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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브라함의 족보/아브라함/성조사[3]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30 조회수2,712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 아브라함의 족보

 

셈에서 아브라함까지는 셈과 테라의 족보(11,10-26 참조)로 연결된다. 이 족보에 의하면 인간의 수명이 120세보다 훨씬 많게 제시되기는 하나, 점차 단축되어 감을 알 수 있다. 셈이 육백 살, 아브라함의 할아버지 나호르는 백 사십 여덟 살, 테라는 이백 다섯, 아브라함은 백 칠십 다섯을 살았다. 셈은 나이가 백 세 되었을 때, 아르팍삿을 낳았다. 홍수가 있은 지 이 년 뒤의 일이다. 아르팍삿을 낳은 뒤, 셈은 오백 년을 살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아르팍삿은 셀라흐를, 셀라흐는 에베르를 낳았다. 계속해서 족보는 펠렉, 르우, 스룩, 나호르로 이어진다. 나호르가 이십구 세 되었을 때, 테라를 낳았다. 테라를 낳은 뒤 그는 백십구 년을 살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이게 셈의 족보이다.

 

테라의 족보와 그의 가족 관계(11, 26-32)는 이러하다. 테라는 칠십 세 되었을 때, 아브람과 나호르와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다. 그러나 하란은 본고장인 칼데아의 우르에서 자기 아버지 테라보다 먼저 죽었다. 본고장이란 말은 자기 친족의 땅이란 뜻이다. ‘칼데아의 우르는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큰 성읍으로서, 기원전 천 년대에 칼데아인들이 살았으며 기원전 6세기에 전성기를 누렸다.

 

아브람과 나호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라이이고 나호르의 아내 이름은 밀카였다. 밀카는 하란의 딸로서 이스카와 동기간이었다. 다시 말해 밀카와 이스카는 한 형제인 모양이다. 참 복잡한 관계이다. 그렇지만 어떤 성경 연구 단체에서는 사라이가 이스카라고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이는 성경에 나타난 사라이와 아브람의 내용과는 괴리가 있는 것 같아 논외로 한다. 사실 아브람과 사라이의 이 부부는 이복 형제간이다. 한 아버지에 배가 다른 형제간(20,12)이다. 지금의 가족 관계로 보면 이해하기 곤란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따라서 따지고 보면 밀카와 이스카도 배다른 형제인지, 씨 다른 형제인지는 잘 모르지만 형제인 것은 확실하다. 나호르와 밀카는 삼촌과 조카사이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성신 숭배에 의하면 사라이는 왕비를 뜻하며 밀카는 여왕을 의미한다. 사라이는 임신하지 못하는 몸이어서 자식이 없었다. 사라이가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라는 언급은 당시의 족보 내용으로는 대단히 충격적이다. 이것은 결국 후손 문제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아브라함의 역사를 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창세기 저자는 바벨탑 사건을 통하여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려는 사람들을 사방으로 흩어버린 후에, ‘사라이는 임신하지 못하는 몸으로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라는 언급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나타내주려 한 것 같다.

 

이렇게 테라는 아브람과 하란에게서 난 손자 롯, 아들 아브람의 아내인 며느리 사라이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칼데아의 우르를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으로 가는 도중에 하란에 이르러 그곳에 자리 잡고 살았다. 이 하란은 지금의 하란에서 멀지 않은 곳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하란과 종교적,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우르의 북쪽 유프라테스 강 굽이 부분에 위치해 있었다.

 

기원전 천 년대에 하란은 중요한 성읍이었으며 달의 신을 숭배하였던 곳이다. 바로 이 하란 지방에 아브라함의 씨족이 정착해 살았다. 성경은 테라가 아들과 손자 롯 등이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칼데아의 우르를 떠난 시기를 기록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아브람이 하란에 얼마를 머물렀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테라는 이백오 년을 살고 하란에서 죽었다.’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의 나이는 일흔다섯 살이었다.’라고 기록되었으니, 그 때의 테라의 나이는 백마흔다섯 살이었으리라. 그러니까 그는 아들 아브람을 가나안으로 떠나보낸 후 육십 살은 더 그곳에서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 같다. 과연 아브람은 백마흔다섯 살 고령인 아버지 테라를 하란에 남겨두고 가나안으로 출발했을까? 이는 의문의 여지를 남긴다. 성경은 테라가 이백오년을 살았다지만, 사마리아 오경은 테라가 백사십오 년을 살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마도 아브람은 아버지 테라가 죽은 후에 하느님 부르심을 받아 출발하였을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으로, 순교를 앞둔 일곱 봉사자 중의 한 사람인 스테파노의 최고 의회에서의 설교를 어디 한번 들어보자. 처음부터 그의 설교는 아브라함에 대해 언급한다. ‘스테파노가 말하였다. “부형 여러분, 들어 보십시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자리를 잡기 전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 영광의 하느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네 고향과 친족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하고 이르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칼데아인들의 땅을 떠나 하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죽은 뒤, 하느님께서는 그를 하란에서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땅으로 옮겨 오게 하셨습니다‘(사도 7,2-4).

 

그의 이 설교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여러 연설이나 설교 가운데에서 가장 길다. 그만큼 이 설교의 중요성을 말해 준다. 여기에서 그는 아브라함에서 출발하여 솔로몬과 성전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한다. 이 설교를 마치고 그는 바오로라는 젊은 사울이 보는 앞에서 돌팔매를 맞고는 순교한다. 예수님 이후 첫 순교자인 셈이다. 그의 설교에서 아브라함에 관한 것 중, 두 가지가 창세기의 내용과는 어찌 좀 상이하다. 첫째가 아브라함에 대한 하느님의 개입 시기이다. 창세기에서는 하느님의 개입이 우르가 아닌 하란이었단다. 그러나 스테파노는 이미 하느님의 개입이 우르에서부터 있었단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묵상 글에서 더 세세히 다루어 볼 생각이다. 두 번째가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난 시기이다. 순교자 스테파노는 아버지 테라가 죽은 뒤에 아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향했단다. 그러나 창세기에서는 테라가 아들 아브람을 가나안으로 떠나보낸 후 하란 그곳에서 육십 년을 더 살았단다.

 

어느 내용이 실제에 가까운지는 좀 애매모호하다. 어쩌면 아브라함이 떠난 시기가 어느 경우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하느님의 부르심에 의거 옮겨감이다. 그것도 즉시 순명의 자세로 믿었기에 실천하였다는 거다. 성조사의 출발은 하느님의 개입으로 아브람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렇게 결국 하느님의 선택은 아브람이었다. 창세기 11장까지의 태고사는 이 아브람을 전면에 등장시키고는 그 아버지 테라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그가 이백오 년을 살았는지, 백사십오 년을 살았는지는 그리 중요한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아브라함은 구세주 예수님의 족보에 직결되며, 노아의 10대손인 테라의 아들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첫 번째 성조사로 소개되면서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참조] : 이어서 '4. 부르심 받은 아브라함'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족보,테라,사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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