바야흐로 어떤 불길한 조짐이 나타난다고 예루살렘 종교당국자들은 생각했습니다. 자칫 혁명운동으로 변하여 로마 지배 권력에 역습을 당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바리사이와 예루살렘 종교당국은 침례운동을 벌리는 요한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고 쓸데없는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미 그들은 요한이 메시아가 아니라는 심증을 가지고 내려 온 것입니다. 그들은 굉장한 힘을 지닌 자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종교적 운동만으로는 거대 로마 세력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런 싹은 아예 잘라내야 현상유지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하고 요한에게 묻는 바리사이들의 질문은 사뭇 도전적입니다. 또 세 번씩이나 돌려가며 확인하는 태도는 경고와 힐난하는 심정이 담겨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바리사이들이 뜻하는 진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들은 한낱 쥐꼬리 같은 안전에 매달린 꼴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체면과 자존심, 우월감으로 똘똘 뭉친 소인배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좀 더 확실하고 놀라운 예언을 하였습니다. 내가 비록 메시아도, 엘리야도, 그 예언자(신명 18,18)도 아니지만, 더 뛰어난 그분께서 곧 오실 것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늘 썩은 동아줄만도 못한 자기 확신에 매달려 남을 판단하고 또 안전을 확보하려 합니다. 그것은 육체적, 심리적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자신이 베푸는 물의 세례도 실은 심리적 회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간에게는 더 필요한 무엇이 있는데 그것은 변형이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새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물은 더러움을 씻어줄 수는 있지만, 불은 아예 변형시킵니다. 불의 세례를 거쳐야 새로 태어 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지만, 그래도 내적 준비를 갖추어야 기회가 왔을 때 불이 확 그어짐을 알았기에 물의 세례로 준비하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바로 준비를 외치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붙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그 은총은 언제나 문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묵시 3,20). 인간이 할 일은 문을 열어 제치고 그분 품안에 뛰어드는 일 뿐입니다. 그래서 변형과 일치를 완성하는 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의 언어로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승의 언어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스승이 되어서는 안 되기에(마태23,8) 제자의 언어를 말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우리를 변화시킬 분은 오직 주님뿐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오는 어떤 목소리도 심리적 차원에만 머물 뿐입니다. 우리는 그 차이를 확연히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초월하시는 성부와 성자를 향해 외칩니다. 그밖에 다른 소리는 모두 징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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