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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행복한 삶 - 2013.6.19 성 로무알도 아빠스(959-1027) 기념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19 조회수484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3.6.19 성 로무알도 아빠스(959-1027) 기념일, 2코린11,1-11 마태6,7-15

 

 

 


참 행복한 삶

 

 


오늘은 ‘참 행복한 삶’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원래는 ‘견딜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중심을 잃은 삶, 사회-’로 제목을 정했다가
부정적인 느낌에 ‘참 행복한 삶’이라는 긍정적 제목으로 바꿨습니다.

 

행복한 삶, 사회인지요?
여러분은 행복합니까?
불행하다면 불행의 원인은 어디 있을까요?

 

요즘 ‘갑’ ‘을’의 논쟁이 한창입니다.
균형 잡힌 갑과 을이 아니라
완전히 ‘갑’쪽에 기울은 불평등한 불공정한 삶이요 사회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결코 누구나 행복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웃인 ‘을’이 고통 중에 있는 데
유복한 환경이라 하여 ‘갑’이 진정 행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묵상 중 떠오른 억세게 강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느티나무 거목이 떠올랐습니다. 밖에서 보기는 좋은 데
공간을 다 차지하고 있어 작은 나무나 초목들은 참 살아남기가 힘듭니다.

흔히 재벌공화국이라 일컫기도 하는데
흡사 오늘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참 씁쓸합니다.

 

갑과 을이, 부자와 빈자가, 좌와 우가, 여당과 야당이, 재벌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존의 균형을 이루어 살아야 하는데 너무나 불균형의 현실이니…

문제는 인식하지만 해결은 참 쉽지 않습니다.

중심을 잡아줘야 할 정치권이 언론이 재벌들의 영향권 안에 있어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종교 역시 하느님과 돈을 함께 섬기고 있으니
어디서 길을 찾아야 할지 참 난망합니다.

 

저는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주신 자선, 기도, 단식을 통해 불행의 원인을 찾았고, 동시에 참 행복한 삶의 비결을 찾았습니다.

오늘 아침성무일도 독서 시
바오로 역시 우리에게 참 행복한 삶의 비결을 보여줬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이 되십시오.
이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간하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사는 이들이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참 행복한 삶을 세 측면에 걸쳐 나눕니다.

 

 

 

 

 

첫째, 삶에 중심을 잡으십시오.

 

중심을 잃어 혼란이요 방황입니다.
불안이요 두려움입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입니다.
깊이도 없는 피상적 삶입니다.

나라나 사회나 개인이나 중심이 사라져가는 세상입니다.
중심이 있다면 ‘돈’ 중심, ‘나’ 중심 하나만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상의 중심이 아닌 참 중심은 무엇입니까?

사랑이 중심입니다.
진리가 중심입니다.
사랑의 하느님이, 진리의 하느님이 중심입니다.

하느님을 중심으로 할 때 진정 올바르고 겸손한 수행과 삶이 가능합니다.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

 

숨은 일도 보시는 삶의 중심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믿음이 확고할 때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자선도, 기도도, 단식도 않습니다.

모든 자기와 이웃 등 모든 우상들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오히려 숨겨진 자선, 숨겨진 기도, 숨겨진 단식을 자발적으로 기쁘게 바칩니다.

이런 이들이 진정 관상가요 신비가요 영성가입니다.

바오로가
기쁘게 자발적으로 바치는 자선에 대한 묘사가 참 아름답고 고무적입니다.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숨겨진 수행이 빛나려면 자발적 기쁨이 더해져야 합니다.

진정 하느님을 사랑할 때 내적부요의 삶이요
자발적 기쁨의 자선에 기도에 단식의 수행입니다.

결코 하느님은
우울한 고행의 수행들이나 자기과시의 수행들은 거들 떠 보지도 않습니다.

진정 하느님이 삶의 중심이 될 때
자발적 기쁨의 숨겨진 수행에 만족하며 이게 참 행복한 삶입니다.

 

 

 

 

 


둘째, 삶에 균형을 잡으십시오.

 

하느님 중심을 잡을 때 저절로 따라오는 삶의 균형이자 질서입니다.
중심을 잃어 온통 균형을 잃은 나라요 사회입니다.
좌우, 빈부, 지역, 노사 간 등 균형을 잃어 분열이요 불통에 불화입니다.

정치가 언론이 자본에 예속되어 있어 균형자의 역할을 할 수 없음이 문제입니다.

종교 역시 자본에 예속되고 권력이 되어
예언자의 기능은 물론 균형자와 조정자의 역할을 할 수 없음이 문제입니다.

이런 균형이 깨진 삶은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위선자들로 지칭되는 외적 과시에 치우친 이들 모두
하느님 중심을 잃어 내적 균형을 잃으니 내적분열입니다.

외적으로 치우치다 보니 내적균형을 잃어
‘참 나’의 실종에 실속 없는 허영의 삶입니다.

알맹이의 삶이 아닌 껍데기의 삶, 외화내빈의 삶입니다.
우리 주위에 균형을 잃어 자기를 잃고 방황하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중심을 잃었다는, 내적균형을 잃었다는 표지가 바로
성형공화국이라는 오명입니다.

내적빈곤으로 삶의 균형을 잃어 외모지상주의의 유혹에 빠지는 사람들입니다.

 

외적균형 있어 내적균형이요, 외적질서 있어 내적 질서입니다.

하여 저는 수도원처럼은 아니더라도
하느님을 중심으로 기도와 일과 성독이 균형 잡힌 일과표에 따른
질서 있는 삶을 강조합니다.

불균형의 나라나 사회 현실을 탓할 게 아니라
내 삶의 균형과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바로 현실적인 지혜입니다.

참 행복은 균형 잡힌 질서의 삶에 있습니다.

 

 

 

 

 


셋째, 내적 깊이의 삶을 추구하십시오.

 

진정한 보물은 하느님뿐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참 보물인 주님을 발견할 때 참 행복입니다.

참 보물인 주님과 함께 살 때 저절로 자발적 가난의 내적부요의 삶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물론 많은 성인들이 참 보물이신 주님을 발견했을 때
모두를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주님을 발견하여 주님과 함께 살 때
저절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부터 결별합니다.

천박한 피상적 삶이 아닌 깊이의 내적 삶을 추구합니다.
허영의 껍데기 삶이 아닌 실속 있는 본질적 내적 삶을 추구합니다.

 

자선을 베풀 때에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여
자선을 숨겨두는 내적 깊이의 사람, 분명이 주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는 사람,
또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는 사람 역시
주님을 만난 내적 깊이의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이런 이들을 유혹할 수 없습니다.
참으로 내적으로 자유로운 사람들이요
무공해의 산소 같은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참 행복한 삶은 선택입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여기서부터 살 수 있습니다.
삶에 중심을, 균형을 잡고 내적 깊이의 삶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삶의 중심이신 당신을 모시고 이런 행복한 내적 깊이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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