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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삼촌 조카의 헤어짐/아브라함/성조사[8]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04 조회수1,144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8. 삼촌 조카의 헤어짐

 

아브람이 롯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한 혈육이 아니냐? 너와 나 사이에, 그리고 내 목자들과 너의 목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온 땅이 네 앞에 펼쳐져 있지 않느냐? 내게서 갈라져 나가라.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아브람은 롯과 혈육이라는 점을 내세워, 당면한 다툼을 바로 멈추게 제안한다. 혈육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형제들이다. 당시 그들 사회에서는 친척 사이를 형제지간으로 표현했다.

 

따라서 아브람은 평화롭게 서로 갈라지고자 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해서 자유롭게 갈 길을 가라고 제의했다. 예나 다름없이 히브리인들의 관습에 따라, 그래도 연장자인 아브람이 먼저 좋은 몫을 차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친척끼리 다툼을 피하자는 판에, 분쟁의 여지나 서로의 이권으로 불만의 소지를 만드는 것이 점잖지 못하다고 느낀 아브람은 조카에게 먼저 선택권을 양보했다.

 

여기서 아브람은 매우 관대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 역시 자기에게 딸린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했으므로, 좋은 땅을 차지하는 것이 유리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아브람은 롯에게 먼저 좋은 쪽을 택하도록 양보하여 그와 평화롭게 헤어질 수 있게 배려했다. 이렇게 그는 양보함으로써 아름답게 유종의 미를 거두는 방향으로 헤어짐으로써, 친척에게 베풀어야 할 책임을 다하고자했다. 이 같은 아브람의 너그러운 마음은 나중에 하느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할 때에, 친척을 보호하려는 적극적인 중재로 나타날 것이다.

 

삼촌의 이 제안에 롯이 눈을 들어 요르단의 온 들판을 바라보니, 초아르에 이르기까지 어디나 물이 넉넉하여 마치 주님의 동산과 같고 마치 나그네살이로 다녀온 얼마 전의 그 이집트 땅과 같았다. 요르단 분지는 에덴동산마냥 물이 넉넉하고 가축을 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아 삼촌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때는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기 전이었다. 성경 저자의 이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왜 하필이면 롯이 에덴 같은 요르단의 온 들판을 삼촌이 보는 앞에서 택했을 때, 굳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언급했을까?

 

어쩌면 사람은 최대한 순리대로 살아야 함을 강조하고자 했으리라. 그래도 롯은 젊은 나이에 삼촌을 따라 다니면서 나름으로 부를 장만했다. 비록 삼촌과의 다툼의 여지가 있어 묵시적으로 서로를 위해 헤어지자는 이 마당에, 그래도 집안 어른이자 나이 많은 삼촌을 배려해 주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그는 삼촌에 대한 배려를 태연히 외면하며, 의당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이제 비록 홀로 설 채비가 되었기에 조카와의 헤어짐을 제안한 아브람에게, 그래도 삼촌 먼저라는 양보의 미덕은 최소한 말이라도 표했어야 했다. 이러지 못한 게 롯의 한계였다. 삼촌과 함께하는 롯에게는, 언제나 삼촌의 겸손과는 빗나가는 조카였다. 이것이 서서히 그에게 불행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그래서 성경저자는 다가올 소돔과 고모라의 불행의 모습을 지금 서둘러 되새겨 보는 것일 게다.

 

이리하여 감사와 고마움을 외면한 롯은 요르단의 온 들판을 제 몫으로 선택하고는 동쪽으로 옮겨 갔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 갈라지게 되었다. 롯의 홀로서기 여행이 시작되었다. 어쩌면 그에게는 불행의 여정에 들어선 것이다. 그렇지만 아브람은 서쪽으로 가지 않았다. 그는 롯을 보내고는 조카의 앞날에 하느님의 배려를 위해 기도했을 게다. 좀은 서운하고 야속하였지만, 그래도 어린 친족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으리라. 그래서 아브람은 여전히 그곳 가나안 땅에서 살고, 롯은 요르단 들판의 여러 성읍으로 옮겨가며 살았다.

 

외형적인 땅의 풍요로움만 보면서 이리저리 옮겨 다닌 롯은, 그곳에 사는 이들의 사악함이 눈에 들러올 리가 없었다. 어쩌면 그들의 삶이 의당 당연한 것으로도 받아들여지기도 했으리라. 더구나 헤브론 남동쪽, 사해 남서쪽에 위치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미 하느님의 눈 밖에 난 소돔까지 가서 천막을 쳤는데도, 그는 아마도 이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사실 소돔 사람들은 악인들이었고 주님께 큰 죄인들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악인이었을 뿐 아니라, 주님께는 큰 죄인들이었다. 이렇게 그들의 죄가 엄청나게 많았고 사악함 또한 지독하여 주님께는 큰 죄인이라고 덧붙일 만하였다.

 

그렇다. 최고의 축복은 올곧음이다. 겸손과 배려, 연민과 관대함으로 사는 이들에게는 그리 큰 근심거리가 없을 게다. 따라서 그저 평화스럽게만 보인다. 아브람처럼 양보하고 다음가는 것을 차지하는 저 미덕은 얼마나 위대한 지! 지금 당장은 불만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겸손으로 배려와 양보의 삶을 산 이는, 갈수록 더욱 더 축복을 받게 되는 여정을 성조사를 묵상하면서 발견하게 될게다. 나아가 아브람에 빗나간 롯의 불행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보면서 확인하게 되리라.

 

[참조] : 이어서 '9. 베텔에서 헤브론으로'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요르단,소돔과 고모라,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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