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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방문과 경배의 차이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04 조회수583 추천수6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을 듣고 나서, 이게 정말 있었던 일일까?
동방은 어느 나라를 가리키는 것일까?
이렇게 궁금해 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성경은 역사서도 아니고 전기문도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태어났다는 사실,
그리고 그분이 참된 왕이란 사실을 알리는 것이 목적일 뿐이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 한 가지.
예수님이 어떤 사람에게는 위협이 되고,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는 축복이 된다는 것이다.
당시 유다 왕이던 헤로데는 예수님한테서 위협을 느낀다.
그래서 2살 이하된 사내아이는 모조리 죽여버렸다.
사실 헤로데는 유대인이 아니다. 이방민족 아랍 출신이다.
온갖 권모술수로 로마 제국에 기대어 자기 권력을 도모했던 정치꾼었을 뿐이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두려워한다.
예수님은 권력을 추구하거나 재물이나 헛된 명예를 추구하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위협이 되는 분이시다.
하지만 백성들은 그런 예수님의 출현을 기뻐한다.
헤로데가 부정한 방법으로 왕권을 찬탈한 것과는 달리 예수님은 정통의 왕권을 가진 분이다.
정당한 권위는 사람들에게 활력을 준다는 사실을 백성들은 잘 알기 때문에
예수님의 등장이 힘없는 백성들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고 오히려 환영의 대상이 된다.
부하 직원들이나 직장 동료들에게 활력이 넘치고 있다면 정당한 권위가 행사되고 있다는 뜻이고,
그렇지 않다면 부당한 권위가 행사되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우리 각자 정당한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헤로데처럼 자기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야 어떤 고통을 당하든지 상관하지 않는 사람,
자기가 가진 권한이 타인에게 유익을 주기는커녕,
그 권한을 이용해서 타인을 회유하는 사람은 정당한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다.
회유는 부정한 권력자들이 흔히 행하는 나쁜 무기 중에 하나다.
회유는 자기에게 불리한 상황을 전복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꼬드기는 행위다.
다시 말해서 그 어떤 반대도, 또 어떤 반대적인 시도도 무력화시키고 공중에 뜨게 만들기 위해
한 사람의 인격을 매수하는 행위가 회유다.
그것은,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하고 말하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 나타나듯이,
별을 연구하던 동방의 박사들은 갑자기 나타난 별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것이 오래전부터 예언된 별이라고 확신한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민수 24,17)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 별이 동방의 박사들게는 보였는데
정작 예루살렘에서는 보이지 않았거나 보였다 하더라도 주목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여러 가지 이유를 추측할 수 있지만 이것이 우리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듯 하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의 별이 계신데
정작 우리는 그것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각자는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들이고,
나름대로 소중한 자질을 한 가지 이상씩 갖고 있는데
정작 우리 자신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보다 나아보이는,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장점들만 바라보고 좌절하거나,
실망하고 노력하지 않거나, 포기하거나,
무력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동방의 박사들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본국 예루살렘에서는 아무 주목도 받지 못했던 예수님,
그래서 한 때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어 누렸지만
결국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 처형당한 그분이
이 세상의 참된 왕이라고 경배하러 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기예수님께 바친 예물이 그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황금, 유향, 몰약.
이 세가지 예물에 대해 오래전부터 여러 가지 해석이 있어왔다고 한다.
2세기에 리옹의 이레네오(140년 소아시아=터키 출생, 178년 갈리아 리옹 주교)는
황금은 아기의 왕다운 위엄을, 유향은 신성을, 몰
약은 십자가상의 죽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몰약이다.
몰약이 상징하는 것은 십자가 죽음이고,
하느님은 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값을 치르고 우리를 당신 백성으로 삼아주셨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1코린 6,20)
베드로 사도는 그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은이나 금처럼 없어질 물건으로 그리된 것이 아니라,
흠 없고 티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그리된 것입니다.”(1베드 1,18)
이 세상의 참된 왕으로 오신 분이 하신 일이 결국 십자가 제사였다.
그 때문에 먼 이국땅에서 온 박사들이 갓난 아기 앞에 머리를 숙인 것이다.
그분이 커다란 권세를 가진 왕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 지구상의 그 어떤 왕 보다 훨씬 막강한 절대적인 권능을 지닌 분임에도 불구하고,
보잘 것 없는 백성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 때문에 머리를 숙인 것이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그런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예수님도 훌륭한 분이지만 예수님이 그런 분인줄 알고
그런 분에게 합당한 경배를 올린 동방박사들도 훌륭한 사람들이다.
이제 우리가 어떤 가치를 쫓아서 살아야 하는지
오늘 동방박사들이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힘과 능력을 길러서 세상을 좌지우지 하는 것도 좋지만,
그런 힘과 능력을 길러서 결국 투자할 대상이
또 다시 똑 같이 더 큰 힘과 능력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남을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결국 하느님에게서 오기 때문이고
우리 각자는 죽음으로써 그 모든 능력을 고스란히 되돌려줘야 한다.
그러니 우리가 동방의 박사들처럼
아주 보잘 것 없는 어린 아기 예수님께 모든 것을 투자한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
아기 예수님이 결국 성장하면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바로 나를 위해 십자가 제사를 바쳐주시고,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바로 내가, 여러분이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라고 말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참된 왕은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그런 사람들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우리 나라에서도 수많은 왕과 많은 대통령이 있었지만
국민들을 위해 목숨은커녕 그 많은 재산 하나 바친 사람 없고,
오히려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그 때문에 감옥에 갇히거나 백담사에 피난 갔다.
그러고도 가진 돈은 29만원 밖에 없다고 하는 그런 대통령들 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되는 사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더 큰 집을 짓고,
훨씬 더 값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되려고 할수록
결국 예수님과는 그만큼 더 멀어진다는 사실이다.
웬만큼 기본적인 생활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나아가서 조금 형편이 된다면 나 보다 못한 사람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참된 왕, 왕이면서도 백성들을 위해 십자가에 몸을 던진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될 것이다.
전에 들려준 이야기지만 더 자세하게 그대로 전해본다.
“골프 대회에서 우승하여 거액의 상금을 받은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골프 선수 로버트 드 빈센조가 인터뷰를 마친 다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차장에 세워둔 자신의 차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한 젊은 여성이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우승을 하셨군요”
“감사합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 아이가 병에 걸렸습니다.
겨우 여섯 살인데…급히 수술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하는군요”
눈물어린 그녀의 호소에 빈센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상금으로 받은 수표를 꺼내 그녀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이 돈으로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가십시오.”
며칠이 지나 빈센조가 골프 클럽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골프협회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
“우연히 들은 얘긴데, 지난 번 선생께서 받은 상금을 주차장에서 만난 여인에게 주셨다고 하더군요.”
“예, 그렇습니다. 아이가 아픈데 병원비가 없다고 해서요.”
“선생께 한 가지 소식을 알려드리죠. 그 여자는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아이도 없지요. 그녀는 돈을 얻어내기 위해 당신을 속인 것입니다.”
직원의 말을 다 듣고 난 빈센조가 물었다.
“그렇다면 아픈 아이가 없다는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러자 빈센조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야 말로 내가 근래에 들은 가장 좋은 소식이군요.”
이 프로골퍼 선수정도라면 예수님께 아주 가까운 사람일 것이다.
준 것을 더 이상 기억조차 하지 않고 아픈 아이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기뻐할 수있다면,
그가 준 돈이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정말 아픈 아이가 있다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런 사실 때문에 아주 진심으로 기뻐하는 골퍼 그 사람 자신이 기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바로 이 세상에서 진정한 리더요 왕이라 할만하다.
여러분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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