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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09 조회수804 추천수12 반대(0) 신고

 

 

 

공현 후 토요일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어제는 교수 신부님과 신학 세미나 하는데 다녀왔습니다. 특별히 스페인에서 시작된 한 공동체의 체험담을 듣고 왔습니다.

스페인어로 설명을 해 주어 자세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제가 알아들은 바로는 이렇습니다.

한 사제가 있었는데 어떤 자매와 사랑에 빠졌답니다. 둘은 수도회와 같은 공동체를 창설하였습니다. 그 공동체는 남녀의 사랑을 죄악시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건전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놓아두는 분위기입니다.

사실 그 사랑 안에서 둘은 정화되고 성숙되어 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서는 온전한 그리스도와 성모님처럼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각각의 숙소가 따로 있지만 기도와 식사 같은 것을 함께하며 지낸다고 합니다. 혹시 맘이 맞아 둘이 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면 집을 따로 마련해 주어서 살게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정결을 지키며 삽니다.

낮에는 각자가 학교, 은행, 병원 등에서 일을 하고 번 돈은 공동으로 모아 필요할 때마다 나누어 씁니다.

지금 그 창설자 사제는 돌아가셨고 공동 창설자 자매는 아직 살아계신데 나이가 드셨어도 매우 여성스럽게 꾸미고 다니신다고 했습니다.

만약 이런 공동체를 우리나라에서 설립하려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요? 아무리 영적이라고 하지만 사제가 한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면 신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러면서 동시에 작년까지 우리를 가르치시던 한 교수신부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올해부터 몸이 안 좋아 가르치시지 않는데 알고 보니 가정을 꾸렸고 벌써 애가 둘씩이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겉보기에는 정통교리를 매우 중시하고 매우 친절했던 사제다운 사제였습니다. 또 주위에도 적지 않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이런 문제로 옷을 벗고는 합니다.

옛날에는 신학생이 길가에서 여자와 단 둘이 이야기만 하더라도 퇴학을 당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신부님은 어머니가 밥상을 들고 들어오면 뒤돌아 앉아 있다가 나가시면 돌아 앉아 식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보는 것까지 정결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당시에도 성교육 시간이 있었는데 시작 전에 신부님이 교실에 성수를 뿌리고 그런 이야기들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성이 그렇게 죄악시 되었던 것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이후였습니다.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성적인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서로를 가리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창조 때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모상을 본 따 만드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이 성령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관계인 것처럼 사람도 남자와 여자가 성령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사랑을 할 수 있어야 참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께로 몰려가는 것을 보고 요한에게 그것을 알려줍니다. 요한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교회는 신부이고 그리스도는 신랑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은 신랑이 사랑하는 신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랑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하신 것은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바로 남녀 간의 구체적이고 온전한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하시는 것입니다.

 

현 교황님의 첫 번째 교서인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서 베네딕도 교황께서는 “세상에는 많은 사랑이 존재하지만 사랑의 원형은 바로 남녀의 사랑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신학교에서 그런 사랑 자체를 죄악시 하고 있기에 온전히 사랑할 수 있도록 성숙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사제가 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갑자기 좋아지는 사람이 생기게 되면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게 되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결혼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목숨을 바치신 것처럼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단 한 사람도 그렇게 사랑하고 있지 못하다면 다른 사람과 또 하느님은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꼭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바로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분들도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더라도 가장 원초적인 그 관계 안에서 참 사랑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이 더 큰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자신 있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요한 4,7)

이런 열린 사랑의 마음이 자신을 숨기며 정결한 척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결한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도 구체적인 사랑 안에서 정화되고 성숙되어져 나가야 할 것입니다.

 

  

로마에 유학 중이신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복음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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