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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성가정의 비밀 2 - 정결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8-12-26 조회수695 추천수9 반대(0) 신고

 

 

 

성가정의 비밀 2 - 정결

 

성가정의 비밀 두 번째는 성모님이 평생 동정이라는 사실에서 나옵니다. 즉, 요셉성인과 성모님은 평생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성가정을 이루는데 부부관계를 함께 하지 않았다는 것이 왜 중요하냐?” 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올바르지 않은 부부관계로 죄가 들어오고 사랑을 잃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 순교 성인들 중에 유명한 동정부부가 있습니다. 바로 유중철(요한)과 이순이(루갈다)입니다. 이 루갈다는 양반 가문 출신으로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랍니다. 그녀는 유아 때 아버지와 세례를 받았지만 미사를 할 사제가 없던 때라 영성체는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14세 되던 1975년, 중국의 주문모 신부가 한국의 첫 선교사로 입국하자 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고 첫 영성체를 하게 됩니다. 그녀는 오랜 기다림 끝에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감격을 체험했고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평성 동정을 지킬 것을 결심합니다.

그러나 당시 양반집 규수가 결혼하지 않고 동정생활을 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볼 때 용납이 안 되던 때라 주 신부는 또 다른 동정생활을 결심하고 있던 한 젊은이를 떠올려 둘을 연결시켜줍니다. 그가 유항검의 아들 유중철 요한입니다. 주 신부는 이 둘이 평생 동정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받고 결혼을 허락해 줍니다.

두 사람은 남매처럼 지내며 효성을 다해 시부모를 섬겼고 집안의 많은 노복들에게도 애덕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둘이 순교하기 전 함께 4년을 동거하는 동안 유혹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루갈다는 이 사실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우리 내외 처음 만나던 날에 서로 수절하기로 맹세하니, 평생 근심이 일시에 풀려 4년 동안을 형제같이 살며, 그 사이 혹독한 유감이 몇 번 있어 대개 열 번이나 무너질 뻔 했사오나, 공정하올 성혈 공로로 계교를 물리쳤나이다.”

이 한 쌍의 부부의 동정생활의 장한 의지를 보호한 힘은 그리스도께 대한 열렬한 사랑이었습니다.

루갈다는 1802년 휘광이에게 자기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고 스스로 웃옷을 벗고 조용히 머리를 도끼 밑에 놓았습니다.

 

현대에 동정부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비웃음을 당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 이것입니다.

이 부부가 동정으로 살았기에 다른 부부들보다 사랑이 덜 했을까요? 아마 육체적 욕망을 승화하여 더 깊은 사랑을 한 부부는 아니었을까요? 자신들의 사랑을 넘어서 하느님과 이웃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제 우리는 부부관계가 정말 부부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것인지 반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부관계를 가질 수 없는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할머니를 두고 할아버지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다시 태어나도 이 할머니와 혼인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젊은 부부들도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부부관계는 사랑과 자녀를 출산하려는 의도가 있어야 한다고 교회에서 가르칩니다. 만약에 자녀출산의 의도만으로 부부관계를 하라고 한다면 성당에 나오는 신자가 급격히 줄 것입니다. 따라서 부부끼리의 관계는 자녀출산의 의도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라는 가정 하에 죄라고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말 죄가 아닐까요? 냉철하게 보자면 자녀를 출산하려는 의도 자체가 있더라도 육적인 욕망의 의도가 전혀 섞이지 않을 수 없기에 죄가 들어가게 됩니다. 따라서 모든 자녀들 또한 죄 중에 잉태되게 됩니다.

시편에서도 “나는 죄 중에 태어났고 내 어미가 나를 죄 중에 배었나이다.” (시편 51,5)하지 않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자 자신들의 음부를 나뭇잎으로 가리게 됩니다. 이는 육체를 지니고 살고 있는 이상 성적인 관계가 부끄러운 것이 되어버렸음을 의미합니다. 성욕은 육체를 지니고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지니고 있고 그렇게 원죄가 자녀들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동물들처럼 성욕도 없이 교배시기에만 부부관계를 맺어야 한다면 인류는 벌써 멸종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자녀출산율만 보아도 그것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성욕을 주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부부관계에 죄가 섞여 들어오게 되자 부부관계 자체가 서로를 멀어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본인은 인식하지 못해도 자신을 죄짓게 하는 사람을 본능적으로 싫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치의 순간이 오히려 분열의 기회가 된 것입니다.

 

고슴도치 부부가 있었습니다. 날이 추워지자 둘은 서로의 몸을 따듯하게 하기 위해 상대에게 다가갔습니다. 다가갈수록 서로의 몸을 녹여줄 수 있었으나 서로 가시에 찔려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것이 부부의 딜레마입니다.

 

절제 없는 부부관계는 서로 간에 죄를 짓게 하는 것이므로 그나마 있었던 사랑까지도 사라져 미움이 들어오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즉, 부부관계가 사랑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사랑을 감소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아무도 인정하고 싶지 않고 현대에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부부간에도 정결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모님과 요셉성인은 동정부부였지만 우리가 성가정이라 부르는 가정의 모델이 되셨습니다. 이는 부부간의 정결함이 두 사람의 사랑을 감소시키기는커녕 더 완전하게 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어떤 부부도 이 두 부부만큼 사랑한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모님과 요셉성인은 가장 순결해지심으로써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이전의 상태까지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죄가 없어서 하느님과 함께 있을 수 있었고 그래서 완전한 사랑을 지니고 있었고 그 사랑으로 완전히 한 몸이 될 수 있었던 때였습니다.

 

부부가 다 동정으로 살라는 말은 아닙니다. 물론 자매처럼 사랑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 육적인 사랑에서 더 높은 사랑으로 가야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결혼하면 육체적인 관계만을 상상하게 되는 이 세대에 이런 것들을 쓰는 것 자체가 많은 반감을 일으킬 것은 짐작하지만 믿는 것을 말하지 못한다면 안 되기에 말씀드려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정결’이 성가정에 감추어져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에 유학 중이신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복음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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